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세계인은 왜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나

정덕현 문화평론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다. 콘텐츠의 성공만이 아니라 드라마 속에 등장한 놀이와 의상까지 유행될 정도였다. 도대체 무엇이 <오징어 게임>에 대한 글로벌 대중들의 신드롬급 열광을 만든 걸까. 그리고 이것은 무얼 시사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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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성취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그간 로컬에만 묶여

시도되지 않았던 K콘텐츠의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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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신드롬이 된 <오징어 게임>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으로 들썩들썩하고 있다. 과장된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지난 10월 13일 넷플릭스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수치가 그걸 말해준다.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 1억 1,100만 명이 시청한 작품으로 이전 시청자 수 1위였던 <브리저튼(8,200만 가구 시청)>을 앞질렀다는 것. 외신들도 일제히 <오징어 게임> 신드롬에 대한 해석과 비평 등을 쏟아냈다. CNN은 “<오징어 게임>이 화제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은 절제된 표현”이라며 <오징어 게임> 흥행은 “한국 영화 <기생충>에서 드러났던 것과 매우 같은 현상”이라고 했고,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가장 기이하고 매혹적인 넷플릭스 작품 중 하나”라고 했다. 뉴욕포스트에서 발간하는 리뷰 전문 매체 디사이더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스릴 넘치는 드라마로 승화시켰다.”라고 평했고, 프랑스의 매체 RTL은 “K드라마의 고전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서스펜스를 제공한다. 당신의 신경을 자극할 훌륭한 시리즈”라고 호평했다.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신드롬 양상을 띠고 있다. 드라마 속 등장한 ‘달고나 만들기 게임’이나 극중 인물들의 의상들이 상품화되고 있고, 한 해의 인기 있는 콘텐츠를 상징하기도 하는 핼러윈 데이 코스튬에도 캐릭터 상품들이 등장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해외 통신원 리포트를 보면 전 세계인들의 일상 속으로 파고든 <오징어 게임>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스위스 운전면허증에 새겨진 ○△□(색맹인 이들을 위해 예전 신호등이 이 도형에 색을 넣어 썼다고 한다.)가 새삼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심볼 ○△□로 화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나, 미국 언론들이 “올해 핼러윈 의상은 <오징어 게임>이 싹쓸이 할 것으로 예측한다.”라는 내용들, UAE,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에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분석한 내용 등등이 이 리포트를 가득 채우고 있다. 콘텐츠의 성공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문화와 일상 속으로까지 파고드는 신드롬 양상을 가져온 <오징어 게임>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게 된 걸까.



한국적 특수성이 글로벌 보편성을 건드릴 때

  <오징어 게임> 신드롬은 갑자기 벌어진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 최근 몇 년간 한국 콘텐츠들이 일관되게 글로벌한 관심과 주목을 받았던 그 흐름 위에 있다. <비밀의 숲>이 2017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국제 TV 드라마 TOP10에 올랐을 때 해외에서 주목한 건 익숙한 장르물을 세련되게 만들어내면서도 ‘검찰 개혁’ 같은 한국적 특수성을 녹여냈다는 사실이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의 등장은, 로컬의 색깔이 분명해 차별성이 있는 동시에 장르나 주제의식에서 글로벌한 설득력을 가지는 콘텐츠를 요구하게 했다. <비밀의 숲>은 바로 그런 콘텐츠였던 것이다. 이후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됐던 <킹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좀비’라는 키워드로 제시된 이 콘텐츠의 정체성은 좀비라는 글로벌하게 익숙한 장르를 조선시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녹여냄으로써 전 세계적 인기를 만들었다. 


  특히 한국 콘텐츠들은 세련되면서도 대중적인 장르물 속에 자못 심각한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데서 전 세계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비밀의 숲>의 정의의 문제나, <킹덤>에 담겨진 조선시대로 극화된 양극화된 삶의 문제가 그랬고, 영화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나 <기생충>이 해왔던 자본화된 세상의 계급구조의 부조리 같은 문제가 대중적인 장르로 구현되어 재미와 의미를 모두 확보하는 성취를 보이곤 했다. <오징어 게임>의 성취는 그래서 바로 이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배틀로얄>이나 <헝거게임> 같은 익숙한 데스 서바이벌 장르를 가져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구조를 은유하고 풍자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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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콘텐츠들은 세련되면서도 대중적인 장르물 속에 자못 심각한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데서 전 세계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진은 <오징어 게임>의 장면들.



글로벌 환경 속 K콘텐츠의 변화

<오징어 게임>의 성취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그간 로컬에만 묶여 시도되지 않았던 K콘텐츠의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글로벌 대중을 소비자로 상정하기 시작하면서 K콘텐츠도 보다 다양한 소재와 표현 수위를 시도하기 시작했다는 것. 물론 이러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OTT 시대에 사실상 넷플릭스 같은 해외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 후한 제작비를 주면서 콘텐츠 저작권을 모두 가져가는 상황(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에 약 250억을 투자해 전 세계 1억 가구가 시청하는 대박을 터트렸다.)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결국 넷플릭스의 하청업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성공으로 티빙 같은 토종 OTT가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을 내세워 해외 자본을 손쉽게 끌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상황을 보여준다. 즉 <오징어 게임>은 그 성과를 온전히 넷플릭스가 가져가겠지만, 이로써 향후 한국 콘텐츠 제작사들이나 토종 OTT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나은 조건들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이처럼 콘텐츠 비즈니스는 이제 플랫폼들과 콘텐츠 제작사 사이의 균형 있는 긴장 속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넷플릭스 같은 거대 글로벌 플랫폼도 <오징어 게임> 같은 독보적인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내놓지 못하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어서다.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하는 건, 글로벌 상찬에 대한 자부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 네트워크로 만들어지고 있는 글로벌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그 속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콘텐츠 시장만이 아닌 전 산업분야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드림 소사이어티’로 들어온 현재, 산업은 콘텐츠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