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민주시민교육, 헌법의 가치를 세우다
특집 1 - 헌법 가치를 실천하는 민주시민으로의 성장 지원
특집 2 - 포용과 존중, 그리고 민주시민교육
특집 3 - 교복 입은 유권자, 세상을 읽는 눈을 뜨다
특집 4 -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원칙의 법제화 가능성과 과제 - 독일 보이텔스바흐 합의와 마그데부르크 선언을 중심으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 방안 - 지역에서 교육-연구-취업까지
기초학력, 이제 ‘국가기초학력지원포털’에서 한 번에 지원한다
강원대·파마리서치·강원도, ‘차세대 구강질환 치료 솔루션’ 상용화 도전
박세현 충남삼성고등학교 교사 - 25년째 교과서 밖 실물경제를 탐험하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낭독극
4개 캠퍼스 시대 연 국립창원대학교 - 산학일체 대학구조혁신으로 충원율·취업 다 잡았다!
수원하이텍고등학교 - ‘명품 취업’ 선도하며 직업계고 선순환 모델 제시
‘사라지는 것’에 관한 기록_ 보령 청소역
인공지능 시대, 꼭 필요한 문해력: ‘읽기’의 위기에서 비판적 해석 능력으로
친구야~ 도서관으로 책 읽으러 가자! - 도서관 현황 및 독서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조사
흔들림의 유혹, 교사가 잊지 말아야 할 원칙!
초등 고학년 이해하기 - 사춘기 변화를 마주하는 부모의 마음가짐
제45회 스승의 날 기념식 개최 - ‘선생님의 오늘이 우리 아이들의 내일을 꽃피웁니다’
친구 대신 생성형 AI와 대화하는 아이들
무능한 담임이라 불렸던 교사의 선택 - ‘기록’과 ‘과정’으로 전하는 마음!
연예인 같은 선생님을 꿈꾸던 새내기, 아빠가 되어 다시 배운 교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니? 스스로 찾아가는 나의 미래
"함께여서 가능했습니다" — 서울 동대문구 휘경공동체, 마을이 함께 키우는 보육의 실험
“삐뚤빼뚤 색칠해도 괜찮아” 살을 맞대고 마음을 나누는 청송 안덕초 ‘우리함께 일일육아(1·6)'
경기도교육청특수교육원 - 학교-가정-지역사회 연결, 경기 특수교육 생태계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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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관 광주 서석고등학교 교사
교직에 막 입문했을 때, 나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학생들과 잘 소통하고, 교실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교사. 그것이 내가 그리던 교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교단에 서보니 현실은 전혀 달랐다. 담임을 맡고 나서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터지는 크고 작은 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서 요구되는 빠른 판단과 적절한 언어. 나는 그 속에서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말’이 두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상담을 하면서 단어 하나가 학생의 마음을 깊게 찌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쉽게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아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그래서 나는 말하기보다 침묵을 선택하는 교사가 되어갔다. 그 결과는 냉정했다. “상담을 잘 안 하는 선생님.” “담임으로서 적극적이지 않은 교사.”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능한 담임’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가 보기로 했다. 말 대신 ‘기록’을 택했다. 주말마다 카페와 도서관을 오가며 교재를 연구했고, 기출문제를 단원별로 분석해 일일 과제물을 만들었다. 방과 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는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공부 과정과 생각을 공유했다. 그리고 가끔은 짧은 글로 동기부여의 메시지를 전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이 방식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변화는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과제를 해오는 학생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달라졌다. 과제를 성실하게 해오는 학생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질문을 던지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어느 날은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난 뒤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이 문제 풀다가 계
글 | 박지원 전북 구림초등학교 교사
교대 4학년, 임용을 준비하던 시절 나는 늘 이런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교실 문을 열면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와 안기는,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다음 시간이 또 기다려져요.”라고 말하는, 그런 연예인 같은 선생님.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 재미있는 수업을 만드는 일이 교사의 가장 큰 사명이라고 믿었다. 신규 발령을 받은 첫 교실에서 나는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고, 칠판 앞에서 일인극을 펼쳤다. 운동회 날에는 응원단장을 자처했고, 학예회 때는 아이들과 밤늦게까지 무대 연습을 했다.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버스 안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퀴즈쇼를 진행했다. 아이들의 박수와 웃음소리에 하루의 피로가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이 자꾸 허전해졌다. 분명히 즐거운 교실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어떤 아이는 쉬는 시간에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어떤 아이는 친구와 다툰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무대 위에서 빛날 때, 무대 아래 작은 그림자들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교사의 역할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교사는 무대에 선 사람인가,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인가.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을 채워주는 일인가, 아니면 옆에 머무르는 일인가. 그러다 내가 아빠가 되었다. 새벽에 열이 오른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 본 뒤, 출근길 학교 정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의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아이도 누군가의 밤잠을 설치게 한 귀한 자식이구나. 저 아이의 부모도 오늘 아침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고 신신당부하며 등을 떠밀었겠구나. 스물 몇 명의 아이를 책임진다는 말의 무게가, 그제야 진짜 무게로 어깨에 내려앉았다. 아빠가 되기 전에는 떠드는 아이를 보면 “왜 수업을 방해할까?” 싶었는데, 이제는 &ldq
“조금 더 기다려주고, 조금 더 함께해주었을 뿐”
글 | 강아롬 경기도가평교육지원청 장학사
생성형 AI 제작 이미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가르침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마음과 태도, 삶의 방향까지 함께 책임지는 일이다. 그래서 가르침은 언제나 전인적이고, 전방위적이다. 13년의 교직 생활 동안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은 늘 막중한 책임으로 다가왔다. 교사로 살아오며 내게는 늘 마음속에 붙들고 있던 두 개의 기준이 있었다. 하나는 어떤 교사로 서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 다른 하나는 그 태도를 삶으로 보여준 어른의 모습이었다. 내 좌우명은 “나를 따르라”다. 가장 앞에 서는 사람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교사로서 나는 완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말뿐이지 않은 사람이길 원했다. 수업은 늘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학교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먼저 맡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교사로 살아가는 내 삶의 기둥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둥 위에서 나는 수많은 아이를 만났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아이, 숫기가 없어 한마디 말도 못 하던 아이, 집안 사정으로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던 아이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겠다고 나선 적이 없다. 다만 조금 더 기다려주고, 조금 더 함께해주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자라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고, 게임 중독으로 학교생활이 어려웠던 한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시간을 내어주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기다려주었다. 어느 날 어머님에게서 “아이가 너무 달라졌다.”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