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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⑤ 세계 최대 에듀테크 박람회 ‘Bett 2023’을 가다

글·사진 문보경 전자신문 차장

  세계 최대 에듀테크 박람회인 ‘Bett 2023(British Educational Training and Technology Show 2023)’이 영국 런던 엑셀 전시장에서 지난 3월 29일(현지시간)부터 31일까지 교육계의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교육 현안을 기술로 풀어가는 혜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기자단도 설레었다. 전년보다 거대해진 콘퍼런스와 올해 새로 시작한 ‘커넥트@벳(Connect@Bett)’은 한국 교육계와 교육 분야 기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생각을 뛰어넘을 만큼 다양한 에듀테크도 그렇지만 박람회 현장을 종횡무진하는 교사들의 활동도 관심을 끌었다. 

커넥트@벳. 15분 시간을 정해 놓고 학교 구매담당자들과 에듀테크 기업이 스피드 미팅을 하고 있다.(출처 = Bett 2023 공식 홈페이지커넥트@벳. 15분 시간을 정해 놓고 학교 구매담당자들과 에듀테크 기업이 스피드 미팅을 하고 있다.(출처 = Bett 2023 공식 홈페이지


학생 생활안전 위협 대응, 데이터 활용을 위한 보안까지 무궁무진한 에듀테크

  Bett 2023 주제는 ‘리커넥트(Re-connect), 리이매진(Re-imagine), 리뉴(Re-new)’다. 교육 생태계를 다시 연결하고(Re-connect), 교육에서 기술의 잠재력을 재구상하고(Re-imagine), 모두에게 공평한 학습을 다시 새롭게 약속하자(Re-new)는 것이 총괄 테마다. 


  총 3만 1,500㎡ 규모의 엑셀 전시장에서는 23개국, 600개 이상의 에듀테크 기업이 참가해 에듀테크 솔루션 전시와 함께 5,000개 이상의 콘퍼런스와 세미나, 강연 행사를 진행했다. 


  주요 참가기업의 사업 분야는 유아부터 초·중·고등교육 현장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솔루션과 콘텐츠 전반을 망라한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부터 피어슨과 같은 영국의 대표적 교육·출판 전문미디어 기업, 스마트 테크놀로지·프로메테안 등 전자칠판, 온라인 교육 솔루션 기업 등이 참가했다. 


  MS는 MS365에듀케이션을 새로운 교수학습 도구인 ‘러닝 액셀러레이터’를 포함해 업그레이드한 플랫폼을 선보였다. 학습활동이 이뤄지는 동안 학습자에게 실시간 코칭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읽기·수리, 디지털 검색 역량, 발표 능력 강화와 함께 학생 감정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의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면, 교사는 이를 축적한 데이터를 통해 학생이 어느 정도 우울감이 유지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학습자들이 직접 녹음한 읽기 파일을 기반으로 개인화된 읽기나 말하기 지원도 한다. 개별 학습자들의 읽기 데이터를 통해 각자 필요한 교재를 제시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단어와 발음법 데이터도 제공한다.


  아보(Arbor)는 학교 경영정보시스템(MIS) 전문기업으로, 이번 ‘Bett 2023’에서 학생들의 행동과 심리 상태까지 관리할 수 있는 기능들을 선보였다. 학생들의 출석상태, 성취도 수준뿐만 아니라 행동항목 중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사태가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인터넷 유해사이트 필터를 개발해 온 라이트스피드시스템은 위험 상태에 있는 학생들을 찾아 주변인들에게 경고를 울려주는 솔루션 ‘라이트 스피트 알러트’를 소개했다. 학생이 자살이나 폭력과 같은 단어를 검색하거나 학생이 마주하는 콘텐츠가 학생 정신 건강에 위험 수준까지 도달하게 할 만큼 문제가 될 경우 관리자나 교사, 학부모에게 곧바로 연락을 취해 대응하도록 하고, 답이 없으면 솔루션에서 자동적으로 경찰 등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에듀테크다. 


  챗GPT로 촉발된 AI의 활용도 역시 관심을 끌었다. UAE 에듀테크 기업인 알레프(Alef)는 AI를 활용해 맞춤형 교육을 지원하는 플랫폼을 시연했다.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이 질문을 하면, 아인슈타인의 사진을 프로필로 한 AI 플랫폼이 마치 학생과 아인슈타인이 대화를 하듯이 문답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새로 시작한 이벤트 중 하나인 ‘커넥트@벳’은 우리나라와 다른 에듀테크 환경을 보여줬다. Bett 주최측은 교육기관 구매 담당 책임자 수천 명과 500개 이상 에듀테크 기업이 ‘스피드 데이팅’처럼 직접 만나도록 주선했다. 주최측에서 사전등록된 구매담당자와 기업 정보를 바탕으로 서로 적합한 방문자-기업을 맞춤형 매칭을 해준다. 한 번 만남의 시간은 15분. 학교·교육기관 등 구매담당자와 기업은 최대 15회 가량 만나볼 수 있다. 자리에 앉으면 초시계가 돌아간다. “우리 학교에는 어떤 솔루션이 필요한데 그걸 구현할 수 있어요?” 또는 “우리의 기술은 이런 것인데 학교에서 한 번 써보시면 어때요?”와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초시계가 15분이 되었음을 알리면 다른 자리를 찾아 다른 모임을 갖는다. 서로 대화가 통했다면? 당연히 ‘애프터’가 아닐까. 우리나라는 대부분 학교가 아닌 교육청이 결정권을 갖고 있지만, 영국은 단위 학교의 자율성이 보장된 만큼 더 나아가면 ‘계약’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에듀테크 활발히 활용하는 영국 학교들 모든 교재·에듀테크 학교와 교사가 결정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영국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46.8억 달러(약 6조 2,000억 원)로, 2026년까지 연평균 22%로 성장할 전망이다. 유럽에서도 두드러지게 에듀테크 기업들이 성장한 곳이 영국이다. 영국 디지털경제위원회는 2020년 8월 기준 영국 에듀테크 기업이 유럽 전체의 25%인 1,200여 개라고 집계했다. 에듀테크 기업의 숫자는 영국 디지털 기업의 4% 수준으로, 이는 핀테크 기업과도 비슷한 규모다. 영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전통적인 금융 강국으로, 런던은 세계 최고의 핀테크 허브 중 하나다. 그런 핀테크의 수준까지 에듀테크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질리언 키건 영국 교육부 장관이 Bett 기조연설에서 향후 학교 인프라 개선  방안을 밝히고 있다.질리언 키건 영국 교육부 장관이 Bett 기조연설에서 향후 학교 인프라 개선 방안을 밝히고 있다.


라이트스피드시스템 직원이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해 위험 상태에 처한  학생들에게 경보를 울리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한국 기자단에 설명하고 있다. 라이트스피드시스템 직원이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해 위험 상태에 처한 학생들에게 경보를 울리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한국 기자단에 설명하고 있다.


  영국의 에듀테크 산업 성장은 영국이 학교 현장에서 에듀테크를 얼마나 많이 활용하고 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영국 정부는 교과서를 획일적으로 정해주지 않는다. 국정, 검정, 인정으로 나뉘는 것도 없이 모든 교재는 학교와 교사가 결정한다. 에듀테크 역시 학교와 교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이렇게 도입한 에듀테크는 학생 개개인 맞춤형 학습지도나 학생 정보 관리에 활용된다.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구매해 배포하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교사가 직접 선택할 뿐만 아니라 기업은 학교의 요구사항을 고려해 제품과 기술을 개발한다. 우리나라 에듀테크 기업은 “수위가 가장 무섭다”라고 할 정도로, 교문을 넘어 교사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Bett에서 만난 한 영국 기업은 “교사들이 전시회에 참석해 에듀테크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고, 기업들은 피드백을 받아 새롭게 개발하고 그다음 해에 또 같은 부스를 찾아 교사들이 업그레이드된 피드백을 주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전시회만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업과 학교의 다리 역할을 했다. 학교 교사가 수많은 에듀테크를 접하기 어려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민간 협회와 협력해 플랫폼 ‘렌드이디(LendEd)’를 만들기도 했다. 교사는 샘플을 받아 사용해보고 후기를 남길 수 있으며, 그 후기는 또 다른 교사의 구매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캐롤린 라이트 영국 교육기자재협회(BESA) 사무총장은 렌드이디 플랫폼을 만든 배경에 대해 “영국에서도 정부가 학교에 예산을 지원해도 교사는 제품을 몰라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부작용과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이고, 이제 자리가 잡혀 교사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는 설명이었다. 


  영국의 에듀테크 역사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인터넷이나 테크의 역사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시점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학교에 PC와 인터넷을 보급한 것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후 방향성에서 크게 갈렸다. 2010년 데이티브 캐머런 정부는 자율화를 핵심으로 하는 아카데미 학교 설립법을 2010년 제정하고 그해 말 교육정보화 전문국가기관(BECTA)을 폐지했다. 이 같은 자율 중심 정책은 학교 선택권을 강화했고 더불어 민간 시장도 활성화했다. 하지만 자율이 만능은 아니었다. 예산이 줄어든 만큼 학교 인프라는 노후화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여전히 학교 교육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지난해 질리언 키건 영국 교육부 장관이 2025년까지 모든 학교에 기가급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 에듀테크는 기술일 뿐, 어떤 에듀테크도 교사를 대체할 수 없다 

  정책적 문제점을 극복하고 성장궤도에 오른 영국 에듀테크 산업계가 가장 핵심에 두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다. Bett 현장에서 만난 구글·MS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까지 이구동성으로 ‘교사의 역할’을 강조했다. 에듀테크가 다른 분야의 기술과 다른 점은 ‘에듀테크’ 자체의 역할을 교사와 학생을 돕는 데 한정한다는 것이다. 에듀테크 기업들은 어떤 기술도 교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강조한다. 교사가 진정한 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학생이 학습을 보다 흥미롭게 자기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세탁기나 식기세척기와 같은 가전기기가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일은 줄여줬지만, 그 역할을 축소시킨 것은 전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Bett 2023에서 에듀테크 기업 직원들과 교사들이 자유롭게 만나  토론하는 모습 Bett 2023에서 에듀테크 기업 직원들과 교사들이 자유롭게 만나 토론하는 모습


  우리나라도 영국과 같은 자율성 기반의 학교 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자율권을 부여했을 때 영국처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할 수 있다. 교사들의 격차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우리 정부가 든 카드는 ‘연수’와 성공사례 공유다. 


  에듀테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해결할 방법을 빨리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에듀테크다. 눈높이에 맞춰 문제를 내고,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도와주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데이터로 분석해 본인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한다. 학령인구 감소, 커지는 교육격차, AI로 인한 사회 변화 등 많은 난제와 현안이 교육 앞에 놓여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교사와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소통과 협력에 기반한 ‘에듀테크’를 통해 그 가능성을 발굴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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