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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따라 물길 따라 마을 산책 - 아산 외암민속마을

글 · 사진 _ 김혜영 여행작가

  송악면 설화산 자락 외암민속마을에 들어서자 짚 태우는 냄새가 난다. 늦가을 시골 마을에서 맡을 수 있는 정겨운 향이다. 추수가 끝난 마을 앞 다랑논에선 허수아비들이 두 팔 벌려 반긴다. 논두렁 뒤 구릉에 터 잡은 초가들이 올망졸망 늘어서 가을볕을 쬔다. 초가와 기와집 사이로 난 돌담길에 삐죽이 고개를 내민 감나무들이 까치밥을 대롱대롱 남겨두고 겨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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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통 예안 이씨 집성촌

  외암민속마을은 예안 이씨들이 조선 명종 때부터 약 500년 동안 사는 집성촌이다. 양반 고택과 초가 등 전통가옥 60여 채가 조선 후기 향촌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짓고, 해마다 초가지붕을 새로 올린다.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장승제, 짚풀문화제 같은 전통 행사와 세시풍속을 살뜰히 챙긴다. 달집태우기는 전국에서 구경꾼들이 모일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진다.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계단식 논과 초가들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계단식 논과 초가들


  남향으로 자리 잡은 마을 앞에 ‘앞내’라 불리는 실개천이 흐른다. 마을 동북쪽으로는 설화산이 우뚝 솟았다. 풍수지리를 모르는 까막눈이어도 배산임수 지형임을 눈치챈다. 앞내에 놓인 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자, 눈이 부리부리한 장승 한 쌍이 맞아준다. 장승 아래에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쑥떡, 감, 나물 같은 먹을거리를 판다. 장승 오른쪽으로는 계단식 논이 넓게 펼쳐진다. 추수 마친 논이 논두렁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엿장수도 길 잃는 긴긴 돌담길

  투호, 굴렁쇠, 윷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집마다 납작한 돌로 쌓아 올린 돌담을 둘렀다. 돌담 위에 단풍 든 담쟁이덩굴과 호박이 넉살 좋게 올라앉았다. 돌담을 모두 이으면 길이가 5.3㎞나 된다고 한다. 옛날에 엿장수가 이 마을에 엿을 팔러 왔다가 돌담이 길어 길을 잃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여행자는 그저 길고 긴 돌담이 이끄는 대로 걷는다. 돌담 너머 보이는 감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밤나무 덕에 마을이 풍요로워 보인다. 


  마을 안에는 고래 등 같은 기와집도 있고, 단출한 초가도 있다. 사립문을 활짝 열어 놓은 초가 마당에는 고추, 호박, 산나물 등이 널려 있다. 기와집은 담장이 높아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마당이 보인다. 기와집 대문에 ‘참봉댁’, ‘참판댁’, ‘종손댁’, ‘송화댁’, ‘교수댁’, ‘감찰댁’ 등 주인장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택호를 붙여 놓은 것이 흥미롭다. 대부분 예안 이씨 후손들이다. 



담장 높은 예안 이씨 고택들

  마을 중심에 자리한 건재고택은 이 마을 고택 중 으뜸이다. 영암군수가 살았던 집이어서 ‘영암 군수댁’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그의 아들 호를 따 ‘건재고택’으로 전해온다. 아산시에서 건재고택을 사들인 뒤로 10시 30분,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30분, 하루 세 차례 개방한다. 

  건재고택은 조경이 빼어나기로 이름나, 궁금하던 참이다. 솟을대문과 높은 담장 안에 감춰졌던 수백 년 된 정원수, 인공수로와 연못, 빨래터를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논에 물을 대는 봄이 오면 바짝 마른 수로와 연못에도 찰랑찰랑 물이 찬다고 한다. 

건재고택 솟을대문 맞은편에는 생김새가 수려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마주 보고 있다. 솟을대문 앞에는 노란 은행잎 카펫이 깔렸다.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따스한 가을볕을 쬔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은행잎이 ‘쏴’ 소나기 소리를 내며 흩날린다. 건재고택 입구에 서 있는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는 마을의 터줏대감처럼 늠름해 보인다.


지금은 보기 드문 옛날 방식으로 감 말리는 풍경지금은 보기 드문 옛날 방식으로 감 말리는 풍경

건재고택 안 돌담 아래 조성된 옛 빨래터건재고택 안 돌담 아래 조성된 옛 빨래터

물길을 이용한 생활의 지혜

  외암민속마을은 예로부터 물을 중시했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설화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서 물이 필요했던 것. 설화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마을 동쪽을 지나 마을 남쪽(입구) 외곽도로를 따라 흘러나가는데, 이 물길의 상류를 인위적으로 터서 마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물길은 여러 가옥을 통과한다. 몇몇 양반가들은 이 물길을 생활용수와 방화용수로 쓰고, 마당에 곡수(曲水)와 연못을 만들어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사용했다. 건재고택이 물길을 잘 활용한 대표적인 집이다.


  마을 입구로 돌아와 마을에서 열리는 전통 체험행사를 살펴본다. 농사 체험과 두부, 고추장, 강정 등의 음식 만들기 체험은 봄부터 가을까지만 진행한다. 투호, 널뛰기, 그네뛰기, 제기차기 등의 전통놀이와 한지 나무등, 한지 손거울, 한지 부채 만들기, 천연염색 같은 공예 체험과 한옥 체험은 연중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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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민속마을

주소: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5 

문의: 010-9019-0848 

관람 시간: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 

관람료: 어른 2,000원 청소년·어린이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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