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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3 - 탈북학생의 힘겨운 한국 적응기

글 _ 김지수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연구위원


  탈북학생들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힘겹게 지내고 있다. 이 글은 그런 탈북학생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적응을 좀 더 잘 지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쓴 글이다. 이 글에 나오는 탈북학생 은혁이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여러 명의 탈북학생들 사례를 참고하여 기술한 가상의 인물이다. 은혁이의 사례를 통해서 탈북학생들이 한국의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탈북학생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은혁이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북한을 떠나 중국에 있는 친척 집에서 소학교 때까지 살았다. 은혁이의 어머니는 은혁이가 소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 중국을 떠나 한국으로 먼저 들어왔다. 은혁이는 5년 정도 어머니와 떨어져 중국의 친척 집에 살면서 소학교를 다니다가 어머니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와 초등학교 6학년으로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은혁이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특성화고등학교 기계과에 입학하여 2학년에 다니고 있다.



장면1  북한배경의 공개 여부

  탈북학생들이 자신을 북한출신이라고 밝히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은혁이도 중국에서 입국했다고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같은 학급의 친구들은 은혁이가 한국말과 중국말을 둘 다 구사할 줄 아는 것을 신기해하며 은혁이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싶어하기도 했다. 

은혁이는 초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친한 친구들이 생겼고, 이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배경을 이야기하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은혁이가 북한출신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면서 은혁이의 학교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은혁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를 친구들의 불편한 눈길을 견뎌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혁이는 중학교에 가면 자신이 북한출신임을 밝히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은혁이는 자신이 북한출신임을 친구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담임선생님에게는 이야기했지만,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지만 초등학교에서 같이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은혁이가 북한출신이라는 것은 곧 학교에 소문이 퍼졌고 은혁이는 별로 친구들을 사귀지 못하면서 위축된 상태로 중학교 생활을 해야 했다. 다행히 이런 은혁이의 상황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은 은혁이에게 몇몇 친구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었고, 덕분에 은혁이는 점심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생겼고, 그 친구들과 방과 후나 주말에 숙제도 함께 하고 컴퓨터게임도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좀 거리가 떨어진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한 은혁이는 자신이 북한출신임을 드러내지 않으며 생활을 했고, 초등학교나 중학교 동창들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북한출신인 것이 소문이 날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친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북한출신임을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들이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냥 이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대하는 것을 보고 은혁이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자신을 탈북학생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 생각해주는 것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좀 여유를 가지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장면2  학습한국어의 어려움과 멘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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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혁이는 어려서부터 한국말을 계속 사용했고 중국에서도 조선족 마을에서 지냈기 때문에 한국말과 중국말을 모두 구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은혁이는 한국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에도 한국말을 알아듣고 말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생활이 계속되면서 은혁이는 조금 어려운 책을 읽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겼으며, 한국어로 글을 쓸 때에도 맞춤법이나 문법에서 틀리는 경우가 있었고, 수업시간에 선

생님의 이야기 중에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 조금씩 있었다. 시험을 볼 때에도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틀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은혁이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처음에 은혁이가 한국어 구사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은혁이가 공부하는 데서 한국어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은 은혁이의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은혁이와 면담을 하고 멘토링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은혁이와 담임선생님은 어떤 식으로 멘토링을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은혁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독서 멘토링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서점에 가서 은혁이가 읽고 싶은 책들을 고르면, 선생님은 그 책들 중에서 은혁이의 수준에서 적당한 책을 골라서 읽도록 추천하였다. 먼저 고른 책들은 과학이나 역사와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방과 후에 선생님이 일하시는 중에 은혁이는 옆에서 책을 읽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있거나 잘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나오면 선생님에게 질문하고, 그 단어나 내용에 대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멘토링이 진행되었다.


  담임선생님의 독서 멘토링은 은혁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를 통해 은혁이의 한국어 이해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고, 중학교 진학 이후 수업시간에 학습내용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장면3  어머니와의 갈등과 심리상담

  은혁이는 어머니와 5년간 떨어져 살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어 무척 기뻤다. 중국의 친척 집에서 지낼 때는 눈치도 보이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한국에 들어와서 어머니와 둘이서 함께 살게 되니 편하고 좋았다. 무엇보다도 우리 집이 생겨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무척이나 기쁘고 좋았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은혁이는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어머니는 직장에 오후에 출근해서 밤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고, 은혁이는 학교에 다녀온 후에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은혁이는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 동안 컴퓨터 게임을 주로 하면서 지냈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어머니 몰래 새벽까지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서 학교에 지각을 하는 일도 잦아졌다. 어머니는 은혁이가 컴퓨터게임에 너무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은혁이를 야단치며 컴퓨터게임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지만 은혁이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자 은혁이를 윽박지르며 심하게 야단을 쳤다. 그렇지만 은혁이는 엄마는 맨날 집에 늦게 들어오면서 왜 나한테 간섭을 하냐며 어머니에게 대들었고 모자의 관계는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은혁이는 어머니와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중학교 생활도 상황이 안 좋아졌는데, 지각이 잦았고 무단으로 결석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아 성적도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은혁이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은 은혁이와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은혁이의 상황이 여느 학생들과 달리 특별한 상황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담임선생님은 은혁이가 어머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최근부터 함께 지내게 되었고, 어머니와 갈등이 심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은혁이에게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였다. 그렇지만 은혁이는 심리상담을 별로 받고 싶어하지 않았고, 은혁이 어머니 역시 심리상담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선생님은 은혁이 어머니에게 한국에서는 전문직업인들도 정기적으로 심리상담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은혁이가 심리상담을 받으면 생활 태도가 바뀔 수 있다고 설득을 하였다. 그래서 결국 담임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은혁이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하였다.


  은혁이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이 상담을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몇 번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자신에게 공감해주는 상담사 선생님이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은혁이는 중학교 1학년 2학기에 지속적으로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이 좀 편안해졌고 어머니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게임을 두고 어머니와의 의견차이는 여전히 있지만, 그전처럼 심하게 대립하지는 않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게 되었다.



장면4  중학교에서의 멘토링과 진로 결정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은혁이는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멘토링을 받지 않으며 지냈다. 중1 담임선생님은 은혁이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미술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이 은혁이와 멘토링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은혁이는 영어 공부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영어학원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집안 형편상 학원을 다니기에는 어려운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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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우연히 진로담당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은혁이는 진로선생님의 도움으로 대학생 멘토링을 소개받아 영어를 따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은혁이는 영어를 가르쳐주는 대학생 멘토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영어를 배우게 되었는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별로 재미도 없고 영어 실력도 늘지 않는 것 같아서 멘토링에 빠지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이런 은혁이의 상황을 알게 된 진로선생님은 은혁이와 다시 면담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은혁이가 영어 공부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진로선생님은 은혁이와 상담을 통해서 은혁이가 지금 배우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를 나눈 결과 은혁이는 활동적인 운동 관련 멘토링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합의에 도달했다. 그래서 은혁이는 진로선생님의 소개로 농구 멘토링을 받게 되었는데, 은혁이는 농구에 재미를 느껴서 멘토링에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다. 멘토링을 통해 농구를 곧잘 하게 된 은혁이는 학교 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지내는 시간도 늘어났고, 이것이 중학교 생활을 좀 더 재미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3이 된 은혁이는 고등학교 진학과 관련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은혁이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은혁이의 적성이나 성적 등을 고려하면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때 중1때부터 은혁이를 꾸준히 보아왔고 지속적으로 은혁이와 면담을 했던 진로선생님의 조언이 은혁이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진로선생님은 중학교에 학교설명회를 온 특성화고등학교의 진로선생님을 은혁이에게 소개해주었고, 은혁이가 그 특성화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견학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은혁이는 자기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고 어머니도 설득하여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이제 특성화고등학교 2학년이 된 은혁이는 도제반에 들어가서 2학기부터는 회사에 나가서 실습에 참여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은혁이는 자신이 한국의 학교에 적응하고 이렇게 스스로 진로를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학교 적응을 도와준 선생님과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어 멘토링을 꾸준히 진행해주었던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과 자신의 생활과 진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상담해주었던 중학교 진로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선생님들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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