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여주 시간의 주름을 펴다

글 _ 강지영 객원기자

남한강을 품고 있는 기름진 땅 초입, 녹음 사이로 햇살이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계절은 여름을 향해가고 있다. 푸르름 속에 영글어가는 시간이 먼먼 옛날을 눈앞에 내려놓는다. 소나무가 뿌리 내리기 훨씬 전부터, 그 아래 붉은 흙이 저 너머 사연을 머금고 이곳에 자리 잡기 전부터 이어져 온 이야기를 찾아 여주로 들어간다.



세종대왕 영세종대왕 영릉


  숲길을 걷는다. 그 시절 왕의 숨결을 따라 걸을 뿐, 이 노정 끝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쌍릉을 찾아가는 길이다. 귀를 관통하는 새소리가 바닥을 쓴다. 사그락사그락, 빗질이 되어 겹쳐지는 새소리를 밟아 나간다. 그 위에서 익숙한 문형을 본다. 기역처럼 보이는 무엇이, 히읗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 발을 이끈다. 세종의 흔적을 따라 영릉을 찾아간다. 글자를 벗 삼아 걷다 보면 길이 나올 터. 닿음이 있을 터. 굽은 소나무길 사이를 걸으며 허약하고 예민했던 세종을 떠올린다. 


세종대왕을 만나러 가는 길

  글이 숨구멍이었던 세종은 책을 통해 만사(萬事)를 관조하며 세사를 읽어내는 눈을 조각했다. 책을 읽는 행위는 갑갑한 궁궐 생활에서 세종에게는 삶 그 자체였고 품을 넓혀주는 무한한 우주였으며 그 자신이기도 했다. 세종은 애서광이었다. 숨을 쉬기 위해 낸 구멍이 숨통을 막아오는 지경이 이르자 태종은 이윽고 세종의 처소에서 책을 치우도록 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세종대왕이 숨겨둔 책이 후에 천 번도 넘게 읽은 것으로 전해지는 구양수와 소동파의 서신 모음집 「구소수간(歐蘇手簡)」이었다. 구양수와 소동파의 교류에서 세종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이 남긴 문자 속에서 어떤 세상을 그렸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즈음 세종대왕상을 만난다. 책을 들고 선 세종에게서 문자와 말이 달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읽어낸 따뜻한 눈을 본다. 세종대왕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있는 혼상, 혼천의, 측우기 등에서 백성을 아끼는 마음인 애민을 느낀다. 


  왕릉 관리인들이 지내던 곳을 복원한 재실을 지난다. 영지를 거쳐 홍삼문에 이른다. 문 너머에 능이 있다. 세종의 능이 눈앞에 있다. 길게 이어지는 향어도를 걸어 정자각에 이르니 어느새 능이 목전이다. 효종 1년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를 찾아 천장(遷葬)한 것으로 조선 최초의 합장릉으로 알려진 영릉. 도래솔을 걸어 봉분인 능침으로 간다. 능에 가까워진 만큼 가슴 속 울림도 커진다.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내 나라 글을 창제해 준 왕과 학자들에 대한 감사 때문이리라. 조선의 왕이면서 철학자, 발명가이자 문인이기도 했던 세종의 능 앞에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인다. 


  ‘사람마다 쉽게 익혀 문자 사용을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라는 훈민정음 구절과 더불어 솔숲을 지나온다. 굽은 소나무가 심양에 억류되었을 당시의 심정을 적은 효종의 심양회상문(瀋陽回想文)을 불러온다. ‘지난 시절 괴로움이 오늘의 즐거움이 되리라’며 조선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던 효종의 말이 훈민정음에 덧대어진다. 위아래로 놓인 효종과 인선왕후의 쌍릉이 예송논쟁이라는 아픔을 전해온다. 300년 수령을 자랑하는 회양목을 지킴이 삼아 선 원형 재실의 굳건함이 솔잎이 남긴 따끔거림을 매만져 준다. 


세종대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 신륵사

  영릉을 나와 신륵사로 간다. 신륵사는 신라 원효대사가 7일 공양기도로 만든 절로 알려졌다. 원효대사가 기도를 끝내자 아홉 용이 연못에서 승천하였다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고려말 고승 나옹화상이 입적한 천년고찰로도 유명한 신륵사는 열점도 훨씬 더 넘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강과 나란히 걸어 신륵사로 들어간다. 구룡루를 지나 영릉의 원찰(願刹)이었다는 극락보전으로 들어간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삼존여래상 앞에서 눈을 내리깔고 앉아 숨을 고른다. 그 옛날 승천했다는 용이 여객(旅客)을 마중 나오기라도 한 듯 신륵사에 담긴 바위와 물의 이야기가 불전(佛殿)을 넘실거린다. 그 부드러운 흐름이 긴장해 굳어 있던 어깨를 풀어준다. 바람의 손을 잡고 극락보전을 나온다. 신륵사 다층석탑을 한 바퀴 휘돈다. 깨지고 마모된 돌을 이고서도 묘한 안정감을 뿜어내는 석탑에서 세월의 굳건함을 읽는다. 경내를 돌아 나옹선사의 사리탑을 만난 다음 이른 곳은 다층 전탑 앞이다. 흙으로 구운 벽돌로 만든 다층 전탑의 투박한 웅장함 위로 강바람이 물결처럼 덮쳐온다. 시간의 주름이 겹쳐진다. 주름 마디마디에 사연이 있고 사람이 있다. 여주의 살아있는 숨결을 들이마시고 있는 이 순간 또한 역사가 되어 남겨지고 있으리라.



기사 이미지신륵사


세종대왕 영릉과 효종대왕  영릉을 이어주는 왕의숲길세종대왕 영릉과 효종대왕 영릉을 이어주는 왕의숲길


기사 이미지명성황후 기념관


명성황후 생가에서 매만지는 역사의 주름

  마지막 여행지는 명성황후 생가다. 아픔과 설움이 되어 남은 역사 그 또한 우리의 살이고 피이며 뼈일 터. 명성황후의 생애와 목이 마르도록 살아있음을 외쳤던 백성의 시간이 담긴 기념관을 둘러 나온다. 인현왕후와 명성황후가 기거했던 집인 감고당으로 발을 들이민다. 안국동과 쌍문동에서 보낸 감고당의 시간이 여주에 뿌리를 내려 있다. 겹쳐진 시간을 건너와 생가로 들어간다. 초상화가 알려오는 주인의 부재가 침묵의 역사가 전해오는 말을 귀에 남기고 간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애국이라고 했던가. 모양새는 달라도 그 마음은 하나였을 터. 장소와 시간이 포개져 있는 땅 여주에서 역사의 주름을 매만진다. 흩날리는 민들레 씨에서 시간의 날갯짓을 읽어내고자 함은 여행객의 지나친 감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