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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③ 모두의 따뜻한 연결, 온 독서인문교육 프로젝트 책 읽기에서 책 쓰기까지

글 _ 김정희 대구광역시교육청 장학사

코로나19 팬데믹은 일상을 흔들어 놓았고, 우리 모두를 디지털 시대 한가운데로 급속하게 데려다 놓았다. 지금, 여기서 다시 학교를 생각하며, 그 시선을 교실로 보내고자 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책 읽기, 토론, 책 쓰기 교육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을 하고자 노력해 온 대구독서인문교육의 생생한 현장은 교실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입시를 앞둔 고3 학생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국어 수업을 하고 그 결과를 <질문하는 책 읽기>라는 책으로 낸 학남고 김미향 선생님의 이야기와 대구신성초 3학년 담임 김재선 선생님의 ‘그림책 읽기로 생각을 꽃피우는’ 수업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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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독서, <질문하는 책 읽기>

  2020년 봄. 맨 앞에서 코로나를 혹독하게 맞은 대구는 모든 것이 멈추었습니다. 그래도 학교를 가지 않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학교는 갈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제가 맡은 학년은 고3이었으니까요. 온라인 수업을 위한 영상을 만들고, 채팅을 하고 과제 피드백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상을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한 줄 글 속에서 저는 답답하고 우울해 하는 아이들, 두려워하고 무너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제 한 줄 댓글에 금세 힘을 얻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았고요. 


  6월이 가까워 학교를 찾은 고3들, 수능 특강 진도가 빠듯한 고3 수업을 벌려 틈을 만들었습니다. 주 1시간 ‘독서와 글쓰기’를 하였습니다. 대개의 고3 수업은 교육과정, 교과서를 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떴습니다. 읽고 쓰기를 꼭 하고 싶었거든요. 읽고 쓰기는 문서화된 근거가 없어도 그 자체로 중요한 활동입니다. 저는 고3에서 할 정당성을 조금 더 찾고 싶었어요.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힘을 얻어 이를 수업과 평가로 꾸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로 적성에 도움이 되는 책이나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책을 하나씩 고르게 했습니다. 여섯 시간은, ‘질문하는 책 읽기’를 했습니다. 매 수업 30분 읽고, 15분 독서일지 쓰기를 다섯 번, 쓰기 없이 자유롭게 50분 읽기를 한 번 했습니다. 독서일지를 쓸 때는 질문 두 개를 꼭 만들도록 했습니다. 가급적 탐구와 성찰을 할 수 있는 열린 질문, 오래 두고 고민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만들면 더 좋다고 했습니다. 꼭 질문의 방향을 정하지 않아도, 읽고 쓰기가 진행될수록 아이들의 질문은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매 시간 수업의 장면을 찍고 의미있는 생각들을 카톡 오픈채팅에 공유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은 공유와 지속에 유용했습니다. 사진과 채팅으로 또래의 활동을 보며 아이들은 끝까지 읽고 쓸 수 있는 지구력을 얻었을 겁니다. 뒤의 네 시간은 ‘질문하는 책 쓰기’를 했습니다. 두 시간은 질문을 다듬고 나누고, 두 시간은 긴 글을 썼습니다. 6월에서 8월, 1/3등교, 2/3등교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고 투명 칸막이 안에서 고3인 우리가 한 일입니다. 칸막이 안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자신을 다독이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무너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도 피드백과 공유를 통해 칸막이를 넘어서 서로를 단단하게 연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가을 그 글을 묶어 <코로나 시대의 독서, 질문하는 책 읽기>라는 이름의 책을 냈습니다. 고3에게 읽고 쓰기를 하게 한 것은 지난해 제가 가장 잘한 일입니다. 읽기와 쓰기를 통해 아이들은 숨을 쉬고, 감정을 토하고, 마음을 다듬고, 다시 생각을 꺼내어 닦았습니다. 

[학남고 김미향 선생님 수기요약]



금쪽이는 과연 문해력이 없는 아이일까요?

  TV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를 시청 중이었습니다. 금쪽이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선택적 함구증을 앓고 있는 아이로 집에서는 말을 곧잘 하지만 학교에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집에서 엄마와 함께하는 숙제 시간, 금쪽이는 책상에 앉아 그림책 <오소리네 집 꽃밭>을 읽고 있습니다. 서툴지만 천천히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모두 읽자 금쪽이는 태블릿으로 독서퀴즈를 풀었습니다. 오소리 아줌마가 회오리 바람에 날아간 거리로 적절한 것은? 오소리네 집 둘레에 핀 꽃으로 알맞지 않은 것은? 금쪽이는 고민에 빠졌고, 그걸 보는 엄마는 답답합니다. 퀴즈를 모두 푼 금쪽이의 점수는 30점, 독서인증 실패입니다. 


  금쪽이는 정말 문해력이 부족한 아이일까요? 당장 우리 반 아이들과 이 그림책으로 수업을 해보고 싶어 주말 내내 월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1교시, 그림책<오소리네 집 꽃밭>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림책을 보는 동안 두 가지를 독서기록장에 써 주세요. 그림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 질문 하나와 나의 마음에 가장 와 닿는 단어 하나를 써 주세요.”


  그림책을 두 번 읽어주었습니다. 


  “저는 ‘바람’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오소리 아줌마를 날아가게 한 바람이 무섭기도 하지만 어느 곳으로 데려가 줄지 설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경은)


  “저는 ‘오소리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꽃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오소리 아저씨처럼 저희 집에도 예쁜 꽃밭을 만들고 싶어서예요.” (도영)


  40리를 기억하거나 꽃이름을 떠올린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공책을 돌려 보면서 친구의 질문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친구의 질문에 깊은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들이 적어준 답변을 보며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보기도 합니다. 


  “오소리 아줌마는 왜 자꾸만 오소리 아저씨에게 괭이로 쪼지 말라고 했을까?”


  “꽃밭에는 오소리 아줌마도 몰랐던 꽃들이 엄청 많았으니까.”


  “괭이로 쪼면 꽃이 아프잖아. 금방 시들어버릴 거야.”


  우리 반에 문해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있을까요? 금쪽이는 정말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였을까요? 문해력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일까요? 글을 읽고 내용을 정확하게 잘 기억하는 능력일까요? 저는 문해력이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해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요? 지금처럼 아이들에게 “무엇이 감동적이었어?”라고 물어봐 주세요.

[대구신성초 김재선 선생님 수기요약]



흙을 가꾸는 노력을 거듭하며

  유능한 정원사는 꽃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흙을 가꾼다고 한다. 흙을 잘 가꾸어 놓으면 어떤 씨앗이 날아와도 잘 자란다고 하니 말이다. 대구교육청에서는 독서의 토양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오랫동안 해 오고 있다. 2005년 시작된 독서 습관 형성을 위한 아침독서 10분 운동, 삶쓰기 100자 운동, 토론 교육, 책 쓰기 교육을 모두 아우르는 ‘책 읽기-토론-책 쓰기’ 융합적 독서인문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독서를 통해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 삶을 잘 가꾸어 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을 지향하기에, 독서와 인문교육을 합한 독서인문교육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초·중·고 모든 학교에 학교의 실정과 특색에 맞는 독서인문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독서인문교육 활동비(교당 100만 원)와 독서인문 학생동아리 운영비(초등 172만 원, 중등 215만 원)를 학교운영기본경비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17년간 추진해 온 독서인문교육 정책에 공감하며 학교 현장에서 책 읽기, 토론, 책 쓰기 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들은 힘들었지만 학생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큰 보람을 느꼈고 교사로서도 성장했다고 한다. 대구 독서인문교육 정책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교사들은 ‘선생님들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현장 전문가가 되었다. 


  학생을 먼저 지도하며 시행착오 속에서 길을 찾은 전문가 선생님들은 독서인문교육 담당 교사와 학교를 지원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수업과 동아리 활동 속에서 터득한 삶을 위한 독서인문교육의 철학과 방법을 연수, 동아리, 연구회, 멘토링, 컨설팅으로 희망하는 교사들과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올해는 온라인 교원 연수 이후, 연수생으로 참여한 교사들이 강의를 한 교사와 함께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예시: 진짜 자발적인 교사 동아리, 매일 막쓰기 동아리 외).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며 성찰한 힘이 교실의 수업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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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에서 책 쓰기까지

  학생들은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 토론, 책 쓰기 동아리, 다양한 독서 활동을 통해 책을 읽는 독자이면서 책을 쓰는 저자로 성장하고 있다. 2020년 하반기에도 학생 및 교원 저자 책 쓰기 우수 작품 공모전을 통해 40편의 우수작을 선정하여 편당 300만 원의 출판 지원금과 출판 컨설팅을 제공하였다. 학교 책 쓰기 지도와 도서 출판 등의 경험이 있는 현장 교원을 출판 컨설턴트로 위촉하여 정식 출판을 위한 컨설팅을 2개월 동안 진행하여 정식 출판하였다. 출판된 책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검색하고 구입할 수 있다. 학생저자의 작품에는 최근의 흐름이나 시대 상황을 반영해 참신한 느낌을 주는 책이 많다. 내용을 보면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처음 학생저자 출판 지원 도서 1권이 나온 이후, 매년 학생저자의 책은 꾸준히 출판되어 올해까지 총 343편(교원저자 도서 포함)이 나왔다. 


  학생들이 책을 출판했다고 하면, 초등학생은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할 텐데 과연 책을 쓸 수 있냐고 하는 이도 있다. 대구의 학생저자 책은 학교 밖의 사교육을 통한 결과물이 아니라 학교의 정규 교육과정 인 수업과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학생을 지도한 교원의 책 쓰기 결과물인 교원저자의 책 속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저자 도서는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여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학생저자의 도서가 대출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학교 소식도 들려온다. 교원저자의 책도 동료 교원들이 줄을 그어가며 읽는 인기도서가 되어 학교 현장에서 교육적으로 선순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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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기, 다시 책 읽기로

  대구대봉초 최순나 선생님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또래의 책은 새로운 배움이 되어 ‘나도 이 정도면 쓸 수 있겠어.’라는 자신감과 친근감이 들게 한다. 더구나 작가와의 만남과 소통을 쉽게 할 수 있어 선배가 책쓰기동아리에서 쓴 책을 후배가 읽기도 한다. 학급 학생 수만큼 책을 구입하여 돌려 읽으면 3학년이 읽던 책을 6학년이 읽어보기도 하며 서로의 마음을 읽게 된다. 울산의 선생님 한 분은 대구대봉초 어린이가 쓴 <벚꽃 읽기>를 한 학기 한 권 읽기 도서로 활용하여 학생들이 읽고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소감을 쓰고 시화를 그려서 학생저자에게 쓴 편지와 함께 보내 왔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계성중학교 동아리 ‘가온 계성’에서 출판한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 본 대구 관광 안내서’ <대구데이>는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의 지역 탐방 단원에서, 대구동도초 4학년 어린이들이 쓴 <괜찮아 그럴 수 있어>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에서 활용되고 있다. 2020년 대건고 학생들이 쓴 <처음이에요 가족이지만>은 대구시청에서 주관한 ‘2021 대구의 책’ 청소년 분야 도서로 선정이 될 정도로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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