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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에서 오랜 사연을 듣다 - 경기도 화성 융릉과 건릉

글 · 사진 _ 김혜영 여행작가

  융릉과 건릉에 방문한 날, 겨울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을씨년스러울 것이라 예상했던 산책로에 운치가 가득했다.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왕릉은 신성한 공간이었기에 왕릉 주위에 울창한 숲을 둘러 보호했다. 조선 건국 이래 수많은 국난을 겪었는데도 모든 조선 왕릉과 숲이 온전할 수 있었던 건 명당이어서일까, 왕릉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 덕분일까. 

소나무가 우거진 화산 서쪽 언덕에 정조의 능인 건릉이 조성돼 있다.소나무가 우거진 화산 서쪽 언덕에 정조의 능인 건릉이 조성돼 있다.


화산에 나란히 묻힌 사도세자와 정조

  519년을 이어온 조선과 대한제국에는 27명의 왕과 황제가 있었고, 왕릉 42기가 전해온다. 조선왕조의 역사가 깊은 만큼 왕릉에 얽힌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이중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1735~1762)와 ‘개혁군주’ 정조(1752~1800)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융릉과 건릉’을 찾아갔다. 융릉은 장조(사도세자)와 헌경왕후 홍씨(혜경궁)의 능이고,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능이다. 두 능이 화산 중턱의 동쪽과 서쪽 언덕에 마주 보듯 조성돼 있다. 사도세자의 무덤은 원래 서울 동대문에 있었는데, 효심 깊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지금 자리로 옮기고 무덤의 격을 올렸다.

창건 초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용주사 대웅보전창건 초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용주사 대웅보전

융건릉역사문화관의 실내 전시물융건릉역사문화관의 실내 전시물


  정조는 융릉을 조성할 때 많은 공을 들였다. 지관들에게 천하 명당을 찾게 하고, 당대 최고 조각가에게 석물 조각을 맡겼다. 융릉의 병풍석에 새겨진 모란과 연꽃 문양이 화려한 이유이다. 이것으로 모자라 정조는 자신이 죽으면 아버지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죽어서라도 부자간의 정을 나누고 싶었으리라.


  건릉은 정조가 세상을 떠난 뒤 융릉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다. 1821년(순조 21) 효의왕후를 합장하려 할 때 건릉 자리가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지금의 서쪽 언덕으로 옮겨졌다. 




융릉(사도세자의 능)으로 이어지는 솔숲길

솔숲 지나 사도세자를 만나러 가는 길

  융릉과 건릉 매표소를 통과해 융건릉역사문화관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융릉은 오른쪽에, 건릉은 왼쪽에 자리했다. 융릉부터 들른다. 융릉으로 이어지는 솔숲길이 S자로 휘어진다.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며 걷는다.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상쾌한 향기와 봄을 재촉하는 빗소리에 머리가 맑아진다. 상수리나무숲도 지나고, 언덕길, 오솔길을 음미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융릉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융릉은 여느 조선 왕릉과 달리 홍살문, 정자각, 능침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지 않았다. 능침이 정자각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다. 정자각에서 융릉을 올려다보며, 사도세자의 기구한 삶을 떠올린다.


  사도세자는 2세에 왕세자가 되고, 아버지 영조를 대신해 정사를 돌보기도 했으나, 영조와의 갈등 때문에 정신병이 깊어진다. 결국 영조의 명에 따라 뒤주에 갇힌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훗날 자신의 가혹했던 처사를 후회하고, 애도하며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루지 못한 개혁군주의 꿈 

  건릉은 융릉 서쪽의 야트막한 능선 너머에 있다. 융릉보다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융릉과 반대로 능침에 설치하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있다. 볕이 잘 드는 언덕에 평온하게 잠들었을 정조를 상상해본다. 정조의 삶은 어땠을까. 11살 때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하고, 25세에 왕위에 오르기까지 생명을 위협받는 역경을 겪었다. 


  즉위 후에는 규장각 설치, 탕평책 추진, 화성 건설 등의 개혁 정책을 추진했으나 별안간 세상을 떠나면서 꿈이 좌절됐다. 정조의 사망에 논란이 있는데, 당시 치명적인 고질병이었던 종기를 심하게 앓았고, 대업을 이룬 만큼 과도한 스트레스도 원인이었을 것이다. 업적에 가려진 정조의 삶 또한 애잔하다. 


  융릉과 건릉을 관람하기 전에 융건릉역사문화관을 먼저 둘러보자. 규모가 작지만, 조선 왕릉과 융릉과 건릉, 사도세자와 정조에 관한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정조의 효심으로 세운 용주사 

  융건릉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용주사도 필수 코스. 용주사는 정조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고, 융릉을 수호하기 위해 세운 절이다. 용주사 낙성식 날 밤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용주사라 이름 지었다. 


  용주사가 소장한 국보 ‘용주사 동종’과 보물 ‘용주사 대웅보전’ 등 총 16점의 문화재도 눈여겨볼 것. 용머리 장식이 돋보이는 대웅보전은 초창기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18세기 불교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대웅보전 안의 ‘목조삼세불좌상’과 ‘후불탱화’, ‘삼장보살도’도 보물로 지정돼 있다.


  용주사 동종은 신라 종 양식을 갖춘 고려 초기 대형 범종이다. 국보로 지정된 동종은 평창 상원사 동종, 경주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천안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더불어 네 개뿐이어서 가치가 높다. 동종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과 삼존상의 하늘하늘한 날개옷이 손에 잡힐 듯 섬세하다.  


화성 융릉과 건릉

주소: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1

문의: 031-222-0142

입장 시간: 09:00~18:00(2~5월, 9~10월), 09:00~18:30(6~8월), 09:00~17:30(11~1월).  (관람 종료 1시간 전 입장 마감), 월요일 휴관

관람료: 1,000원(만 25세 이상~만 65세 이하)

정기 해설: 10: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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