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트로트의 정치학

글 차우진 음악평론가

  나는 트로트를 잘 듣지 않는다. 아무래도 가까워지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것이 세대의 문제라고도 생각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트로트는 음악적으로 1930년대 유행한 폭스트롯의 변형이자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엔카, 엘레제 등이 혼합된 결과이자 문화적으로는 한국전쟁 후 실향, 이산가족, 비련, 도시화 등을 소재로 삼아 서글픈 운명을 위로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1975년에 태어난 나로서는 이 리듬과 정서에 익숙해지기 어려웠고, 나와 비슷한 또래들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를 직접적으로 소비하면서 자란 세대에게 트로트는 과거의 유물 이상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9년,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화제가 되면서 트로트에 대한 생각이 일부 바뀌었다. 2010년 무렵의 나는 2020년 정도가 되면 한국에는 처음으로 ‘트로트를 듣지 않는 중년’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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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TV조선 방송화면 캡처


  내게 트로트는 ‘개발도상국’이라는 20세기 한국의 공감각적 경험이 특정 세대에게 강렬하게 들러붙은 장르였다.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돈 벌러 도시로 떠난 애인의 변심으로 상처받은 사랑 노래들, 전쟁통에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는 노래, 다들 돈타령만 하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수는 어디에 있느냐고 외치는 노래, 촌놈이 서울에서 어떻게 정착했고 성공했고 실패했는지 구구절절한 사연들. 이 노래들은 한국의 도시화, 산업화, 민주화 과정의 빛과 그림자를 담으며 그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과 공감했다. 


  이것은 명백히 사회문화적이자 세대적 경험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회가 달라진, 정확히는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달라진 90년대 이후에 트로트는 자연스레 소멸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로트는 사라지긴커녕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젊은 피를 수혈하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장윤정과 박현빈은 21세기 대중음악 비즈니스의 최전방이던 노래방(음원과 음반보다 노래방 매출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에서 10대와 20대를 사로잡았고, <무한도전>은 가요제에서 온갖 장르를 선보였지만 특히 트로트가 결합된 음악들이 오래도록 사랑받았다. 뿐만 아니라 빅뱅의 지드래곤이 작곡하고 대성이 부른 “날 봐, 귀순”, 그리고 슈퍼주니어의 “로꾸거”나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 같은 곡이 꾸준히 화제가 되면서 맙소사, 나의 가설은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했다.


  물론 ‘시티팝’이니 ‘뉴트로’니 ‘온라인 탑골공원’, ‘양준일’ 같은 90년대의 귀환이 있었지만, <미스트롯>과 송가인 팬클럽 ‘어게인’의 등장, <미스터트롯>의 성공을 보면 트로트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이것은 기존의 세대적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트로트는 음악적으로도, 재현에 있어서도 촌스러웠다. 반짝이 의상은 말할 것도 없고, 기쁨이나 슬픔이나 그저 직설적인 표현만 일삼는 것을 비롯해 활용되는 악기와 비트 역시 공들인 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트로트를 ‘저급한 문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트로트는 관찰하거나 해석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문화연구에 있어서 트로트는 상당히 흥미로운 대상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트로트를 지탱하던 요소들은 쪼개졌다. 맥락이 제거된 촌스러움이 단편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이런 스타일이 코미디적인 요소로 소비되면서 트로트는 일종의 유희가 될 수 있었다. 트로트에 열광하는 고교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거기에는 오직 즐거움이 있다. 소비하는 주체와 방식이 달라지면서 트로트의 여러 맥락 중 재미만 남았다.


  이때 새삼 ‘엔터테인먼트’의 속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쾌락은 미디어 포화 상태의 결과다. 현재의 콘텐츠는 노출 그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감각의 경계를 타고 노는 다수의 콘텐츠 지형도 안에 트로트가 위치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실은 이게 핵심적인 질문인데, 바로 여기서 새로운 감각의 탄생을 상상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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