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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강진 백운동 원림이 차茶로 맺은 인연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이 어느 날 제자들과 월출산에 올랐다. 

하산길에 백운동 원림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 

이곳에 반한 다산은 다산초당에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백운동 원림을 시와 그림으로 기록한 ‘백운첩’을 지었다. 

다산의 마음을 사로잡은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계곡과 마당을 잇는 유상곡수가 마당을 가로질러 조성되었다.계곡과 마당을 잇는 유상곡수가 마당을 가로질러 조성되었다.

월출산 백운계곡에서 조선 시대 ‘비밀의 정원’과 만나다

  백운동 원림(국가 명승)은 월출산 남쪽 백운계곡 산자락에 자리 잡았다. 조선 중기 선비 이담로(1627~1701)가 은둔하려고 지은 별장답게 동백나무, 비자나무, 대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우거진 계곡 숲길을 통과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숲은 깊고 고요하며, 3월에도 짙푸르다. 어둑한 동백나무 터널을 지날 때는 비밀의 문을 통과하는 것 같다.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자 ‘白雲洞(백운동)’이 새겨진 바위가 길목을 지키고 섰다. 바위 뒤로 백운동 원림의 돌담과 솟을대문이 보인다.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안뜰에 봄볕이 가득하다. 화단의 늙은 매실나무, 배롱나무, 감나무가 졸음에 겨운 듯하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경사면에 소박하게 지은 초가 사랑채와 본채가 자리했다. 


  안뜰을 가로지르는 유상곡수(流觴曲水)에서 집주인의 감성과 취향이 엿보인다. 계곡물을 마당으로 끌어오기 위해 아홉 굽이 물길과 작은 연못을 만들고, 물 위에 술잔을 띄우며 풍류를 즐겼을 것 같다. 


  유상곡수의 정자에 앉아 볕을 쬐고, 담장 쪽문을 통해 정선대가 있는 언덕에 오른다. 정선대 앞에 서니 정면에 백운동 원림 전경이 펼쳐진다. 불꽃같이 뾰족뾰족한 월출산 옥판봉을 병풍 삼고, 울창한 계곡 숲을 정원처럼 거느린 명당이다. 이담로가 이 터를 낙점한 이유를 알겠다. 백운동 원림의 소문을 듣고 조선 중·후기 문인들이 찾아왔는데, 다산 정약용(1762~1836)도 그중 한 명이다. 

무위사 삼층석탑과 국보로 지정된 극락보전무위사 삼층석탑과 국보로 지정된 극락보전

강진 차 문화의 산실, 차 애호가 다산의 제다법 전수

  1812년 가을, 다산은 이담로의 5대손이자 백운동 원림의 4대 주인인 이덕휘(1759~1828)의 초대를 받아 백운동 원림에서 하룻밤 묵고 돌아왔다. 미련이 남은 다산은 백운동 원림 12경을 시로 읊고, 초의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여 ‘백운첩’을 완성했다. 다산이 이덕휘에게 선물한 백운첩이 대대로 전해졌다. 만약 2001년에 ‘백운첩’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백운동 원림은 지금까지도 ‘비밀의 정원’으로 남지 않았을까.


  백운첩의 백운동도와 백운동 원림의 현재 모습을 비교해 본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기세등등한 옥판봉, 빽빽한 동백숲, 담장 밖 대숲과 야생차밭, 유상곡수의 물길이 여전하다. 다산 일행이 이곳에 처음 방문했던 날을 상상해본다. 다산은 제자들과 백운동 원림 대밭에서 생산한 죽로차를 마시고, 유상곡수에 술잔을 띄우고, 정선대에 올라 월출산 위로 뜬 달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얀 구름 되어 올라간다’는 백운계곡에서의 하룻밤이 꿈결 같았으리라. 


  차 애호가인 다산은 이날의 인연으로 백운동 원림에 틈틈이 방문해 이덕휘와 차담을 나누고, 아버지 옆에서 수발들던 9살 이시헌(1803~1860)을 막내 제자로 받아들였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는 백운동 원림 5대 주인이 된 이시헌에게 서신을 통해 차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시헌은 매해 봄에 차를 만들어 스승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보냈다. 이시헌이 후손들에게 전수한 다산의 제다법은 일제강점기 이한영에게 이어져 국내 최초의 차 상품인 백운옥판차가 탄생했다. 지금은 이한영의 고손녀가 운영하는 월남사지 근처 백운차실에서 백운옥판차를 맛볼 수 있다.

국보로 지정된 무위사 극락보전의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로 지정된 무위사 극락보전의 아미타여래삼존벽화


월출산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차밭을 따라 걷는다

  백운동원림 대숲 길을 따라 200m쯤 걸어 올라가면, 월출산 자락에 아모레퍼시픽 소유의 광활한 차밭(설록다원)이 기다린다. 옛날부터 월출산 주변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숲에 숨은 백운동 원림을 본 뒤라 탁 트인 풍경이 더욱 싱그럽게 느껴진다. 차밭에 참새 혓바닥 같은 새순이 돋으려면 한 달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마음이 벌써 동동 달뜬다. 


  차밭 아래 월남마을에는 고려 진각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오는 월남사의 터가 있다. 휑한 폐사지에 보물로 지정된 백제 양식의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만 남아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월남사지에서 3km 떨어진 무위사는 신라 원효가 창건했다는 사찰로서 국보 2점과 보물 4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보인 극락보전과 아미타여래삼존벽화, 보물 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선각대사탑비 등은 불교 미술의 백미를 보여 준다. 무위사에서 백운동 원림, 설록다원, 백운차실을 거쳐 월남사지까지 이어 걷는 도보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좋겠다. 약 3km 코스다. 

백운동 원림 위쪽에 자리한 설록다원. 월출산 봉우리가  또렷하게 보인다.백운동 원림 위쪽에 자리한 설록다원. 월출산 봉우리가 또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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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원림

주소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안운길 (100-63)

문의   061-430-3114

관람 시간 연중무휴

관람료    없음

찾아가는 길   

월출산다원주차장 또는 안운마을의 안운주차장에서 걸어서 들어가면 되는데, 안운마을 쪽 진입로가 더 운치 있다. 백운동 원림을 내비게이션에 검색하면 월출산다원주차장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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