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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세대를 위한 서·논술형 평가의 실태 및 과제

글 | 송진웅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수(서울대 교원양성혁신센터 센터장)


서·논술형 평가의 문항 개발, 채점기준표 개발, 교사 간 상호채점, 효율적인 피드백, 출제-채점-피드백 소요 시간 부족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학교 내에서, 교육청 단위로, 국가 수준에서 다양한 교사 지원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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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말은 교육의 설계와 실행에 있어서 충분한 고민과 치밀한 준비가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학입시와 관련된 문제는 그 사회적 관심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중장기적 안목이 필수적인 입시제도의 변화 중에서도 여전히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 중 하나는 ‘평가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다. 평가가 바뀌지 않는 한 학교 현장의 실질적인 교수학습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AI 혁명·인구절벽 사회의 창의성과 미래 역량


  우리 교육이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거대 사회변동이 있다. 하나는 ‘AI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인구절벽’이다. AI 혁명은 글로벌 차원의 사회변화로서 전 세계 모든 국가와 학교들이 공통으로 직면하고 있다. 스마트폰, 지식검색, 생성형 AI 등을 통해 그 엄청난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절감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디지털 전환을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 인간의 중재 없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제1차 학습혁명’이라 부를만하다. 


  한편, 2022년 0.78명을 기록했던 합계출산율은 2023년에는 0.70명이 예상되고 있다. 인구 위기를 넘어 인구절벽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세계사적으로도 전대미문의 출산율이며, 지방소멸과 국가소멸을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인적자원이 유일한 자원인 우리나라로서는 이보다 더 암울한 미래는 없을 것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와 관련되지만,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직접적이고 치명적이다. 


  AI 혁명과 인구절벽,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리키는 교육의 혁신 방향은 무엇일까? 인터넷만 치면 나오는 지식과 정보는 더 이상 교육과 학습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이미 오랫동안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목표는 ‘창의성’과 ‘미래역량’을 지향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교육과정의 목표가 실제로 구현되지 못하고, 그 정점에는 우리의 평가 방식이 있다는 점이다. 모든 문제는 주어지고 또한 주어진 5개 내외의 선택지에서 하나의 정답만을 고르는 방식으로는 학생들의 창의성도 미래역량도 길러질 수 없다. 



선다형 상대평가로 이뤄진 수능 시험


  먼저, 대학입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수능 시험을 보자. 국어/영어/수학/과학/사회/제2외국어의 모든 과목의 펑가는 5지 선다형 상대평가로 단 하루 만에 진행된다. 절대로 틀릴 수 없는 정답 하나와 절대로 맞을 수 없는 오답 4개가 주어지며, 평균 2분의 풀이 시간만 주어진다. 


  최근 국내에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국제바칼로레아(IB) 외부평가(EA)와 비교해 보자. 예컨대 물리학의 경우, 수능에서 물리학I 및 물리학II는 과학탐구 영역의 한 부분으로서, 각각 5지 선다형 객관식 총 20개 문항을 30분 동안 풀어야 하며 만점은 50점이다. 그리고 그 성적은 표준점수, 백분위, 등급 등 상대평가의 형태로만 주어진다. 즉, 다른 수험생 성적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최종 점수가 결정된다.


  반면, IB의 물리학은 표준 수준(Standard Level)과 고급 수준(Higher Level) 두 가지가 주어지며, 총 3차례(3일)에 걸쳐 시험을 치르게 된다. 1차 시험은 4지 선다형 문제로, 2차 및 3차 시험은 단답형 및 서술형이 혼합되어 주어진다. 각 시험은 60분, 135분, 75분으로 총 270분이 주어지며, 문항 수 또한 각 시험에 40문항, 11문항, 6문항으로 총 57문항에 이른다.


  특히, 2차 및 3차 시험의 경우, 계산기의 사용과 물리학 공식/기호를 담은 자료집(Data Booklet)도 주어진다. 서술형 문항의 답변은 엄격한 채점기준표(Rubric)에 따른 절대평가로 이뤄진다.1)

자격고사의 성격을 지닌 미국의 SAT를 제외한다면, 우리의 수능과 같은 선택형 상대평가로 대학입시의 핵심이 이루어지는 선진국은 없다. 이러한 수능 시험 방식은 고교 학습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수능 시험과 IB 외부평가가 각각 학교에서 어떤 성격의 학습을 유도할 것인가는 너무도 명확하다. 



평가 공정성 확보의 어려움 


  학교의 내신평가는 어떠한가? 수시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고교 3년을 전쟁처럼 보낸다. 특히 내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1학년 때 낮은 등급을 받게 되면, 좌절의 시간이 남아 있게 된다. 2~3학년 내내 학교 수업은 포기한 채 수능시험 준비에만 집중하거나 아예 학교를 자퇴하기도 한다.2) 또한 내신평가는 학교 내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그 경쟁 대상자는 우리 반, 우리 학교의 친구들이다. 내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친구들보다 얼마나 높은 등급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상대적 상실감은 불가피하고, 창의성과 미래역량의 핵심이 되는 동료들과의 협업과 소통은 요원하다.


  최근 수행된 한 연구3)에 따르면, 학문 분야에 따른 교과별 차이가 부분적으로 있었으나, 일반고에서 실시되는 내신평가의 유형은 평균적으로 선택형 지필고사(43.7%) > 서·논술형 수행평가(22.9%) > 서·논술형 지필평가(15.3%) > 기타 수행평가(16.0%) > 단답형 지필고사(6.4%) 순으로 나타났다. 내신평가의 경우에도 여전히 선택형 지필고사의 비중이 가장 높았으며, 지필평가의 비중은 총 65.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설문 및 초점집단면담(FGI)을 통해 확인된 서·논술형 평가에 대한 교사들의 대표적인 어려움은 채점에 대한 부담감, 채점 기준 설정의 어려움, 채점 및 피드백 제공에 필요한 시간의 부족 등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은 평가에 있어서 공정성 확보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성취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문항과 활동을 개발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답변하였다. 또한, 과학과 같이 여러 과목에 걸쳐 학년이 다른 많은 학생들을 평가해야 하는 경우 시간의 부족에 대한 부담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논술형 평가의 안착을 위한 과제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곧 학교 현장에 적용되고,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가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서·논술형 평가와 절대평가가 학교 현장에서 상시적으로 실시될 것이며, 창의성 및 미래역량 중심의 교육에 긍정적 기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준비가 시급한 것이 현실이다.


  첫째, ‘교수평기(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 일체화’의 원칙이 확고하게 지켜져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철학과 방향은 이미 창의성 및 미래역량 중심으로 수립되어 있다. 하지만 수업, 평가, 기록은 여전히 ‘선택형 지필평가’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논술형 중심의 학교 평가가 자리 잡지 못한다면 ‘교수평기 일체화’의 원칙은 지켜지기 어렵다. 


  둘째, 서·논술형 평가에 대한 교사의 어려움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서·논술형 평가의 문항 개발, 채점기준표 개발, 교사 간 상호채점, 효율적인 피드백, 출제-채점-피드백 소요 시간 부족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학교 내에서, 교육청 단위로, 국가 수준에서 다양한 교사 지원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교육청 단위의 ‘(가칭)교육과정평가지원센터’ 및 교육부 수준의 ‘(가칭)중앙채점센터’ 등이 설립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조직들은 서·논술형 평가에서 야기되기 쉬운 평가의 공정성 및 정확성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민원과 시비에 교사가 개인적 수준에서 노출되고 공격받는 위험을 없애는 데 매우 중요하다.


  셋째, 수능 시험을 서·논술형 절대평가 중심으로 서서히 바꾸어야 한다. 학교 차원에서의 노력이 아무리 이루어지더라도, 수능 시험의 변화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서·논술형 평가가 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정착되기 어렵다. 하지만, 급속한 수능 체제의 변화는 사교육을 크게 자극할 위험성도 높다. 따라서 서·논술형 중심의 수능 체제 도입은 공교육이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 단계적으로’ 도입되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 교육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AI 혁명과 인구절벽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미래세대를 ‘세계 최고’의 창의성과 미래역량의 인재로 길러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저마다의 소질, 적성, 포부에 따라 저마다의 높은 경쟁력을 갖춘 미래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 체제 전반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행복한 교육의 전제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성공적인 서·논술형 평가의 도입과 안착이 이를 위한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1)   송진웅 등 (2021). <대입 논술형 수능 체제 설계를 위한 평가 시스템 및 교원 양성 프로그램 기초 연구: IB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혁신센터 정책과제 보고서, 157쪽.

2)  <“고등학교 첫 시험 망치면 자퇴”> 늘어나는 고1 자퇴생들. 조선일보 2023년 5월 26일. 

3)  송진웅 등 (2022). <미래형 교육체제 전환에 따른 서·논술형 기반 평가 및 대학입시 개선방안 연구>. 대구광역시교육청 정책연구 최종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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