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도는 보령시 오천면에 속한 섬으로, 얼핏 장구처럼 생겼다 하여 장고도로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밀려온 파도 덕분에 멋진 해수욕장이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곳이 명장섬 해수욕장이다. 섬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이곳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1학년 동생과 아이돌을 꿈꾸는 4학년 누나 남매가 청룡초등학교 장고도 분교를 지키고 있다.
장고도 항공사진(사진제공: 보령시청)
사람들은 보령 하면 갸웃하지만, 이내 대천해수욕장이라 말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길이 3.5km, 폭 100m 정도의 이 해수욕장은 여름에만 붐비는 곳이 아니다. 먹거리·볼거리·즐길 거리는 기본이고, 놀이시설과 숙박시설마저 잘 구비되었기에 겨울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여기에 온다. 사계절 내내 다양하게 진행되는 이벤트 가운데 한여름의 머드축제는 외국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만세보령(萬世保寧)’은 영원토록 평안함이 지속되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으로, 보령의 통합브랜드 이름이다. 보령시의 관문인 대천역 역사 안쪽 중심부에는 심벌마크와 함께 대천김, 토굴젓갈, 머드 화장품 등 특산품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어서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나라 지자체 가운데 전남 신안과 경남 통영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섬을 보유한 보령에는 15개의 유인도를 포함하여 90여 개의 섬이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는데, 삽시도·장고도·고대도가 대표적이다. 이 3개의 섬은 같은 항로이기에 형제섬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고대도는 우리글을 연구하고 보급한 ‘귀츨라프 선교사’와 연관이 깊은 섬이다. 그를 기념하는 표지석과 기념비 그리고 조형물 등이 보였다. 선교기념비에는 ‘최초의 서양 감자 파종’을 포함하여 그의 7가지 업적이 적혀 있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자 ‘선바위’를 가까이 볼 수 있었는데, 고대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이 바위를 보고 만선을 소망했다고 한다.
청룡초등학교 장고분교 전경
분교에서 공부하는 두 명의 학생
고대도 바로 옆에는 장고도가 있다. 대천항을 출항한 배는 삽시도-장고도-고대도를 거쳐 대천항으로 되돌아오는데, 마지막 3항차는 고대도를 먼저 들러 역순으로 운항한다. 장고도까지 가려면 우선 삽시도를 거쳐야 하기에 항해 시간은 1시간 이상 걸린다.
선착장에서 내려 바닷가를 보면서 계속 걸으면, 물이 빠진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을 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최근에는 해삼 양식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오래된 소나무가 주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20분 정도 걸어가면 장고도 마을이 속살을 내보인다.
마을의 끝자락 지점에 학교가 있다. 입구에 자전거 보관대가 있고, 아담한 운동장과 그 옆으로 놀이터가 보인다. 교실로 들어가는 운동장 한편에는 구령대도 존재한다. 단층짜리 교사와 사택이 자리하고, 그 왼쪽으로는 2층 규모의 등바루관이라는 강당이 있는데 지금은 점심 때 식사하는 공간으로만 활용한다.
여기가 바로 두 명의 학생이 공부하는 청룡초등학교(교장 심재성) 장고도 분교이다. 육지의 본교에는 4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고, 장고도 분교에는 2명의 학생, 고대도 학습장에는 3명의 학생이 있다(분교보다 한 단계 아래인 학습장은 교실 없이 공공기관 같은 곳의 유휴 공간을 빌려서 공부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축구 선수가 꿈인 1학년 이민희 학생, 아이돌이 되겠다며 미래를 준비하는 4학년 이정인 학생은 남매로, 장고분교의 파수꾼이다.
운동회와 같은 행사가 있으면 배를 타고 본교에 가서 동참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교 자체적인 행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대도 학습장의 3명을 포함하여 5명의 학생은 부여와 대전 등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오기도 하고, 최근에는 에버랜드를 찾기도 했다. 때에 따라 본교의 학생들이 장고도에 와서 갯벌체험을 하고, 여름에는 이곳 분교에서 야영도 한다.
학교 텃밭에서 가지를 수확하는 두 학생
건물 안의 다목적실을 지나 복도에 서면 1964학년도졸업생 6명부터 현재까지 졸업한 ‘자랑스러운 졸업생’, 장고 복식 1학급과 고대 복식 2학급이 기록된 ‘분교장 연혁’, 장고도의 4대 비경과 같은 ‘우리 마을의 자랑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자료에 따르면 장고도의 특산물은 전복·해삼·맛조개·바지락이었다.
학교 뒤편의 샛길을 따라 1백여 미터를 걸어서 작은 언덕을 넘어가면 자갈밭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장고도 분교의 전용 해수욕장이란다. 그런데 여기에도 중국에서 떠밀려온 각종 쓰레기가 넘쳐났다. 페트병처럼 작은 것은 수거해서 둘러메고 갈 수 있으나, 차가 들어올 수 없기에 무거운 것들은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학생들은 지도교사와 함께 여기에 와서 플로깅 같은 행사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다.
명장섬의 노을(사진제공: 사진작가 백승휴)
명장섬과 등바루놀이
장고도는 보령시 오천면에 속한 섬으로, 얼핏 장구처럼 생겼다 하여 장고도로 표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쪽에 위치해서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밀려온 파도 덕분에 멋진 해수욕장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곳이 명장섬 해수욕장이다.
해안도로에서 방사림(防沙林) 역할을 하는 소나무들을 지나가면 오른쪽으로 광활한 바닷가가 펼쳐진다. 이 해수욕장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해면의 경사가 완만하다는 게 특징이다. 해수욕장 맞은편에 명장섬이 있고, 썰물 때에는 섬까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자갈길이 나타나 하루에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자동차가 다녀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2km 정도의 길이 이어진다. 특히 섬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은 장관이기에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바로 여기에서 2백여 년 전부터 내려오는 ‘등바루놀이’라는 전통문화를 찾을 수 있었다. 매년 4월경에 행해지는 이 행사는 이곳 규수들의 집단놀이이다. 하루 전날 바닷가에 둥그런 형태의 돌담을 쌓는데, 돌담 안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바다 쪽을 향해 넓이 1m 정도를 터놓는다. 그날이 되면 이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조개 등의 어물잡기 경합을 벌이고, 점심 무렵이 되면 돌담 안에서 한복을 입은 채 동그란 원을 만들어 앉아 식사하고 노래와 춤을 춘다. 일종의 성년식 성격의 놀이이다. 이 명장섬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벌였던 유희는 몇 년 전부터 자취를 감췄다. 젊은이들이 없어서였다.
등바루 민속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장고분교 강당 이름에 고스란히 각인돼 있다. 명장섬은 절경을 자랑하기에 독립영화의 촬영장소로도 적격이다. 최근에도 40여 명이 찾아와 마을의 민박집에 여러 날을 머물면서 장고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았다고 한다. 당연히 분교 전경과 교실도 영상 속에 포함되었다.
장고도행 여객선(가자 섬으로)
등바루관
“학교가 계속 남아 있어야 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대멀 선착장에 오후 4시 반쯤 도착해서 배를 기다렸다. 옆에 있는 주민이 물때 때문에 출항 시간이 다소 지연된다면서 이런 일은 흔하다고 했다. 대합실에 들어가서 여객선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선착장 주변에 등바루놀이 때의 돌담이 원형대로 보존돼 있어서 사진으로 담아 두었다.
5시쯤 대천항으로 가는 막배를 탔다. 드넓은 객실에서 삽시도가 고향인 할아버지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기에 배 타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육지 사람들이 황금소나무를 보러 많이 온다는 것, 섬의 인구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 삽시분교에 다니는 학생이 10명 정도라는 것 등의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삽시도는 비교적 큰 섬이기에 마을버스가 운행되고 있었으나, 장고도와 고대도는 빠른 걸음으로 두 시간 안팎이면 섬을 둘러볼 수 있다. 충청남도에서는 이 세 개의 섬을 포함해 오섬 프로젝트를 계획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물망터·면삽지로 유명한 삽시도, 귀츨라프의 흔적이 자리한 고대도, 아름다운 명장섬과 당너머 해수욕장이 있는 장고도가 뭍 사람들에게 각인될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아침에 출발하는 배를 타면 늦은 오후에 되돌아 나올 수 있어 부담스럽지 않고, 멋진 저녁노을을 감상한 뒤에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섬, 게를 잡고 조개를 캐는 체험관광과 피서까지 즐길 수 있는 섬, 쉬엄쉬엄 걷기 좋은 섬, 그리고 시그니처 명장섬이 있는 섬 장고도!
특히 장고도의 장고분교는 독서실과 컴퓨터실, 등바루관 강당과 같이 부러워할 만한 공부 환경을 갖추었다. 따라서 주민들은 더욱더 많은 젊은이가 이 섬에 정착해서 학교가 계속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교실에서 공부하고, 운동장에서 밝게 뛰놀며, 고개 너머의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꿈을 키우는 학생들의 미래가 밝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