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학년도 고1 학생부터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
특집 ① - ‘고교학점제’ 교육혁신의 중추적 역할··· 전면 시행 전까지 역량 집중
특집 ② - 학점제가 고등학교에 가져올(가져온?) 변화
특집 ③ - 인천광역시교육청_ 온라인학교 교육 환경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돕는다
특집 ④ - 대전광역시교육청_ 고교-대학 연계 ‘원클래스’ 인프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 시너지효과 기대
2024 산학연협력 엑스포 개최
안전하고 보람 있는 학년말 마무리 돕는다!
RISE와 글로컬대학, ‘지역-대학’ 동반성장 위한 새로운 전략
소통 기반의 교육정책을 열어가는 함께학교
직업계고 재구조화로 경쟁력을 키운다.
기상예보관_ 기상청 이원길 통보관 - 일기예보, 하늘이 내는 수수께끼를 푸는 일!
박주정 광주대 교양학부 교수 - 비탈에 선 ‘방황하는 아이들’을 가슴에 품다
융합미술 프로젝트, ‘마음의 추’가 ‘美’로 바뀌는 과정
고양 백신중학교 자율동아리 ‘엔터(ENTER)’ 우리는 AI와 함께 성장하는 디지털 세대
디지털 대전환 시대의 직업교육 방향 탐색
충남 보령_ 장고도 - 명장섬 그리고 두 명의 분교 학생들
다문화 학생 19만 명 넘어, 역대 최고 기록
미국의 인공지능 활용 교육의 현황과 시사점
전공자율선택제 성과 공유회 개최 - 전문성 있는 학사지도체계·적극적인 교수 역할 필요
제10회 대한민국 SW교육 페스티벌 인공지능·소프트웨어와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미래
‘늘봄학교 발전 방안’ 마련을 위한 현장과의 소통
명예기자단 협의회 개최, 한 해의 시작을 알리다
무릎교육으로 전하는 따뜻한 전통.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 숨 쉬는 학교를 꿈꾸다
AIEDAP, AI·디지털 교육의 답을 찾아가다
학습부터 정서지원까지 한번에. 조손가족 아동을 돕는 온가족보듬사업을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교육의 도전과 희망! 교육발전특구로 지역교육 혁신의 미래를 열다 - 포천교육발전특구 현장을 가다-
AI 디지털 교과서와 함께한 미래교실,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부산광역시교육청_ ‘명지늘봄전용학교’ - 교육청이 직접 설립·운영하는 최초의 거점형 늘봄전용학교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글·사진 | 최홍길 서울선정고등학교 교사(<섬들이 부른다>의 저자)
장고도는 보령시 오천면에 속한 섬으로, 얼핏 장구처럼 생겼다 하여 장고도로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밀려온 파도 덕분에 멋진 해수욕장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곳이 명장섬 해수욕장이다. 섬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이곳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1학년 동생과 아이돌을 꿈꾸는 4학년 누나 남매가 청룡초등학교 장고도 분교를 지키고 있다. 장고도 항공사진(사진제공: 보령시청) 사람들은 보령 하면 갸웃하지만, 이내 대천해수욕장이라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길이 3.5km, 폭 100m 정도의 이 해수욕장은 여름에만 붐비는 곳이 아니다. 먹거리·볼거리·즐길 거리는 기본이고, 놀이시설과 숙박시설마저 잘 구비되었기에 겨울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여기에 온다. 사계절 내내 다양하게 진행되는 이벤트 가운데 한여름의 머드축제는 외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만세보령(萬世保寧)’은 영원토록 평안함이 지속되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보령의 통합브랜드 이름이다. 보령시의 관문인 대천역 역사 안쪽 중심부에는 심벌마크와 함께 대천김, 토굴젓갈, 머드 화장품 등 특산품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어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 지자체 가운데 전남 신안과 경남 통영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섬을 보유한 보령에는 15개의 유인도를 포함하여 90여 개의 섬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는데, 삽시도·장고도·고대도가 대표적이다. 이 3개의 섬은 같은 항로이기에 형제섬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고대도는 우리글을 연구하고 보급한 ‘귀츨라프 선교사’와 연관이 깊은 섬이다. 그를 기념하는 표지석과 기념비 그리고 조형물 등이 보였다. 선교기념비에는 ‘최초의 서양 감자 파종’을 포함하여 그의 7가지 업적이 적혀 있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자 ‘선바위’를 가까이 볼 수 있었는데, 고대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이 바위를 보고 만선을 소망했다고 한다.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 전경분교에서 공부하는 두 명의 학생 고대
경남 통영_ 한산도 - 배 타고 등하교하는 아이들과 충무공 이순신
우리나라가 해금(海禁) 정책을 실시할 당시, 서양은 16세기부터 대항해시대를 열어 근대화를 선도해 나갔다. 그러나 바다를 장애물로 여겼던 우리는 결국 임진왜란과 같은 뼈아픈 수난을 겪었다. 이런 시대에 나타난 인물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장군의 호국혼이 살아 숨 쉬는 한산도 유적지와 통영을 찾아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더불어 한산도 진두마을의 한산초·중학교 이야기도 곁들인다.추봉교. 다리 왼쪽으로 학교가 있다.추봉도 바닷가의 충무공 동상한산대첩의 현장을 조망하다 이순신 장군과 관계된 장소는 우리나라 서남해의 곳곳에 산재한다. 우선 목포의 부속섬인 고하도, 진도의 울돌목, 완도의 고금도, 신안군 팔금도가 있다. 팔금도 초입에 자리한 ‘군영소’에서 1597년 10월에 20여 일 가까이 장군과 부하들이 머무르면서 파손된 군선을 수리하는 등 다음을 준비했다. 장군은 수시로 ‘채일봉’에 올라가 해상을 탐방하며 언제 있을지 모르는 전투에 대비한 것이다. 섬 주민들은 장군을 극진히 대접하며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경남의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한산도가 으뜸이다. 임란 당시 왜군 함대를 이 섬의 앞바다에서 궤멸시켜 승리로 이끈 역사적인 곳이 바로 여기!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한산대첩은 학익진과 거북선의 위력을 바탕으로 영세한 전력을 가지고도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곳에서 왜군의 주력을 괴멸한 아군은 남해안의 제해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었다. 한산도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이곳의 지명은 충무공과 연관이 깊다. 대섬과 해갑도(解甲島), 의항(蟻項)과 문어포(問語浦), 군수용 소금을 구웠다는 염개, 3천석 가량의 군량미를 비축했다는 창동(倉洞), 병장기를 제조하고 수리했다는 야소(冶所), 경비초소를 두고 통제영과의 연락을 수행했던 진두(陣頭) 등이 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한산도 가는 배는 하루에 10회 정도 있다. 제승당(制勝堂) 선착장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도착 전에 거북
인천 옹진_ 장봉도 - 탁 트인 바다, 숲을 품은 트레킹의 천국
글·사진 | 최홍길 명예기자
여객선으로 10분 거리인 신시모도에 가려 장봉도는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인어 조각상이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장봉도는 마을 담벼락의 인어 벽화와 멀곶 구름다리까지 감상해야 제격이다. 산이 높지 않기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림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북적이는 이 섬을 찾았다. 삼목초등학교 장봉분교 이야기도 곁들인다.멀곶 구름다리장봉도 선착장의 인어 조각상한들 해수욕장 전경장봉도의 랜드마크 ‘인어 조각상’ 캐나다의 밴쿠버 가까운 곳에 ‘화이트 록’(White Rock)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바닷가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 길게 이어져 있고,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럴듯한 스토리텔링까지 가미되었기에 바위를 보려고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신문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인천의 장봉도(長峰島)라는 섬은 수도권에서 가깝지만, 그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바로 옆의 신도·시도·모도가 수도권에서 더 가깝기도 하거니와 세 개 섬이 서로 연결되어 볼거리가 풍성하다 보니 장봉도까지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장봉도 옹암 선착장 부근에 인어상이 만들어진 이후 인어 조형물이 이 섬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옛날 어느 때인지는 잘 알 수는 없어도 장봉도 어장에서 어떤 어부가 그물을 걷어 올렸는데, 상체는 여자와 같이 모발이 길고 하체는 고기와 흡사했다. 뱃사람들은 그 인어를 측은히 여기고, 산 채로 바다에 다시 넣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 뱃사람들은 그곳에서 사흘 동안 많은 고기가 잡히자, 그 인어를 살려준 보은으로 여기고 감사하였다고 전한다. 방금 배에서 내린 사람들도, 섬 구경을 다 마치고 육지로 나가려는 사람들도 인어 조각상 앞으로 몰려든다. 인어 아랫부분의 끄트머리에는 바다에서 따온 소라 두 개도 놓여 있다.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이다. 나이 지긋한 어머니
전남 신안 ‘제2의 제주도’를 꿈꾸는 자은도
백길 해수욕장 보석같이 아름다운 1004개의 섬이 있는 전남 신안군.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섬을 꼽자면 ‘자은도(慈恩島)’이다. 한 섬에 큼지막한 해수욕장이 무려 아홉 개나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곳까지 포함한다면 셀 수 없다. 게다가 어떤 집의 앞마당에도 작은 해수욕장이 있을 정도이다. ‘제2의 제주도’를 꿈꾸는 자은도의 여행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층 풍성해진다.무한의 다리(사진| 전남 관광정보센터)여인송 70여 개의 유인도와 수백 개의 무인도를 포함해 1004개의 섬을 갖고 있기에 전남 신안군은 ‘천사의 섬’으로도 불린다. 백제 멸망 이후 변방, 비주류 게다가 벽지였기에 외지인들의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었던 신안의 섬들. 하지만 최근 ‘천사대교’의 개통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7.2km에 달하는 이 다리를 자가용으로 9분 가까이 달리는 동안 점점이 박힌 섬들과 그 주변의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이제 관광객들은 여객선을 이용하지 않고도 대교 건너 10개의 섬 자은도, 암태도, 추포도, 팔금도, 매도, 안좌도, 박지도, 반월도, 자라도, 부소도 등을 볼 수 있다. 그중 요즘 SNS에 자주 오르내리는 가장 핫한 곳을 꼽자면 단연 자은도이다.청동기 유적인 지석묘가 있기에 자은도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천사대교를 거쳐 은암대교를 건너자 ‘역사와 자연관광의 자은’이라는 표지석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글자 그대로 사랑(慈)과 은혜(恩)의 섬으로 느껴진다.여인송을 아시나요? 구영리는 면 소재지 마을로, 뒤쪽에 두봉산(斗峰山)이 있다. 이곳의 토박이들은 유독 우리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래서 두봉산이 아니라 말봉산으로 부른다. 인근 암태도에 승봉산(升峰山)이 있는데, 되봉산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말봉산과 되봉산의 높이 차이는 고작 8m뿐이다. 천사대교 개통 이후, 산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이 전세버스를 임대해 이 두 산을 오르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조선 후기 사대부 가옥 - 선교장의 겨울 정취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300년 전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경포호숫가에 ‘선교장’이라는 저택을 지었다. 만석꾼이었던 이내번과 자손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덕에 선교장이 품격 있는 강릉 대표 고택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겨울에는 한옥과 뒷산 솔숲이 어우러진 설경이 매우 아름답다. 강릉에 눈 소식이 들리면 가장 먼저 달려가고픈 곳이다.강원 강릉 선교장 활래정 설경강릉 최고 부잣집이었던 선교장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던가. 세종대왕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1703~1781)을 두고 한 말 같다. 이내번이 불현듯 나타난 족제비들을 따라갔다가 명당을 발견하고 그 터에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을 지었더니, 대대로 집안이 번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 강릉에서 한양까지 갈 때 선교장 땅만 밟고 가도 갈 수 있다는 말이 생길 만큼 선교장의 재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도 본채만 100여 칸이 넘고, 부속건물까지 합하면 280여 칸에 달한다. 선교장이 처음 지어졌을 당시에는 경포호수가 지금보다 세 배쯤 넓었다. 아마도 선교장 바로 앞까지 경포호수 물이 찰랑댔던 모양이다.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다 하여 ‘선교장’이라 이름 붙었다. 뒷산에는 수령 300~600년 된 금강송이 선교장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솔숲 오솔길에서 바라본 선교장 설경이 담백한 수묵화 같다. 99칸 저택이 눈 이불을 덮고 겨울잠을 자는 듯 사방이 고요하다. 사대부가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선교장의 유물전시관 내부여느 사대부 가옥과 다른 선교장의 건축 특징 선교장은 건물 구조가 여느 사대부 집들과는 다른 독특한 개성을 지녔다. 선교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인공호숫가에 세워진 활래정이다. 조선 후기 선비들이 운치에 반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그곳이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추사 김정희, 규원 정병조, 해강 김규진 등 당대를 대표하는 서화가들이 활래정을 거쳐 갔다
600년 전 지상에 세운 달나라 궁전 - 광한루원
옛날 사람들은 꽤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은하수 너머 달나라 궁전에 옥황상제와 선녀가 살고, 견우가 직녀가 은하수에 놓인 오작교에서 만난다고 상상했으니 말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이런 상상을 현실 세상에 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원은 그들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반영된 건축물이자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었다.광한루를 처음 세운 황희 정승 흔히 광한루와 광한루원을 혼용한다. 광한루(보물)는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로서 누각 한 채를 일컫는다. 광한루원(명승)은 광한루를 비롯해 연못, 오작교, 완월정,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등을 포함한 누원 전체를 말한다. 광한루를 처음 세운 이는 조선 시대 청백리로 이름난 황희(1363〜1452) 정승이다. 황희는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 폐위와 충녕대군 왕세자 책봉을 반대하다 태종의 눈 밖에 나, 남원에 유배됐다. 유배된 이듬해인 1414년(태종 14년), 남원 요천 강변 부친의 서재 터에 ‘광통루’라는 작은 누각을 세웠는데, 이것이 광한루의 전신이 되었다. 황희가 세종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복귀한 뒤, 남원 부사 민여공이 광통루를 큰 누각으로 고쳐 지었다. 하동부원군 정인지는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다. 남원 부사 장의국은 요천 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고, 오작교를 세웠다. 선조 때 전라도 관찰사 정철은 연못에 섬 세 개를 만들어 상상 속 달나라 궁전을 완성했다. 세 섬은 각각 한라산, 금강산, 지리산을 의미하며 지상낙원을 표현한 것. 섬 사이에는 나무다리를 놓았다. 만약 옛날에 나무다리가 없었다면, 은하수를 건너는 하얀 조각배 같은 나룻배를 띄워 연못을 건너지 않았을까. 광한루원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되기도 하고, 1960년대까지 재건과 보수를 거듭했다.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임을 알고 나면 돌덩이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전북 남원 광한루원 완월정 야경사랑이 싹트는 공간 광한루는
마음을 비우며 걷는 문경새재 단풍 숲길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 길 잃을까, 돌부리에 넘어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숲길이면 좋겠다. 기왕이면 단풍빛도 고왔으면. 그래서 고른 곳이 문경새재 옛길이다. 새도 넘기 힘들었다던 그 험한 고갯길이 지금은 누구라도 걸을 수 있을 만큼 훤해졌다. 옛길에 전해오는 옛이야기는 감칠맛 나는 양념 역할을 한다.10월 중하순경 문경새재에 단풍이 무르익는다.옛 선비들이 간절한 소망으로 걷던 길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때 조성한 영남대로(한양~부산 동래)의 고갯길이다. 영남에 사는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갈 때 영남대로를 이용했는데 문경새재, 추풍령, 죽령 중 한 고개를 선택하여 넘어야 했다. 선비들은 가장 험한 문경새재를 선호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소문에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시험에 낙방하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죽죽 미끄러지고, 문경은 ‘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지녀서라고. 황당한 소문에 기댈 정도로 과거급제가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는 옛 선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문경새재는 도립공원으로 조성되어 전 구간이 평지에 가깝다. 바닥을 고르게 잘 다져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구간도 있다. 울창한 숲은 어느 계절에 걸어도 좋지만, 가을을 최고로 꼽는다. 문경새재 길가에 누군가의 소원을 담은 수많은 돌탑이 쌓여 있다.문경새재를 지키는 세 개의 관문 문경새재 주차장에서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1.3k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제1관문인 ‘주흘관’이 보인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갈 때 맨 처음 통과하는 관문이다. 성벽에 주흘관을 지은 석공들의 이름과 개축 연도를 새긴 기록이 남아있다. 문경새재가 조성될 당시에는 관문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문경새재를 수월하게 넘어 한양을 함락한 사건 이후 약 100년에 걸쳐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제1관문 조흘관을 차례로 지었다. 그런데 관문을 세운 뒤로는 문경새재를 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