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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4 - 뉴노멀 시대,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본 평화교육의 역할

글 _ 윤철기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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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국제정치의 위기

  위기의 시대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위기는 아직 지구촌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개발도상국들의 시민 가운데, 상당수는 백신과 치료제를 공급받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선진국들의 ‘백신 민족주의(Vaccine Nationalism)’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선진국들에도 피해가 될 위험이 언제나 존재한다. 또한 코로나19가 중국지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지구상에 가장 먼저 국경을 폐쇄했던 북한마저 최근 감염병이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 북한 미디어들이 보도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보건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엔데믹 선언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기후와 환경의 위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해서 수많은 생명이 멸종되었으며, 살기 위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인해 인간 역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세계보건 위기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전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전쟁의 명분은 결국 힘과 이익뿐이다. 안보와 경제적 이익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국력을 비교해 보면 전쟁이 명분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핵심적 이익(Vital Interests)을 위협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즉, 이번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평화와 인권을 위협하고 있는 이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제한적이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전쟁을 중단시킬 만큼의 실효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식량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불러왔다. 특히 우크라이나로부터 밀을 수입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식량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원유와 천연가스 역시 국제시장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이는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해서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양적 완화 조치를 단행하면서 화폐공급량이 증가했고, 그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은 세계 경제의 인플레이션 상승의 도화선이 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위기의 시대, 정치의 위기는 시민들에게 더 큰 위험이 되고 있다. 정치는 사회적 무질서와 혼란에서 무능했다.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직후 세계는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거대한 블랙홀에서 빠져들고 말았다.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시민들은 세계 곳곳에서 마스크와 생필품을 사재기했다. 세계 각국은 국경을 봉쇄하고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록다운을 발표했다. ‘유럽은 하나’라고 외치던 유럽연합 국가들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자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다. 이웃 나라에 환자가 많아져 도움을 요청해도 거절했다. 개인과 국가는 모두 도덕적이고 윤리적 실천보다는 이기적인 현실주의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기적인 방안은 언제나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갈등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역시 자국의 국가이익에만 매몰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는 이 전쟁을 막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끝낼 방법도 아직 찾지 못했다. 정치는 바이러스 감염병 확산에서도 전쟁에서도 이기적 태도와 행동을 막지 못했다. 개인이나 국가의 이기적 행동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마치 부메랑처럼 더 큰 위험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국가의 ‘부활’과 문제해결의 새로운 주체

  세계보건 위기와 함께 다시 ‘국가’가 부활했다. 세계화 시대, 국가의 위상과 역할은 축소되었으며 시장의 자율성은 증대되었고 세계시장은 통합되어 갔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계기로 시민들은 국가의 보호를 기대하게 되었다. 자유무역과 사람들의 자유로운 왕래는 중단되었다. 대신 개별 국가는 자국의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적인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했으며,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 시민들에게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국가는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더 강한 존재가 되어 돌아왔다. 


  국가의 부활과 함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가 세계 곳곳에서 다시 강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인종주의 부활로 인종 간의 차별과 혐오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혐오 범죄로 인해 많은 사람이 다쳤고, 몇몇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가 부활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Brexit)를 2016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유럽연합과 결별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푸틴이 속한 통합러시아당은 민족주의적 담론을 근간으로 집권한 정당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빌미로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 전쟁을 정당화하려 한다.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자국을 중심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주변국들을 일종의 완충지대로 이해하고 있다. 


  국가는 세계보건 위기와 함께 부활했지만,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위기의 시대에 국가에 모든 것을 맡길 수만은 없다. 국가는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물론 누구도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국가에 맹목적으로 의존하게 되었을 때, 비도덕적인 국가 행위를 견제할 방법이 없어진다. 또한 개별 국가마다 권력과 능력의 차이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국가에 모든 것을 맡기면 ‘지구적 정의(Global Justice)’는 더욱 더 실현되기 어려워진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위기 가운데 감염병 위기와 기후나 환경 위기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개별 국가의 능력만으로 문제해결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국제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서 협력하기보다는 경쟁, 분열,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구적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경주하는 새로운 행위자들을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확산하던 혐오와 차별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며 연대하는 세계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이러스 공포에 대해서 마냥 두려워하지 않고 연대하고 협력함으로써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점은 지구라는 공동체에 대안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류에게 공동으로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계시민은 인류가 처한 공동의 위기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고, 평화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적이고 도덕적 실천을 넘어 국경을 넘어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연대와 실천을 위해 경주(傾注)함으로써 새로운 지구적 공동체를 이끌어갈 주체이다. 세계시민은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를 하는 어떠한 행위자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 지구적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과 함께 연대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지구의 현실에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어렵게 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 강자의 약자에 대한 공격에 저항하지 못하고 지구적 불평등과 부정의가 지금처럼 유지되는 한 평화와 인권의 실현은 오지 않는다. 역사는 국가의 힘을 기반으로 하는 ‘위로부터의 평화’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 세계시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 ‘아래로부터의 평화’를 실현함으로써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래의 위기와 평화교육의 역할

  코로나19와 전쟁 외에도 앞으로 인류에게 닥칠 수 있는 위기와 위험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인류가 공동으로 처한 위기와 위험에는 국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국제협력과 세계시민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일은 누군가의 선물이 될 수 없다. 국가나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도 가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위기와 위험에서 시민들을 지켜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와 위정자(爲政者)들은 오히려 자신의 권력과 특권을 지키기 위해 구조적이고 비가시적인 위기와 위험에 관한 논의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결국 이러한 위기 앞에서 일상의 평화와 인권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바로 시민들이다. 그런데 시민이 위기에서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세력이 되어 평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위기는 한 국가 시민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타국의 시민들과 협력하고 연대하기 위해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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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시민 사회는 국가와 같이 경찰과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물리력도,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자원 동원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세계시민은 연대와 협력을 통해 국가권력을 견제·비판할 수 있으며, 자발적인 기부의 형태로 자원을 동원하고 통제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을 통해 국제협력과 연대를 주도하고 국가 권력에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세계시민이 언제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2019년 기후위기 파업(Global Climate Strikes)과 코로나19로 인한 인종 혐오에 대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졌던 세계시민들의 저항과 연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화교육을 통해 평화와 인권이 실현될 수 있는 새로운 지구적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 나갈 세계시민을 육성해야 한다. 위기와 위험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만들어내고, 그 공포는 무질서와 혼돈, 약탈과 폭력적 갈등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위기의 시대를 극복하고 평화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혹은 윤리적 태도와 실천만으로 부족하다. 개인이 평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평화적 태도와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지구적 공동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시민과 연대하여 아래로부터의 평화를 실천하고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도덕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선택을 하려는 국가와 정치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하여 새로운 지구적 공동체를 꿈꾸고 실현하려는 시민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연대해 지구적 정의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평화교육을 통해 학습자가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민주적인 정치참여방안과 지속가능한 국제연대와 협력방안을 고민하고 숙의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일이다. 또 다른 미래는 또 다른 교육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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