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펼쳤던 2016년 이후 인공지능(AI)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생성형 AI가 그린 그림은 경매에서 2억 원을 웃돌기도 하고, 가수는 AI와 듀엣을 결성하는 세상이다. 이처럼 급변하는 기술발달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22년부터 2026년까지 100만 디지털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다. 이보다 한발 앞서 경기도 고양 백신중학교(교장 오정숙)는 2021년부터 AI교육 선도학교로서 학생들의 디지털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중심에 자율동아리 ‘엔터(ENTER)’가 있다.
백신중학교 자율동아리 ‘엔터’ 학생들이 ‘고양시 청소년 어울림 마당’에 참석해 또래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보 관련 체험을 진행하였다.
재미있는 활동으로 AI 알리기
“우리나라와 관련된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인공지능이 머신러닝을 통해 그림을 학습한 다음에 어떤 그림인지 맞힐 수 있게 됩니다. 잘 맞힐 수 있게 열심히 그려보세요.”
“라인트레이서(Line Tracer)가 우리나라를 표현한 까만 줄을 따라 움직이면서 한식이 아닌 음식은 지도 밖으로 밀어낼 거예요.”
지난 10월 19일 고양시 청소년 어울림 마당이 펼쳐진 일산문화광장에는 동아리 축하 공연과 드론, 환경, 영화, 제빵 등 다양한 주제로 동아리 부스가 마련되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정보 동아리 ‘엔터’ 부스였다.
김재문(3학년) 학생은 “지난 행사와 비교했을 때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라며 “로봇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때 참가자들이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라인트레이서는 로봇에 적외선 센서를 달아서 검은색 선은 빛을 덜 반사하고 흰색 바닥은 빛을 더 많이 반사하는 반사율의 차이를 활용해 로봇을 움직이도록 한다. 이때 로봇은 제어 시스템을 통해 처리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바퀴의 속도와 방향을 변경한다.
이날 가장 인기가 있었던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국어의 인기 분석’ 코너. 이곳에서는 한국어 능력 시험 응시자 통계와 국어 사용 실태 자료를 생성형 AI를 통해 분석하고 정리해 보는 체험이 진행됐다. 방과후 수업 시간에 배운 파이선 언어로 만든 주사위 게임, 컴퓨팅 사고력을 알아보는 ‘하노이 탑 퍼즐 해결과 원리 분석’, ‘퀵&드로우’ 프로그램을 사용해 인공지능의 학습능력을 알아보는 체험은 참가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동아리를 지도하는 정웅열 교사는 “홍보 포스터 제작부터 체험활동 구성과 준비를 모두 학생들이 스스로 했다. 평소에 강조했던 학습자 주도성을 제대로 발휘하는 중”이라며 “오늘은 내가 할 일이 없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좌)적외선 센서가 달린 ‘라인트레이서’ / (우)“한반도 지도 위에 놓인 음식, 한식일까? 아닐까? 로봇에게 물어봐~”
코딩으로 디지털 세상에 올라탄 동아리
‘엔터’는 정보 수업이 없는 2학년과 3학년 학생이 모여서 만든 자율동아리다. 정보와 관련된 프로그래밍, 로봇, 데이터 분석 등에 관심 있는 학생 19명이 모였다. 1학년 때 정보 과목을 통해 AI 세상에 눈을 뜬 학생들은 더 많이 배우고 익히기 위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점심시간에 모인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로봇 코딩 방과후 수업으로 파이선 언어를 배우고 있다.
열심히 공부한 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 다양한 코딩대회에도 출전하고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동시에 실력을 겨루는 국제 비버챌린지와 전국 시도교육청과 한국정보교사연합회가 주관하는 학교친구프로그래밍챌린지(SFPC)에도 출전한다. 송재원(2학년) 학생은 “웹사이트에 있는 문제를 함께 풀어보고 풀이 과정을 공유하는 과정이 재미있다.”라고 말했으며, 강예성(3학년) 학생은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듯 코딩 문제를 순서대로 풀며 정답을 맞힐 때 성취감을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2학기에 동아리가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SW동행 프로젝트이다. 청소년 동아리와 대학생 멘토는 지난 7월부터 6개월 과정으로 ‘해양 생태계 보전’, ‘기후변화 대응’, ‘식량안보’, ‘건강한 삶’, ‘청정에너지’ 등 지속가능발전목표 중 청소년이 관심을 가질법한 10개 주제 가운데 관심 분야를 골라서 활동 중이다. 부원들은 ‘레고 로봇을 이용한 깨끗한 물 만들기’와 ‘항공사진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교내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가 개최하는 여름방학, 겨울방학 정보(SW·AI) 캠프도 빠지지 않는다. 정웅열(디지털정보부장) 교사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 어떻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겠나.”라며 “기초적인 디지털 소양을 갖추고 윤리의식을 가진 디지털 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백신중은 AI교육 선도학교로 선정된 이후 디지털·AI교육에만 집중하는 디지털정보부를 신설하고 정보 교과 시수를 68시간으로 확대하는 등 꾸준히 교육과정을 개편해 왔다. 모든 교과목에 AI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학생, 교사, 학부모가 디지털 시민으로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국어의 인기 분석
Mini Interview
김민채(3학년) 학생
졸업하고 나서도 찾아올 수 있도록 동아리 잘 지켜줘! 1학년 때는 정보 과목뿐 아니라 학교생활도 익숙지 않아서 선배들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그때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2학년 때는 직접 자율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고양시 청소년 동아리 축제 일정이 나오면 부스 운영 준비를 위해 모임 횟수도 늘어난다. 코딩대회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점심시간의 휴식을 반납하고 동아리 활동에 참여해 준 부원들에게 정말 고맙다. 고등학생이 되면 평소에 관심이 있던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여러 가지 코딩 언어를 배우는 동아리 활동이 큰 도움이 된다.
강예성(3학년) 학생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에서 블록 코딩을 배울 때 막연히 파이선이나 C언어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1학년 때 배운 것을 이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2학년부터 정보 수업이 없는 아쉬움을 동아리에서 채울 수 있어서 즐겁게 활동했다. 프로그래밍뿐 아니라 라인트레이서 같은 로봇 관련 코딩도 해보고 데이터 분석도 경험해 본 다음 가장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코드업(Code-Up)이라는 사이트에서 기초 100제를 다 풀고 나서 굉장히 뿌듯했다. 푸는 동안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코딩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앞으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앱을 개발하고 싶다.
신채은(2학년) 학생
선배들이 졸업해도 지금 부원들과 자율동아리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인도의 전설에도 나오는 하노이 탑 퍼즐을 알려줄 때 사람들이 즐겁게 반응해 주어서 뿌듯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혼자서 인터넷으로 스크래치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게임을 만들어 본 적도 있다. 요즘에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게임을 만드는 데 관심이 생긴다. 코딩 프로그래밍은 늘 좋아하는 분야인데 대개 혼자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할 때가 더 즐겁다. 앞으로 과학고에 진학해 프로그램 개발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AI와 경쟁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송재원(2학년) 학생
원래 코딩 쪽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딩 언어를 배우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다. 각각의 코딩 언어는 고유성을 가지지만 결괏값은 같다는 특징이 있다. 처음 스크래치로 코딩해서 라인트레이서가 길을 따라서 움직일 때를 잊지 못한다. 동아리 축제에서 우리가 열심히 만든 프로그램을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이 크다. 그래서 내년에도 재원이와 함께 동아리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청소년 동아리 지원 사업에도 공모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을 후배들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선생님이랑 부원들이랑 앞으로 남은 시간도 즐겁게 활동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