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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적 학습자의 등장과 교육적 대응

글_ 박휴용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Z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학습방식을 보인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학습을 받아온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훨씬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다. 뉴미디어가 요즘 청소년들의 학습방식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분석하고, 뉴미디어 환경 속에서 학습효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법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눈부신 기술문명의 발달은 현대인의 삶의 방식과 일상적 경험들로 하여금 다양한 기술과 도구들에 의존하게끔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의존성은 사람들의 생활과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이나 학습방식에도 큰 변화를 유발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과 뉴미디어, 휴대용 단말기 등이 일상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은 아날로그적 환경에서 나고 자란 기성세대와는 생활 방식이나 사고 혹은 학습방식 등 여러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세대의 학습방식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포스트현상학(post-phenomenology)이라는 최근 이론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포스트현상학으로 본 디지털 세대 학습방식

  포스트현상학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존의 현상학 이론의 대표적 갈래인 메를로-퐁티(Merleau-Ponty, 1966)의 현상학과 후설(Husserl, 1970)의 현상학이 모두 육체와 정신을 구별하는 이원론적 철학이라는 비판에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포스트현상학은 인간 경험의 결과인 지식(정신)과 지식을 처리하거나 저장하는 두뇌(신체)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일원론적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와 그 존재가 수행하는 학습을 이해하려는 관점이다(Ihde, 1995). 이는 사고의 주체로서의 인간(이성)과 사고의 대상으로서의 자연(물질 및 신체)을 구별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근대적인 과학적 합리주의 세계관을 수립했던 데카르트적 사고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데카르트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은 학습의 주체가 되는 학습자이고, 사물이나 지식 및 정보는 학습의 대상이라고 간주함으로써, 항상 학습자와 학습을 분리하여 생각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까지 지식이나 정보는 항상 학습자의 ‘외부’에 존재한다고 여기며, 학습자가 의식적으로 외부의 지식이나 정보를 여러 가지 의도적인 학습 행위를 통해 학습자의 ‘내부’(두뇌)로 전이시키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바로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학습이론이 이해하는 학습의 원리이자 전략이었다.

  하지만 포스트현상학에 따르면, 학습의 주체로서 학습자의 사고와 학습대상인 지식은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학습의 주체와 학습의 대상, 행위자와 메시지, 사고와 지식 등의 이분법적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현상들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 속에서의 뉴미디어의 등장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사회적 관계망(SNS)을 통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뉴미디어는 정보의 흐름이 비위계적이고 쌍방적이며, 작가와 독자가 완전히 구별되지 않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며, 메시지 자체의 내용적 진실성과는 별개로 매체 자체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Lister, Giddings, Dovey, Grant, & Kelly, 2008). 즉,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위와 같은 뉴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청소년들은 기성세대가 지식이나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나 태도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뉴미디어 환경이 청소년의 사고·학습에 미치는 영향

  뉴미디어적 환경이나 도구들이 청소년들의 사고와 학습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여러 원리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만 소개해 보자.

  첫째, 뉴미디어를 통해 흐르는 지식이나 정보는 인간의 의식을 직접적으로 거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즉 인간의 사고, 지각, 의식, 주목이 파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매개하거나 소통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뉴미디어는 매우 촘촘한 방식으로 인간의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이 일일이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Hansen, 2015). 따라서 뉴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지식이나 정보는 학생들의 무의식에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훨씬 더 큰 학습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둘째, 뉴미디어는 간접적이고 비인지적 차원에서 소통 주체들의 성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의 미디어들은 지나간 정보를 수집, 기록,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면, 뉴미디어는 미래의 행동을 예측해주고 안내해주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분석, 데이터 추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운용되는 뉴미디어는 사용자들의 메시지를 단순히 전달하는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알고 싶은 정보,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감정들을 예상하고 추측해서 자발적으로 안내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사용자들의 성향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뉴미디어는 지식이나 정보들을 다루면서 추론, 예측, 융합과 재조합, 창의적 아이디어의 생성 등을 촉발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과 사고를 지원할 수 있는 것이다(Hansen, 2015).

  셋째, 뉴미디어는 쌍방향 소통, 융통성 있고 신속한 정보처리, 정보탐색과 추출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의 역할을 통해 인간의 학습이나 기억의 유한성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학습이론은 지식이나 정보를 인간의 생물학적인 두뇌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에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절대적인 목표로 간주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학습이론은 인간만이 학습의 주체이고, 학습의 결과는 두뇌의 구조적, 기능적 변화라는 지극히 편협한 관점에 기반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노트나 메모장과 같은 과거의 기억 보조물에서부터 오늘날의 웹하드, 클라우딩 컴퓨터 기술들은 학습의 결과가 반드시 인간의 생물학적 두뇌에 저장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며, 최근 딥러닝(Deep learning)과 같은 인공지능 학습기술들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자율학습 알고리즘을 만들어내고 있다. 즉, 뉴미디어가 인간의 두뇌를 대신하는 ‘외부 기억 장소’의 역할을 하면서, 학습, 기억, 인출을 매개하는 핵심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Stiegler, 2011).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

  정리하자면, 오늘날 첨단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뉴미디어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사고하고 학습하는 방식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교육은 종이 교과서, 정형화된 지식, 틀에 박힌 교수·학습 활동에 의존함으로써,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세대가 지식과 정보를 다루고 경험하는 방식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중요한 학교 교육의 변화를 한 가지만 들자면, 앞으로의 교육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정보탐색, 외부 기억 장소의 활용, 지식의 융합적 활용 등을 포괄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뉴미디어에 익숙한 학생들은 과연 교과서에 ‘갇혀 있는’ 지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들이 지식이나 정보를 학습하는 뉴미디어적 방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뉴미디어적 성격을 활용하여 교수·학습 방법을 새롭게 개발할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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