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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청소년문화의집 봉사동아리 ‘은가비’ - “모든 인생은 역사가 된다”

글·편집실 / 사진 제공·괴산군 청소년문화의집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우리도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라는 것을 일깨워 준 책을 만들어 감동을 전한 괴산군 청소년문화의집 봉사동아리 ‘은가비’. 

  지난해 말 은가비는 옆집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자서전으로 만든 <길 위에 삶을 풀어놓다>를 발간했다. 



이웃 어르신 자서전 제작해 관심 집중

  “인터뷰하려고 어르신을 찾아뵈었는데 잘한 것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자서전을 써준다고 하니 고맙다고 좋아해 주셔서 그때 정말 뿌듯했어요.” 

  괴산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서재범 학생은 연구희 어르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났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서전에 수록된 연구희, 윤명순, 신국호 어르신은 누군가의 가족으로 살아온 평범한 어르신이다. 모두 지역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거나 공공 근로를 하거나 외부 환경정화 등을 도와주는 분으로 선정했다. 


괴산고등학교 3학년 박세정 학생이 그린  어르신들 캐리커처괴산고등학교 3학년 박세정 학생이 그린 어르신들 캐리커처


  올해 졸업한 학생들을 포함한 12명의 괴산고등학교 학생들은 지난해 봄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해 겨울이 되어서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어르신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부원들은 총 3개 조로 나뉘어 진행했다. 편집자를 맡았던 괴산고등학교 

2학년 강지원 학생은 “당시 3학년 선배님들이 많았는데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인터뷰 약속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라고 떠올렸다. 


  동아리를 담당하는 이상훈 지도사는 “자서전 기획부터 인터뷰, 원고 작성, 편집까지 모두 학생들이 자기 주도 프로젝트로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사전 질문지를 만들어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질문하는 부원들도, 대답하는 어르신들도 모두 처음인 상황에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어르신들의 단편적인 답변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숲속의 책방 백창화 동화 작가의 도움이 컸다고 밝혔다. 부원들은 조별로 인터뷰할 때마다 녹음과 동영상 촬영을 함께 진행하고 그 후에 회차별로 기록, 초안을 작성한 뒤 백 작가의 첨삭 지도를 받으며 원고를 작성해 나갔다. 어르신들의 사진 대신 캐리커처를 넣으면 좋겠다는 부원들의 아이디어는 자서전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 포인트가 되었다. 캐리커처는 괴산군 청소년문화의집에서 함께 활동 중인 괴산고등학교 3학년 박세정 학생이 맡았다. 


  서재범 학생을 은가비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한 괴산고 졸업생 김유미 학생은 신국호 어르신 취재 후기를 통해 ‘어르신이 열심히 살아왔던 인생은 도덕 교과서나 지식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가족을 더 생각하며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오시면서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 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괴산고 학생들이 옆집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괴산고 학생들이 옆집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이 지도사는 “학생들이 처음 기획했을 때 코로나19로 대면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고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의도였다.”라고 설명했다. 강지원 학생은 “어르신들과 만나 대화하면서 우리 세대와 다르지만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라고 전했다.



매년 새로운 프로젝트 구상해

  괴산군 청소년문화의집 봉사동아리 ‘은가비’는 지난 2014년에 이름을 가지게 되었지만, 실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2년부터이다. 소외 대상 주택 환경개선 활동과 환경정화 활동을 꾸준히 해오다가 동아리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렴해 은가비로 재탄생했다. 은은한 가운데 빛을 발하라는 동아리 이름처럼 은가비는 매년 다른 프로젝트를 선정해 지역에 봉사해 왔다. 


  지난 2020년에는 재활용 키트를 만들고 설명서를 영상으로 제작해 지역아동센터에 나눠준 녹색세상 프로젝트와 건잠머리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건잠머리 프로젝트는 지역주민들의 기부를 받아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위생용품 키트를 전달하고 사용설명서를 제작해 지원한 프로젝트다. 기부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직접 만든 컵, 에코백, 엽서 등 기념품을 전달했다.

  2021년에는 블로그마켓을 운영해 보육원, 미혼모 가정 등 소외된 영유아들에게 필요한 물품과 새 옷을 선물하는 ‘새옷활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지역에 평범한 어르신들을 위한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텔레비전 뉴스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 지도사는 “3월에 동아리 부원 구성이 확정되면 다시 회의를 통해 프로젝트를 정하게 된다.”라며 “올해도 노령인구가 많고 인구감소 지역인 괴산군의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해 청소년과 어르신들이 함께 하는 세대 공감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라고 밝혔다. 


신국호 어르신 인터뷰신국호 어르신 인터뷰


백창화 작가님과 퇴고 중백창화 작가님과 퇴고 중


윤명순 어르신 자서전 전달윤명순 어르신 자서전 전달


자서전 출간자서전 출간


  괴산군 청소년문화의집에는 봉사동아리 은가비 외에도 2006년부터 운영되어 온 청소년운영위원회 ‘아띠’, 토요일마다 플로깅(산책이나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는 환경정화동아리 ‘리틀 포레스트’, 매주 수요일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해 수학을 지도하는 교육봉사동아리 ‘수달’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밴드, 댄스 동아리 등이 있다. 이 지도사는 “아이들이 생기로 가득 찬 청소년들의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동반자로서 늘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점에서 함께 하고 싶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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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Talk

강지원(2학년) 학생

  동아리 부원들이 모두 오랫동안 애써왔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책을 받았을 때 정말 좋았다. 편집자를 맡아서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를 한 번 더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더 좋았다. 어르신들과 서너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터뷰할 때마다 손주 같다며 예뻐해 주셔서 그 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원래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은가비에서 활동하면서 진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아이들,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사회복지사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많은 학생이 봉사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생각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할 수 있으니까 함께 했으면 좋겠다.        


서재범(3학년) 학생

  자서전 쓰기를 위해 어르신 댁으로 찾아뵈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모르는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어서 긴장했을 우리를 손주 대하듯 다정하게 대해 주셨다. 또 어르신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뭉클했었다.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우리 세대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우리의 풍족한 삶에 기여한 어르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자서전을 읽는 사람들이 우리가 인터뷰에서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학업과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고 싶다. 어르신 두레학교와 연계해서 앞으로도 세대격차 해소를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진행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박세정(3학년) 학생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모토로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 중이다. 청소년문화의집에서 국제 청소년 포상제 과정을 진행하던 중 이상훈 선생님의 권유로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직접 그려드린 어르신들의 캐리커처가 수록된 책을 보았을 때 정말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프로젝트 전반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도 해보고 그림을 그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세대 간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렇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봉사활동이 힘들겠지만, 우리가 느꼈던 뿌듯함과 기쁨을 느끼는 학생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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