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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이 아니어도 괜찮아

글 _ 박경호 제주대학교 해양스포츠센터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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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챔피언만을 동경하던 우리의 스포츠 문화 또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제2, 제3의 우상혁과 같은 미소를 우리는 더욱 빈번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기사 이미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2020년 도쿄올림픽의 성화는 1년이 지나 점화되었다. 이번 올림픽은 개막 직전까지 개최 여부에 대한 의문이 존재했을 만큼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관중 없이 개최된 올림픽이었음에도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오히려 지연된 시간만큼 더 구슬땀을 쏟으며 대회를 준비하였다. 대회 중 다양한 신기록이 쏟아져 나온 것이 선수들의 이러한 노력을 증명해 준다.


  특히 올림픽의 역사와 스포츠 정책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로서 이번 도쿄올림픽의 특별한 한 장면이 너무나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바로 남자 육상 높이뛰기 결선에 진출하여 24년 만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마지막 도전에서 아쉽게 실패한 우상혁 선수의 환한 미소였다. ‘마의 높이’라는 2m 39cm에 도전하여 실패한 우상혁은 메달을 딴 선수만큼 환하게 웃으며 스스로 “괜찮아”를 외쳤다. 지난 5년간 올림픽을 준비하며 흘린 땀방울을 생각하면 메달 획득에 실패한 것이 다소 아쉬울 법했지만, 챔피언과 같은 미소를 지은 그는 최선을 다한 스스로에게 너무나 만족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우상혁의 미소는 과거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였다. 과연, 우상혁이 태어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 안타깝게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준결승에서 패배하여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 아니면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4위에 입상한 선수 중에서 우상혁처럼 미소를 지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기억하는 올림픽 은메달과 동메달리스트, 그리고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대부분 ‘죄인’ 같은 눈물을 흘리며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로 마치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전 세계에서 2, 3위에 오른 것이 과연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할 문제였을까? 그들은 왜 ‘세계적인 선수’가 아니라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선수’로만 기억되어 왔을까?


내셔널리즘에 매몰됐던 한국 스포츠 문화

  지난 50여 년간 한국의 스포츠를 지배해 온 소위 ‘스포츠 내셔널리즘’은 우리나라의 스포츠 문화에 결과 지향적인 특성을 뿌리내리게 하였다. “패배하면 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라는 필승의 각오가 마치 상징처럼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강요되던 시대였다. 1970~80년대 굶주린 국민들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적 위상을 선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개체가 바로 스포츠였다. 수십 년간 각종 스포츠에,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에 ‘국가의 자존심’이라는 무게감이 가중되면서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거나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즐기며’ 운동한다는 대명제는 망각한 채 스포츠 내셔널리즘에 매몰되어 왔다. 이러한 강요된 책임감이 그동안 우리의 올림픽 선수들에게서 미소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 챔피언만을 동경하던 우리의 스포츠 문화 또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국가대표를 꿈꾸기보다는 스포츠 참여에 의미를 두고, 운동을 통해 흘리는 땀방울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소위 ‘생활체육’의 가치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가 정책적 테두리 안에서 급속하게 발전되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대한민국 체육 정책의 방향성은 ‘생활체육을 기반으로 한 전문체육의 육성’이라는 이상향을 바라보고 있다.


  생활체육을 기반으로 한 전문체육 육성은 기본적으로 자발성에 근간을 둔다. 즉, 과거의 학교 운동부가 그래왔던 것처럼, 신체조건이 특정 종목에 적합하다고 하여 코치나 감독이 억지로 선발하고 훈련시켜 메달 따는 기계로 양성하는 시스템을 지양한다. 본인이 하고 싶은 종목에 스스로 참여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이것이 우리가 이상적이라며 동경하는, 소위 스포츠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에 뿌리 내려 있는 문화적 토양이다. 그 대신 본인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스스로 금전적, 시간적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최고 수준의 선수로 성장하고자 노력한다. 자신의 한계를 증명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이다. 의사인 아르헨티나 유도 국가대표, 의상 디자이너인 미국 펜싱 국가대표, 초등교사인 미국 육상선수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다. 



생활체육 활성화 토대로 전문체육 육성

  장기적으로 보면, ‘자발성을 전제로 한 생활체육 토대의 전문체육 육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에 대부분의 체육전문가들 또한 동의할 것이다. 다만 ‘생활체육으로 시작해서 올림픽 메달을 딸 수 있을까?’, ‘비인기 종목은 선수 수급이 어려워지고 도태될 것이다.’,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이 현재와 비교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다.’ 등의 반론을 제기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존재할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며 매우 현실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필요도 있다. ‘왜 반드시 올림픽 메달을 따야 하는가?’ 또, ‘왜 우리가 꼭 스포츠 강국이 되어야 하는가?’ 아울러 ‘왜 그 종목은 비인기 종목이 될 수밖에 없는가?’라고 말이다.


  2021년 대한민국의 스포츠는 ‘가보지 않은 길’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불안감도 있고 기대감도 상존한다. 하지만 우리가 왜 이러한 새로운 길을 가보고자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공감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지난 50여 년간 전문체육 중심의 체육 정책으로 인해 야기된 수많은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체육계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우리가 해 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확실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시행착오가 존재할 것이며 과거로 회귀하자는 현장의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히 자신할 수 있다.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하여 스포츠 참여 자체에 가치를 두고, 성적보다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는 측면에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스포츠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면 분명히 제2, 제3의 우상혁과 같은 미소를 우리는 더욱 빈번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 동호회 선수 여부를 떠나, 스포츠 참여를 통해 활짝 웃을 수 있는 국민이 늘어난다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더욱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도쿄 하늘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며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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