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대안교육 25년, 다시 ‘삶을 위한 인생학교’를 꿈꾸며

글 _ 여태전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 교수

학생들은 왜 학교를 떠나려 하는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학업증명 학생현황 및 학업중단 숙려제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초·중·고 학업중단 학생 수는 4만 2,755명이다. 2019년 5만 2,261명이었다가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 3만 2,027명으로 줄었는데 2021년에 다시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는 고등학생 2만 131명이 학교를 떠났다. 전체 학업중단 학생 중 거의 절반인 47.1%가 고등학생이다. 이들의 자퇴 사유는 ‘기타’가 1만 2,337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부적응(학업, 대인관계 등)이 4,397명, 해외출국 1,814명, 질병 1,081명 순이었다. 


  학업중단 사유 중 왜 ‘기타’가 이렇게 높을까? 다수의 자퇴 학생이 학교 안의 내신성적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입시대열에 줄을 선다는 점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다만 달라진 분위기는 이제 자퇴생들도 당당하게 친구들과 파티를 열며 학교를 떠난다는 점이다. 이런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어 ‘자퇴 브이로그’에 올리는 게 요즘 인기를 끈다고 한다. 일부 자퇴 브이로그는 조회 수가 500만 회가 넘었다고 한다. 지난 1년간 ‘자퇴’라는 키워드의 일일  조회 수가 적게는 10만 회, 많게는 40만 회라고 한다. 몸은 학교 안에 있어도 마음은 학교 밖을 떠도는 학생들이 이렇게 많다는 이야기다.

왜 학생들은 이렇듯 학교를 떠나려고 하는가? 문득 2015년에 어느 여고 2학년 학생이 자퇴를 선언하고 1인 시위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그 학생은 “경쟁만 남은 배움 없는 학교에 있을 수 없어 나는 학교를 그만둔다. 주입식 교육으로 학생들의 사고를 굳히면서 창의적 인재를 운운하는 학교와 국가의 모순을 고발한다.”라고 했다.


  학생들이 왜 학교를 떠나는가에 대한 답변은 28년 전 1994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교실 이데아’란 노래 가사에도 그대로 담겨있다. “됐어(됐어),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중략)- 이 시커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서태지가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유다.


  더 큰 비극과 불행은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성적 비관이나 학교폭력으로 인한 청소년 자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86년 1월 어느 여중생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는 아직도 우리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벌써 36년 전의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비극적인 유서를 되새김질하며 우리 교육의 현실을 한탄해야만 하는가?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하겠다는 우리나라 교육의 비전은 언제쯤 실현될 수 있단 말인가? 



입시를 위한 학교, 삶을 위한 대안학교

  도대체 한국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참여정부에서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의 다음과 같은 진단에 깊이 공감한다.

  “기업에서 학벌 위주로 뽑는 데다, 패자부활전이 없다. 대학 졸업 때 좋은 직장 못 가면 평생 못 간다. 그게 학교의 입시위주 공부 환경을 만들고, 근시안적인 인간을 만든다. 일류대학의 이기주의도 학생들을 고통으로 몰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교육문제나 학생들의 건강과 장래에 대해 관심이 없다. 똑똑하고 돈 많은 집 학생들을 뽑겠다는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방조하고 조장한다. 대학, 기업, 정부 3자의 공동작품이 한국의 입시지옥이다.”(2010.11.15. 한겨레)


  그렇다. 한국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입시지옥’에 있다. 그러니 학벌사회 구조와 입시위주 교육 시스템 속에 갇힌 한국 교육은 끝없이 탐욕을 부추기는 ‘승자독식 사회의 과잉경쟁 교육’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들도 선생님도 다니고 싶은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진정한 배움의 기쁨을 만끽하며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학교를 만들 수 있을까? 배우는 대로 살아가고, 살아가는 대로 가르칠 수 있는 진정한 삶의 학교, 인생학교는 그 어디 없을까?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의 ‘대안교육 운동’은 바로 위와 같은 질문과 성찰적 사유에서 출발했다. 

“이대로 살아가기에는, 우리 아이들이나 우리 자신들에게나 인생이 너무나 짧고 소중하다. 진정 길은 없는가? 길이 없다고 갈 수 없는가? 아니다. 길은 만들면 되는 것이다. 어둠을 한탄하기만 할 것인가? 결코 아니다. 어둠은 밝히면 되는 것이다. 낫 한 자루로도 숲속에 길을 만들 수 있고 작은 촛불 하나로도 큰 방을 밝힐 수 있다.”


  간디학교 설립자 양희규 선생이 1997년에 발간한 책 <사랑과 자발성의 교육>에 담긴 성찰적 메시지다. 언제까지 세상 탓, 정부 탓만 하며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없다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하여 ‘낫 한 자루’와 ‘촛불 하나’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내며 희망을 노래한 것이다. 


  그때 이후 25년이 흘렀다. 대안교육 25년을 회고하면 참으로 많은 회한이 떠오른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 감동과 절망이 하나로 어우러져 ‘오늘, 지금, 여기’에 있다. 나는 평소 바다를 썩지 않게 하는 3% 소금 같은 학교가 필요하다고 외쳐왔다. 그래서 18년 동안의 일반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산청 간디학교에서 대안학교 교사로서 거듭났다. 이후 창원 태봉고등학교에서 공립 대안학교 시대를 여는 초석을 놓았다. 나아가 지난 8년간은 남해 상주중학교에서 ‘돌아오는 농촌 다시 사는 마을학교’라는 비전을 걸고 ‘남해금산 교육마을’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지난 16년간 대안교육 현장에서 ‘삶을 위한 대안학교’ 만들기에 온 열정을 바쳤다.



다시, 꿈과 사랑으로 함께 여는 인생학교

  2022년 4월 현재 인가받은 대안학교 및 대안교육 특성화 중·고등학교는 모두 94개교다. 즉 대안학교(각종학교)가 50개교(공립 22/사립 28), 대안교육 특성화중학교 19개교(공립 5/사립 14),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가 25개교(공립 5/사립 20)다. 결론적으로 공립이 32개교, 사립이 62개교다. 인가받지 않은 비(미)인가 대안학교는 정확한 통계를 잡을 수 없지만 적게는 400여 개교, 많게는 600여 개교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대안교육기관법’이 발효됨에 따라서 비(미)인가 대안학교들도 ‘등록’ 절차를 거쳐 하나둘 합법화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학생 중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약 1% 남짓이다. 아직도 2%가 부족하다. 그래서 목이 타고 속이 탄다. 최근에는 학령인구 감소와 공교육의 혁신으로 대안학교 학생 모집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한다. 대안학교의 위기론이 분분하다. 하지만 위기가 또 다른 기회임이 분명하다. 아직도 입시위주 교육 시스템은 철옹성처럼 공고하고 학생들은 오늘도 ‘자퇴 브이로그’를 접속하며 학교를 떠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간디학교 교가 가사다. 그렇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결국 오늘도 대안을 찾으며 우리가 걷는 길은 ‘꿈과 사랑의 길’이다. 이 길은 어쩌면 처음부터 ‘없는 길’, ‘낯선 길’,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꿈과 사랑의 깃발을 흔드는 사람은 가슴이 뛰고 설레는 것이다.


  누군가가 왜 당신은 일반학교를 버리고 떠나와 대안학교에 뛰어들었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꿈꾸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꿈과 사랑의 깃발을 흔들며 행복학교, 삶의 학교, 미래학교를 만들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그게 곧 내가 꿈꾸는 ‘삶을 위한 인생학교’라고 말한다. 


  스펙트럼을 통과하는 빛의 파장만큼이나 삶은 다양하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교육에도 정답이 없다. 다만 함께 손잡고 삶을 배워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만인에게 만인의 삶이 있듯이, 대안교육은 만인의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삶이 곧 교육이고, 생활이 곧 교육이다. 


  대안교육을 꿈꾸는 사람은 진보교육 운동의 최전선에 서서 삶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 사람이 대안을 찾는 사람이다. 


  나는 다시 꿈과 사랑으로 함께 여는 ‘삶을 위한 인생학교’를 상상한다. 마을과 학교가 구분 없고, 주민과 학생이 구분 없고, 교사와 학생이 구분 없고, 수업과 삶이 구분 없는 ‘남해금산 교육마을’의 ‘보물섬인생학교’를 꿈꾸고 있다. 

기사 이미지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