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이야기 인문학 영화 <미나리>와 떠나는 삶

글 _ 강선형 영화평론가


미나리 정이삭 감독 드라마│112분│2020 사진=판씨네마미나리 정이삭 감독 드라마│112분│2020 사진=판씨네마


떠나는 삶에 관하여

  재일 동포 작가 서경식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두 형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한국에서 옥살이하게 되자 형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이 ‘생활’이 되어버린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형이 갇히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1971년과 1972년의 10월 유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다른 데로 눈 돌리기 위해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각각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와 법대를 다니고 있던 두 형 역시 북한의 지령을 받고 서울대학교에 잠입한 자들이고, 박정희 대통령의 3선 반대 투쟁을 배후 조종하여 정부 전복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었다. 서경식은 두 형이 갇힌 이후 뒤바뀐 삶에 대하여 보편적인 대의에 가닿는 삶이기도 했지만, 또한 스스로의 무력함과 왜소함을 알게 하는 나날이었음을 고백한다.


  그의 서양미술 순례는 바로 그런 나날들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행 중 우연히 듣게 된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이 옥중의 형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지 걱정하며, 스페인행 야간열차 속에서의 그 마음이 무서운 파국을 피할 수 없는 망명자의 심경과 같았음을 떠올린다. 고야의 <모래에 묻히는 개>를 보며 그는 그 개가 꼭 자신 같다고 느낀다. 옥중에 있는 형들을 두고 유럽을 배회하는 그 자신의 모습이,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과제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이, 고야의 개처럼 급류를 허겁지겁 건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옥에 삼켜져 있는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두고 떠나온 삶, 그러나 그것을 찾으러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이 개와 같은 삶, 떠나는 삶 또는 떠나야만 하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미나리>와 떠나는 삶

  영화 <미나리>는 이러한 떠나는 삶, 떠나온 삶의 형태 속에서 살아가는 1980년대의 미국 이민자 가족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바퀴 달린 집에 살면서 끝없이 씨를 뿌리고, 결국 뿌리를 내리는 그 씨앗들처럼 연약하면서도 강인하게 살아간다. 그들이 한국을 떠나온 이유는 영화 속에서 자세히 설명되고 있지 않지만 상처와 절망 때문일 것이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낯선 땅에서도 견디고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자기밖에 없는 어머니를 모시고 와야 한다는 모니카(한예리)의 마음이 그녀를 견디게 하고, 제이콥(스티븐 연)은 꿈의 무게가 견디게 하고, 두 사람은 아이들이 견디게 하고, 그렇게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늘 씨를 뿌린다. 그래서 그들은 늘 싸우면서도 그렇게 견뎌 나간다. 그들은 할머니(윤여정)가 흩뿌리는 미나리처럼 그렇게 늘 스스로 희망을 심으며 살아간다.


  이런 <미나리>가 미국에서 인정받게 되는 과정은 이것이 담고 있는 떠나는 삶, 그리고 떠나온 삶의 형태와 닮아 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감독과 제작진이 모두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대사의 반 이상이 외국어라는 이유로 작품상에 출품할 수 없게 되었지만,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후보에 오르고,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이 영화의 정체성을 다시금 되찾게 되기도 했던 것이다. 떠나는 자들의 삶, 떠나온 자들의 삶은, <미나리>가 외국 영화라는 정체성으로 인정받거나 미국 영화라는 정체성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나리>라는 영화로서 인정을 받은 것처럼, 그들 자신의 삶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전하는 것이다. 영화 속 할머니가 심는 미나리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희망도, 미국인들의 희망도, 미국 이민자들의 희망도 될 수 있다. 그 무엇 하나로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미나리>에는 주인공 가족들과 함께 아칸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제이콥의 농사일을 돕는 폴(월 패튼)은 아마도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아왔을 것이다. 미국의 기독교적 전통 아래에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살아왔을 폴의 서사는 미국의 소작농 몰락의 역사와 겹쳐지면서, 이 이민자 가족들의 삶과 만난다. 또, 데이빗(앨런 김)이 교회에서 만나 친구가 되는 조니(제이콥 M. 웨이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외박을 비밀로 해달라는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네 얼굴은 왜 그렇게 평평해?’ 묻는 조니의 서사는 미국의 해체되어 가는 가족의 역사와 겹쳐진다. 그래서 바퀴 달린 집에서 살아가는 미국 이민자들의 역사는 이렇게 미국의 역사와 조우하고, <미나리>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을 견뎌내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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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는 떠나는 삶, 떠나온 삶의 형태 속에서 살아가는 1980년대의 미국 이민자 가족을 그리고 있다.


흩뿌려지는 미나리들

  이렇게 모든 것들이 잿더미가 된 뒤에도 자라나는 미나리는 아칸소 풍경 속에서 모두에게 다시금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할머니가 퍼뜨린 불씨는 그래서 완전히 모든 것을 태워버린 뒤에도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절망으로만 남아있지 않다. 서경식은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히 고백하면서 말한다. ‘지나간 20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서경식의 말처럼 흩뿌려지는 불씨와 미나리는 그렇게 함께 위대한 삶의 궤적을 이룬다.


  우리는 전무후무한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아마도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이후에도 우리는 한동안 자유롭게 떠나고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방인들’이 퍼뜨린 낯설고 악한 감염병이라는 사고방식을 우리 모두는 언제쯤 모두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누군가는 다시금 씨앗을 뿌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언제 그만큼 자라났는지도 모르게 자라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 흩뿌려진 바이러스만큼 만연하게 된 혐오들로부터 벗어나, 다시 자라나는 영화 속 미나리와 영화 <미나리>처럼 우리는 그렇게 다시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미나리>는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그런 기다리는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