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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관리하는 최선의 길

글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유학대학원장)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가족·세대·진영·국가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갈등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기존의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기도 전에 또 새로운 갈등이 생겨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늘 갈등 속에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로감을 느끼면 우리는 반사적으로 ‘갈등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희망 사항이다. ‘갈등 없는 세상’을 꿈꿀 수 있지만 과연 인간 사회에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갈등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인류의 역사 초기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비교적 약하거나 거의 없는 상태가 있었다. 경쟁이 없는 상태라 갈등이 생길 원인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왕(聖王)처럼 영적 지도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범을 제시하면 다른 사람은 그걸 모방하여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면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때 대부분 사람은 문자를 해독할 줄도 모르고 문제 상황을 풀어가는 굳이 독자적인 방안을 생각해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철기시대 이후에 사람은 성왕의 모범을 자신의 답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각자 독자적인 주의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전국시대 묵자는 이러한 상황을 십인일의(十人一義)나 천인일의(千人一義)에 대비해서 십인십의(十人十義)나 천인천의(千人千義)로 표현했다. 전자는 사람이 열이든 천이든 하나의 주장을 가진다는 반면에 후자는 사람이 열 명 있으면 열 가지 주장이 있고 천 명 있으면 천 가지 주장이 있다는 말이다. 묵자는 ‘갈등’이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지만, 속뜻으로 보면 늘어가는 갈등에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갈등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갈등으로 인한 문제를 풀어가려면 구분해야 할 지점이 있다. 즉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나는 현상’과 ‘갈등을 풀어가기가 어려운 과제’를 구분해야 한다.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있다는 사실은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갈등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는 사회마다 있는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 가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이 문명화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갈등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갈등을 인정하고 갈등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갈등의 관리라고 할 수 있다.



갈등을 관리하는 세 가지 원칙 

  갈등이 인간 사회에서 없을 수 없다는 사실은 갈등이란 말 자체에 그대로 드러난다. 갈등(葛藤)은 각각 칡과 등나무를 가리킨다. 칡과 등나무는 자라면서 뻗어나가는 생태가 상반된다. 즉 칡은 시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뻗어나가고 등나무는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뻗어나간다. 이처럼 생태가 다른 두 나무를 한 곳에 심어두면 서로 얽히고설키게 된다. 이처럼 갈과 등이 함께 자란다는 것 자체는 서로 풀 수 없는 관계로 악화될 뿐만 아니라 피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 지점에서 갈등은 꼭 갈과 등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갈등의 해법은 제일 먼저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나와 같은 편만 있고 상대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그런 상황은 기대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갈이 없으면 등이 있을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 나만이 옳고 상대가 그르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오늘날 ‘아시타비(我是他非·내로남불을 한자로 옮긴 말)’라는 신조어로 말하지만, 오래전부터 노자(老子) 등은 ‘자시(自是)’라고 명명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므로 그만큼 시야가 좁아진다. 자시는 심리적 위안을 줄지언정 결국 모든 것을 환히 비추는 전체의 안목을 갖지 못한다. 진리는 나만이 찾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찾을 수 있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생각의 흥정이다. 누구라도 합리적인 주장을 펼친다면 우리는 더 나은 점을 주고받는 숙고와 조정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 단계에서 생각의 흥정을 하면 서로가 만족하는 합의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원칙은 갈등을 관리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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