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특별기획 2 - 통합학급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글 _ 신상미 성남서초등학교 교사


한 아이와 3년간 함께한 통합학급

  지난해까지 나는 자폐 스펙트럼 성향을 지닌 아이가 있는 통합학급 담임을 3년 동안 맡았었다. 일반 학급 교사가 특수교육 대상 학생 한 명을 3년 연속하여 담임을 맡는 일은 드문 일이다. 보통은 1년씩 맡는데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였고 여러 이유로 인하여 연속 담임을 하게 된 것이다. 


기사 이미지

  어떤 사람은 3년씩이나 ‘힘든 아이’를 맡다니 대단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뭔가 좋은 것이 있겠지.’ 하는 의심의 눈으로 봤다. 처음 통합학급 담임을 맡았을 때는 선뜻 맡기 힘든 학생을 누가 맡을 것인가 갈등하는 모습이 후배 교사들에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자폐 학생에 대한 경험도, 아는 것도 없는 상태에서 ‘제가 맡겠습니다.’라고 했다. 


  두 번째 해는 새 담임이 누가 될 것인지 고민하시는 학부모님 때문이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부모님은 아이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고 그것이 다른 학부모님들보다 몇 배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다시 설명하는 일이 없는 해를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에 통합학급 담임을 맡았다. 그 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3월 개학이 미뤄지고 원격으로 수업을 하던 해였다. 다행히 아이의 특성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특수교사와 협의하여 원격 등 다양한 수업을 적용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 해는 이 학생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아이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가 학교라는 사회에서 함께 지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의 특성에 맞춰 함께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자폐아의 관점에서 바라본 교실

  익숙하지 않은 일들은 불안하고 두렵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면 피하거나 비난하기 쉽다. 자폐 학생은 반복되는 말, 반향어를 많이 하고 언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학생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이들은 그 친구가 울거나 폴짝 뛰고 손뼉을 치면 이상하게 쳐다봤고 다가오면 피했다. 통합학급을 맡은 지 며칠이 지나고 그 자폐 아이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봤다. 학교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두렵게 보고 피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때부터 아이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유 없이 갑자기 울거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더위를 많이 타는 아이는 덥고 답답하면 울었다. 땀이 나는 것이 보이면 얼른 외투를 벗으라고 하고 선풍기를 틀어주었다. 교실이 매우 시끄러워도 불안한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이렇게 관찰한 것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와 의사소통 방식이 다르니 친구에 대해 함께 알아 가보자고 했다. 



자폐 친구의 변화에 아낌없이 응원해주는 아이들

   아이들은 교실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는다. 대부분 ‘정말 이상해’로 시작한다. 또래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10대 초반의 시기 발달단계에서 아이들은 타인을 ‘다르다’보다 ‘이상하다’로 받아들인다. 나와 다른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친구와 잘 다투고 나와 같은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금방 친해진다. 처음 통합학급 운영을 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선택한 것은 ‘책’이었다. 요즘 ‘온 작품 읽기’ 활동을 하는 학급이 많은데 ‘배려, 다름, 존중, 관계, 공감’ 등 통합학급 운영에 필요한 가치를 함께 생각해보기에도 좋다. 우리 반은 거의 매일 함께 꾸준히 책을 읽었다. 그림책도 보고 동화책도 읽었다. 주로 학급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한 이야기, 함께 생각해봐야 할 가치를 나눌 수 있는 책을 읽었다. 책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은 훨씬 솔직하고 깊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꺼냈다. 아이들의 반응 하나하나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을 하면서 자폐 학생이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교실에서는 소리 내고 돌아다녀서 몇 번이나 읽다가 중단했었다. 아이가 이 시간을 안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원격수업에서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소리를 내더라도 귀를 화면에 대고 자리에 앉아 열심히 들었다. 나중엔 책에서 나온 단어들을 말하기도 했다. 다시 등교 수업이 시작되고 자폐 학생이 교실에 있을 때, 함께 책을 읽었다. 자리에 앉아야 하고 조용히 해야 하는 연습도 했고 그러면서 수업 시간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 학생도 친구들과 수업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 했다. 특수교육 학생이 원반에서 무엇을 학습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배움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로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폐 학생은 늘 ‘친구랑 같이’라는 말을 반복했고, 수업 활동을 이 학생에게 맞게 조정하고 개별화했다. 삼각형의 성질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면 삼각형을 그리고 오리는 활동을 했다. 다하고 나면 완료 도장을 같이 찍고 ‘하이 파이브’를 하며 성취감을 높였다. ‘하이 파이브’ 힘은 컸다. 자신의 활동이 먼저 끝나도 다른 친구들 학습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일이 늘어났다. 


   반 아이들과 이런 서로의 변화에 대해 수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점 수업 시간에 함께 하는 자폐 친구의 변화에 아낌없는 응원을 해 주었다. 자폐 친구의 변화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성장도 찾아 자주 이야기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노력한 것이 보이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자신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응원하는 일은 함께 있는 자기 자신을 응원하는 힘이 되었다. 친구들도 열심히 하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다. 이것은 자폐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모든 성장이 우리가 교실에서 함께 배우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학교에 다니는 이유라고 말했다. 



‘전학생도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기다려주자’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며 맞이한 통합학급 3년째. 첫날 두 명의 학생이 전학을 왔다. 통합학급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었다. 그중 한 학생이 자폐 친구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보통 자폐 친구를 보면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데 이 학생은 화를 냈다. 이 화는 한 학기 내내 이어졌다. 자폐 학생은 수시로 소리를 내고 손뼉을 친다. 다른 아이들은 그러다 멈추는 것을 알기에 그냥 자기 할 일을 이어가는데 전학생은 그때마다 시끄럽다고 화를 내며 자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교사인 내겐 왜 저 아이가 소리를 내도 그냥 두느냐, 쟤도 안 하니 나도 공부 안 하겠다, 학생 하나 조용히 못 시키는 선생이라며 화를 냈다. 반 아이들이 너 때문에 수업 시간에 방해된다고 하니,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면서 분노했고 아이들과 자주 다투었다. 이 학생의 부모님은 우리 반에 있는 장애 학생 때문에 자기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저 부모는 왜 이런 학생을 학교에 보내는가, 담임이 조처하라고 민원 전화를 하셨다. 


  통합학급 2년 동안 듣지 못한 말들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또 다른 전학생은 조용한 아이였는데 글쓰기 공책에 ‘그 친구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여기 선생님과 아이들은 대단하다.’라고 썼다. 교실을 조금만 벗어나면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통합학급은 교실에 한정된 일일까. 


  교실에서 잘 성장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과 세상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며 잘 성장하는 것을 볼 때 학부모님이 공교육을 바라보는 시선도 바뀔 수 있다. 아이들은 도전하고 실패하고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아주 서서히 자라지만 분명 커나간다. 그 방향을 폭넓게 제시해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이때 나는 전학생도 통합학급 안에서 분명히 잘 성장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반 아이들에게 ‘전학을 온 친구도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기다려주자.’라고 했다. 이 학생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떤 두려움과 분노가 마음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이는 왜 욕하고 화내는 자기를 벌주지 않느냐고 했다. 원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혼내는 사람이 아니냐면서. 난 선생님은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사람이며 모르는 것이 있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언제나 말하라고 했다.



“너는 아주 멋진 반에 전학을 왔다.”

  화내고 욕하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교실을 뛰쳐나가는 전학생의 행동은 이어졌다. 담임 교사로서 힘든 시간이었다. 어느 날 수학 시간, 이 학생이 칠판 앞에 나와 수학 문제를 낑낑대며 풀고 있었다. 수업을 잘 듣지 않았으니 수월하게 풀지 못했다. 나는 남겨서라도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자리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힌트를 주기 시작했다. “약분을 먼저 해야지.”, “그리고 다시 더해 봐.” 얼마 후 전학생이 답을 풀어내자 아이들은 다 같이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나도 놀랐고 이 전학생도 놀랐다. 매일 화내던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에 당황한 듯 보였다. 아이를 다그치려던 나의 마음이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동안 통합학급을 하면서 했던 말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기다려주자, 어려울 땐 함께 돕고 응원하자’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너는 아주 멋진 반에 전학을 왔다.” 나는 전학생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날 이후였을까, 전학생은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그동안 막말을 했던 자폐 학생에게도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자폐 학생은 알아들었는지 몸을 앞뒤로 흔들며 “괜찮아, 괜찮아.”를 반복했다. 수업 시간엔 모르는 것이 있으면 모른다고 들고나왔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려워도 한번 해 보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반의 자랑거리는 ‘통합학급’

  아이들은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우리 반을 만들어갔다. 담임인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커나갔다. 학년이 끝나갈 무렵 우리 반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는데, 하나같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반’,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반’, ‘친구들을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반’이라고 썼다. 놀라운 것은 우리 반의 자랑거리를 ‘통합학급’이라고 쓴 것이다. 통합학급이 자랑인 아이들이라니,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전학생의 변화도 예상 밖이었다. 이 학생은 자신의 지난 모습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친구들과 선생님께 욕하고 화냈던 것을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자폐 친구까지 서로 돕는 우리 반, 그중에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공부든 뭐든 열심히 해 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장애, 비장애를 떠나 있는 그대로 보았다. 아직은 부족하고 미완의 존재인 서로를 믿고 기다리고 함께 공부하는 사이, 새싹처럼 쑥쑥 자랐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과 친구들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기사 이미지

  수많은 일이 있었던 통합학급 3년을 보냈다. 통합학급을 운영하는 동안 특수교사를 비롯하여 여러 선생님과 의논하고 고민하면서 협업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교육은 교실에서 담임 교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고, 생각의 틀이 많이 깨지면서 내 앞에는 몇 가지 질문들이 남았다. 아이들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학교는 어떤 장소여야 하는가,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장애, 비장애 이런 것들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다양성은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정해진 틀을 요구하는 교육을 하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라고 할 수 없다. 다양성 안에서 성장을 경험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이며 그 힘은 바로 아이들에게 있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