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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발자국 화석이 알려주는 비밀 - 경남 고성 상족암군립공원

글 · 사진 _ 김혜영 여행작가

  경남 고성 하이면 덕명리 바닷가에서 수많은 공룡 발자국을 만났다. 약 1억 5천만 년 전, 그러니까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전인 중생대 백악기 때 찍힌 발자국이다. 공룡들이 호숫가를 거닐며 발자국을 남겼고, 그 발자국이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드러난 것. 발가락이 또렷하게 찍혔을 정도로 자국이 생생했다. 발자국 크기, 깊이, 간격 등을 요리조리 살피며, 발자국 주인을 상상해봤다. 

제전마을 상족암오토캠핑장 앞에서 상족암까지 이어지는 해안 데크 산책로. 산책로 밑에  공룡발자국이 찍힌 암반이 펼쳐져 있다.제전마을 상족암오토캠핑장 앞에서 상족암까지 이어지는 해안 데크 산책로. 산책로 밑에 공룡발자국이 찍힌 암반이 펼쳐져 있다.

한때는 공룡의 낙원이었던 고성군

  만약 지구에 공룡 화석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우리가 공룡에 관해 잘 알 수 있었을까. 공룡 뼈 화석은 공룡이 죽은 이유를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고, 공룡 발자국 화석은 공룡의 행동을 밝히는 데 도움 된다고 한다. 공룡 발자국을 분석해 육식공룡인지 초식공룡인지, 얼마나 빨리 달리고 걸었는지, 싸울 때 발가락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알아낸다. 


  우리나라에도 공룡 발자국이 매우 많다. 놀랍게도 세계 최대 규모의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라고 한다. 중생대 백악기 때 한반도가 강과 호수가 발달한 지형이어서 공룡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라고. 특히 전남 여수·해남·화순·보성, 경남 고성 등의 남해안 일대에 공룡 발자국 화석이 집중돼 있다. 이런 이유로 ‘KCDC(한국의 백악기 공룡 해안)’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잠정 등록됐다. 


  공룡 발자국이 국내 최초로 발견된 경남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에는 약 6km의 해안선에 육식·초식공룡 발자국 약 3,800개가 찍혀 있다. 두 종류의 새발자국 화석도 보인다. 화석 양과 다양성 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상족암 해식동굴은 인생사진 포토존으로 소문났다.상족암 해식동굴은 인생사진 포토존으로 소문났다.

땅속 공룡 발자국이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로 가려면 제전마을 상족암오토캠핑장 안내소 앞에서 출발하는 게 편하다. 5분 정도 걸으니, 시루떡을 쌓아 놓은 듯한 퇴적암 해식 절벽 아래 해안 데크 산책로가 나온다. 탐방로 밑으로 넓적한 퇴적암 암반이 펼쳐진다. 이 암반 위에 움푹움푹 패인 크고 작은 공룡 발자국이 수없이 찍혀 있다. 마침 썰물 때라 바다에 잠겼던 암반이 훤히 드러났다. 


  발자국을 자세히 보고 싶어 바닷가로 내려갔다. 공룡이 며칠 전 지나간 것처럼 자국이 선명하다. 공룡 발자국에 발을 얹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공룡 발자국이 작다. 덩치가 작은 공룡이 살았던 모양이다. 


  공룡이 살았던 백악기 때의 덕명리를 상상해 봤다. 당시 이곳은 호숫가였을 것이다. 네 발로 걷는 목 긴 소형 초식공룡, 두 발로 걷는 초식공룡, 육식공룡들이 무리 지어 다닌다. 영화 ‘쥬라기공원’에도 등장하는 티라노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알로사우루스 등이 호수에서 물을 마시고, 호숫가를 거닐며 부드러운 흙에 발자국을 남긴다. 발자국이 찍힌 땅 위에 퇴적물이 계속 쌓여 단단한 바위가 된다. 화산이 폭발해 지층이 솟아오르고, 지층이 오랜 시간 파도와 바람에 깎여 땅속 공룡 발자국이 드러난다. 


  데크 산책로를 걸으며 공룡 발자국뿐만 아니라 공란, 연흔, 해식애 등의 다양한 퇴적암 구조도 관찰한다. ‘공란’은 무질서하게 찍힌 공룡 발자국이다. 퇴적암이 쌓인 후 암석으로 굳어지기 전에 공룡이 계속해서 밟아서 퇴적층이 울퉁불퉁해진 것이다. ‘연흔’은 흐르는 물이나 파도에 의해 퇴적물이 쌓이면서 지층 표면에 만들어지는 물결 모양 구조이다. 당시 물이 흘렀던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퇴적 구조가 공룡의 생활 모습과 환경, 진화 과정을 알려준다.

세계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인 고성의 자연사를 전시해 놓았다.세계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인 고성의 자연사를 전시해 놓았다.

제전마을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공룡발자국 보행렬제전마을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공룡발자국 보행렬

파도가 만든 걸작 상족암

  덕명리 퇴적암 지형 중 독보적인 존재가 ‘상족암’이다. 바닷가에 병풍처럼 발달한 바위가 파도에 무수히 깎여 해식동굴이 만들어지고, 남은 부분이 돌기둥 형태로 남게 됐다. 이 모습이 밥상 다리를 닮아 ‘상족(床足)암’이라 불린다. 돌기둥이 매우 크고 굵어서 밥상 다리보다는 코끼리 다리처럼 보인다. 주변 암반에 공룡 발자국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너무 흔해 진짜 공룡 발자국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밥상 다리를 통과해 해식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바닥은 넓고 천장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라 제법 아늑하다. 동굴이 깊지 않고, 입구가 커 빛이 잘 들어온다. 바닥에 찍힌 연흔과 공룡 발자국이 잘 보인다. 파도가 깎아 놓은 웅덩이 모양의 돌개구멍도 여러 개 있다. 해식동굴이 공룡에게 피신처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상족암 관람 전에 근처 고성공룡박물관에 들르면 좋다. 5개 전시관에 고성군 전역에 산재한 공룡 발자국 분포도와 발자국의 생성 과정, 실물 크기의 공룡 골격 화석과 진품 화석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공룡 테마 체험프로그램도 인기다. 티라노 체험장에서 공룡 비누, 공룡 열쇠고리 크로스백, 텀블러 등을 만들어 볼 수 있다.  


고성 상족암군립공원

주소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5길 42-23

문의 055-670-4461

입장 시간 연중무휴

Tip 상족암 해식동굴은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낙석 위험 때문에 출입 통제될 때도 있다.

물때 확인 바다타임 www.badati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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