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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지상에 세운 달나라 궁전 - 광한루원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옛날 사람들은 꽤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은하수 너머 달나라 궁전에 옥황상제와 선녀가 살고, 견우가 직녀가 은하수에 놓인 오작교에서 만난다고 상상했으니 말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의 이런 상상을 현실 세상에 구현한 것이 광한루원이다. 광한루원은 그들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반영된 건축물이자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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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를 처음 세운 황희 정승

  흔히 광한루와 광한루원을 혼용한다. 광한루(보물)는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로서 누각 한 채를 일컫는다. 광한루원(명승)은 광한루를 비롯해 연못, 오작교, 완월정,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등을 포함한 누원 전체를 말한다. 


  광한루를 처음 세운 이는 조선 시대 청백리로 이름난 황희(1363〜1452) 정승이다. 황희는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 폐위와 충녕대군 왕세자 책봉을 반대하다 태종의 눈 밖에 나, 남원에 유배됐다. 유배된 이듬해인 1414년(태종 14년), 남원 요천 강변 부친의 서재 터에 ‘광통루’라는 작은 누각을 세웠는데, 이것이 광한루의 전신이 되었다. 


  황희가 세종의 부름을 받아 관직에 복귀한 뒤, 남원 부사 민여공이 광통루를 큰 누각으로 고쳐 지었다. 하동부원군 정인지는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다. 남원 부사 장의국은 요천 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고, 오작교를 세웠다. 선조 때 전라도 관찰사 정철은 연못에 섬 세 개를 만들어 상상 속 달나라 궁전을 완성했다.  세 섬은 각각 한라산, 금강산, 지리산을 의미하며 지상낙원을 표현한 것. 섬 사이에는 나무다리를 놓았다. 만약 옛날에 나무다리가 없었다면, 은하수를 건너는 하얀 조각배 같은 나룻배를 띄워 연못을 건너지 않았을까. 


  광한루원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되기도 하고, 1960년대까지 재건과 보수를 거듭했다.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임을 알고 나면 돌덩이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전북 남원 광한루원 완월정 야경전북 남원 광한루원 완월정 야경


사랑이 싹트는 공간

  광한루는 달나라 궁전 건물을, 광한루 앞 연못은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 위에 놓인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건널 때 이용했던 전설 속 오작교를 본떠 만든 돌다리다. 국내에서 가장 긴 연못 다리로서 길이가 약 57m에 달한다. 네 개의 무지개 모양 홍예가 연못에 비친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오작교는 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곳으로도 등장한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며 신분 차를 뛰어넘는 사랑을 한 것처럼, 춘향과 몽룡도 그렇게 사랑을 이뤘다. 


  오작교를 건너며 연못을 굽어보니 빛깔 고운 비단잉어들이 떼 지어 헤엄친다. 이 연못에 비단잉어 3천여 마리가 산다고 한다. 흔치 않은 은색 잉어, 사람 얼굴을 닮은 인면 잉어도 보인다. 잉어들이 사람의 말소리나 움직임을 알아채는 듯 졸졸 따라다닌다. 비단잉어 떼 속에서 원앙(천연기념물)이 짝지어 노닌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잉어와 원앙이 노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힐링 된다. 견우와 직녀, 춘향과 몽룡, 원앙까지, 광한루원은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올해부터 매주 주말에 ‘커플스데이’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하니, 광한루원이 연인들의 성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월매집 앞 은행나무가 물든 풍경월매집 앞 은행나무가 물든 풍경

보물로 지정된 광한루과 연못을 가로지르는 오작교보물로 지정된 광한루과 연못을 가로지르는 오작교


광한루원의 빛나는 조연들

  광한루원에서 광한루에 버금가는 누각이 완월정이다. 1969년 광한루원 확장 공사 때 지은 누각이어도 옛 멋이 흐른다. 연못에 가늘고 긴 다리를 세우고, 버선코처럼 날렵한 처마에 화려한 단청을 했다. 연못가 버드나무와 어우러져 전통미를 한껏 뽐낸다. 마치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을 누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매년 5월 열리는 춘향제의 주 무대이자 판소리 상설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광한루원에 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완월정에서 달랜다. 


  완월정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월매집으로 가는 길에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광한루원 북문 쪽에는 춘향사당이 있는데, 올해 처음 선보이는 새 춘향 영정이 걸려 있다. 춘향관에 1대, 2대 춘향 영정이 전시돼 있으니, 비교해봐도 좋겠다. 


  광한루를 한갓지게 산책하고 싶다면, 오후에 입장해 야간관람까지 하는 걸 추천한다. 누각과 연못 주변에 오색 조명이 켜져 낮과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완월정 앞 달빛정원의 커다란 보름달 조명등 앞에 서면 옛사람들이 상상했던 달나라가 한층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광한루원 정보

주소          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

관람시간    08:00〜20:00

입장료       어른 5,000원(남원사랑 2,000원 상품권으로 환급),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 18:00시 이후 무료

문의          0507-13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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