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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융합시대가 요구하는 인재


글│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30여 년 전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말이 널리 쓰였다. 1960년대 이후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대만, 홍콩, 싱가포르, 한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까지는 경제 발전을 기준으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선진국,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위의 네 나라는 선진국은 아니지만 개발도상국들 중에서는 특별히 앞서 나갔기 때문에 따로 이름을 붙여주어야 했던 것이다. 아시아의 용들은 선진국들이 이룬 산업화의 성과를 부지런히 따라갔고 선진국들이 100년 이상 걸렸던 산업화를 불과 몇십년 만에 이루어냈다. 결국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란 ‘성공한 추격자’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선진국을 뒤따라가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때로는 선진국보다 한걸음 앞서 나갈 때도 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이라거나 “세계 시장 1위” 같은 표현은 부풀려진 광고 문구가 아니다. 지난 몇십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선진국을 따라간 결과 어떤 분야에서는 어느새 우리나라가 맨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가 이제 모든 분야에서 가장 빨리 따라가는 나라, ‘first follower’에서 벗어나 맨 앞에 나서는 나라, ‘first mover’가 되어야 할 때라고 한다.

 

 

왜 창의융합형 인재인가?
  쫓아가는 것과 맨 앞에 나서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등산에 비유하면 개척된 등산로를 따라가는 것과 숲을 헤쳐 처음 길을 만들면서 나가는 것의 차이다. 확인된 등산로를 따라가면 체력, 날씨 등의 다른 어려움은 여전히 남겠지만 그 길을 따라가면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아무도 올라 본 적이 없는 산을 맨 앞에서 오르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매순간 결정해야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first mover’가 되는 것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매순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창의융합형 인재가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사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미 수많은 창의융합형 인재가 있었다. ‘창의’는 무엇인가 쓸모있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모든 활동에 쓰는 말이다. 그리고 ‘융합’은 무엇인가 이미 있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합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창의융합형 인재란 서로 다른 것들을 합쳐서 새롭고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며 우리는 이미 여러 사례를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해부학과 그림, 조각을 융합하여 사실적이고도 위대한 예술작품을 남겼다. 뛰어난 수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은 신비주의의 일종인 연금술 연구에서 서로 떨어진 물체 사이에 끌어당기는 힘이란 힌트를 얻었고 이를 수학적으로 풀어내 만유인력의 법칙을 완성했다. 아주 가깝게는 스티브 잡스가 따로 발전하던 인터넷 기술과 이동통신 기술을 하나로 녹여낸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았다. 말하자면 창의융합형 인재는 역사를 통해 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 새삼스럽게 창의융합형 인재에 대해 말하는 것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선진국을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나란히 또는 앞서 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물건을 생각해내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하는 단계다. 그래서 그 일을 해 낼 창의융합형 인재가 많이 필요해진 것이다. 둘째,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적절한 사회문화와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하는 방식, 공부하는 방식, 문제 해결 방식은 대부분 선진국 따라잡기에 잘 맞도록 만들어졌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 방식들이 선진국을 넘어서야 하는 숙제를 해결하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이다. 그래서 창의융합형 인재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하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사회문화와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창의융합형 인재상 ‘개인’과 ‘인재집단’
  21세기에 맞는 창의융합형 인재상은 개인과 네트워크 또는 조직의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개인으로서 창의융합형 인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한 명이 여러 분야를 학습한 뒤 각각을 잘 융합하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은 다른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낯선 것에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창의융합형 인재를 위해 다양한 경험이 강조된다. 또한 사회는 같은 것과 다른 것을 구분짓는 기존의 경계를 잘 넘나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다른 영역에서 온 사람을 대놓고, 또는 은근히 차별하거나 이른바 ‘끼리 문화’를 통해 외톨이로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별 분야 전문성을 가진 개인들의 집합에 의해 창의융합 활동이 일어나는 이른바 창의융합형 인재집단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지만 역설적으로 개별 분야의 전문성이 중요하므로 개인이 여러 전문성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별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진 개인들이 모여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 결과 전문성에 기반하면서도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시도가 실질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개별 전문가들이 융합적인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엮어주는’ 역할이다. 과거에 우리가 융합을 표방하면서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에도 실질적인 융합 효과를 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러한 ‘엮어주는’ 역할을 할 주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의융합 활동 조직하고 이끌 ‘코디네이터형 인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결과를 만들도록 다양한 전문가들을 엮어낼 수 있을 것인가?
첫째,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기획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잡기 시대에는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하면 되었다. 그러나 선진국 따라잡기를 넘어서려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주어진 문제가 더 이상 없다. 그러므로 무엇을 할 것인지, 우리가 시도해 보아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찾아야 하고, 그 문제를 풀어내려면 어떤 전문성이 필요한지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팀을 짠 후에는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서로 대화하고 문제를 공유할 수 있도록 조정하고 그 결과 나타난 아이디어를 결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융합의 아이콘이 된 스티브 잡스를 생각해 보자. 아이폰의 등장에서 잡스의 역할은 ‘정보와 통신을 결합한 손 안의 기기’라는 아이디어를 내고 애플의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도록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잡스 혼자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소프트웨어를 짜고 터치스크린을 개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창의융합형 인재는 열린 태도를 가진 전문가들과 이들을 창의융합적으로 엮어내는 코디네이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 한 분야에 빠져드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고, 다양하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가지고 적극 시도하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창의융합형 인재가 중요하다는 말을,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전문가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잘못 이해하면 큰 실수다. 창의융합형 성과를 위해서는 두 종류의 인재가 모두 필요하다. 다만 지금까지는 분야별 전문가만 강조되었기 때문에 이들을 엮어서 창의융합 활동을 조직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코디네이터형 인재가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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