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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편찬의 자율성과 다양성, 그리고 교사의 전문성
글_ 이인수 고등학교 교사, 교육학 박사




OECD 회원국의 절반, 자유발행제 도입
  지난 3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8개월간의 진상 조사를 마무리하고 재발 방지책과 역사교과서 발행 개선안을 정부에 권고하였다. 권고 내용으로는 “교과서 발행제도는 점차 인정제와 자유발행제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인정제는 교육감이나 출판사가 저작권을 갖고 각 시·도교육감이 심의하는 형태이고, 자유발행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맞는지, 위헌 요소가 없는지 등 최소한의 기준만 갖추면 출판사가 교과서를 낼 수 있는 형태다.  
  한편, 교육부는 조사위가 제시한 ‘역사교과서 자유발행제 확대’ 등의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번 조사위 권고안에 대한 수용 방침의 근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도입한 나라가 절반(17곳)에 달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들 국가 중에는 교과서 심의 절차를 아예 두지 않은 형태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부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역사교과서에까지 자유발행제를 적용할 경우 소모적인 갈등이 빈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유발행제를 도입하면 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왜곡돼 교육현장이 정치적 이념 논쟁의 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에서 내신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대입 관련 문제 출제나 평가 측면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그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 인정제, 자유발행제 적극 고려를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 자유발행제 도입을 두고 논의가 분분하다. 유럽에서는 교과서의 발행과 채택에서 국가기구의 간섭과 통제를 찾아보기 힘들다. 독일의 경우 예외적으로 검정 절차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기본 취지와 운영 폭으로 볼 때 영국이나 프랑스의 자유발행제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오늘날 유럽 각국의 교과서들은 국가교육과정을 준거로 삼아 저술될 뿐 민간 출판사에 의해 자율적으로 발행되고 일선 교사들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되고 있다. 
교과서 발행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교과서 편찬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해치고 교과서 선택의 폭을 좁힘으로써 학생들의 창의성 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또한 급변하는 지식과 정보의 흐름을 신속하게 학습 내용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 교과서를 하나의 교수·학습 자료가 아닌 경전처럼 취급하게 만든다는 점 등이 현행 교과서 국·검정제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교과서 국·검정제 중심의 발행은 무엇보다도 교과 전문가로서의 교사의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 인정제와 자유발행제 도입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자유발행제 도입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입장도 있음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편파적인 교사가 편향적인 내용을 가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발행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학교 수업이 제멋대로 바뀌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단위학교에서는 교과협의회,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협의 절차와 국가교육과정이라는 학교수업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국과 독일의 교과서 자유발행제
  교과서 자유발행제는 국가가 교과서의 제작이나 발행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제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개념 정의로는 자유발행제와 관련하여 정확한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유럽의 대표적인 자유발행제 실시국가인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자유발행제의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국은 어떤 교과 내용을 선정하고 가르치는 문제가 오롯이 교사에게 맡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와 교과 수업에 대한 책임을 교사가 전적으로 진다. 예컨대, 학생들의 학력이나 성장 등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면서, 심지어 해고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종합하면, 영국에서 교과서 발행은 교육에 대한 자율과 책임을 교사와 학교에 어느 수준으로 부여할 것인지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독일의 경우는 검정제에서 자유발행제로 변해가는 추세이다. 일각에서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는데, 주된 근거로는 첫째, 교과서의 질적 수준의 확보 문제와 둘째,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국가 개입의 문제로 나눠서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유발행제가 지지되고 있다. 자유발행제가 지지받는 가장 큰 이유는 독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 사회는 교과서에 대한 통제 의무가 정부에서 시민사회로, 즉 교육 당사자들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자유발행제 도입에 따른 절충형 필요
  이상에서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통해 자유발행제의 의미를 탐색해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국이나 독일처럼 전면적인 자유발행제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더라도 자유발행제 도입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충형의 미국식 제도를 차용하여 과도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민간 출판사가 자유롭게 교과서를 발행하고, 시·도교육청 내 ‘(가칭) 지역교육과정위원회’가 그 적합성 여부를 심사한 후, 인정도서 목록을 만들어 학교에 배포하는 식으로 차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교과서 자유발행제 논의가 미래지향적 교육에 대한 현장의 의견 수렴과 사회 각계각층의 토론을 통해 우리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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