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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체계적으로 ‘느린 학습자’ 지도하기

글·사진 _ 정가희 인천서흥초등학교 교사(인천광역시교육청 기초학력전문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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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학습자는 지능지수가 71~84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말한다. 이 학생들은 낮은 인지능력으로 인해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작업기억 능력이 부족하여 배우는 내용이 복잡하면 더 어려워한다. 아울러, 주의력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지속해서 집중을 유지하며 학습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느린 학습자를 위한 특별한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중에 인지치료나 주의력 집중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느린 학습자라고 해서 배우는 내용이나 방법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난 8월 ‘느린 학습자를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라는 주제로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관련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 매우 유익했다. 이 대회의 주요한 주제를 정리하면 첫째, 지능은 근본적으로 특별한 치료나 교육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둘째, 느린 학습자는 지능이 71~84라는 공통점만 있고, 사례마다 매우 다양한 어려움이 공존한다. 셋째, 현실적으로 초·중·고 학생은 읽기, 쓰기, 셈하기와 같은 기초학습 능력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기초학습이 전제되지 않으면 학생은 모든 교과 학습에서 어려움을 보이기 때문이다. 즉, 인지치료나 주의력 훈련으로는 ‘학습’에 필요한 읽기, 쓰기, 기초수학과 같은 기초학습과 교과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느리지만 잘 배울 수 있어요

  나의 교직 생활에서 경험한 수많은 사례도 그렇다. ‘느린 학습자(Slow Learner)’라는 용어가 가진 의미에서 보듯 찬찬히 체계적으로 개별화하여 가르치면 아이들은 ‘느리지만 잘 배울’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누적된 연구 사례에 비춰봐도 유효한 방법이다. 아마 학교 교사라면 학생의 읽기, 쓰기, 셈하기와 같은 기초학습 능력이 향상되면 평소 학생의 태도와 자신감도 좋아진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한글을 해독하지 못했거나 더듬더듬 읽던 학생이 잘 읽게 되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그동안 나의 읽기 지도 사례를 통해 본 느린 학습자에게 필요한 학습지원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01 학생에게 지도할 내용을 과제분석하고, 세분화하여 지도한다. 

과제분석이란 학습자가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더 단순한 하위과제로 분할하여 분석하는 활동 혹은 계획을 말한다. 느린 학습자는 작업기억의 결손으로 한 번에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기 어렵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과제의 양을 더 쪼개고 단순화하여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한글을 지도할 때 처음부터 단어 수준 읽기를 통해 지도하는 것보다는 모음→자음→자음과 모음 합성 순으로 지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이렇게 체계적인 방법으로 한글을 지도하는 교재로 ‘찬찬한글’이 있다. 느린 학습자나 경도 지적장애 학생에게 찬찬한글을 지도할 경우, 모음과 자음을 읽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받침 없는 단어를 읽는 것을 볼 수 있다. 


02 내용은 같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느린 학습자는 배운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생이 배운 내용을 완전학습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반복할 경우, 학생도 교사도 지치게 된다. 따라서 학습의 내용을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하면서, 학생이 혼동하는 부분을 더 잘 알아가도록 단서를 추가하여 제시해야 한다. 한글을 지도하다 보면 모음의 소릿값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소릿값과 글자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아’를 보고 ‘어’라고 대답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아’의 소릿값을 더 명시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입모양카드를 사용하여 반복 연습할 수 있다. 입모양은 보기만 해도 바로 소리가 생각나는 도구이다. 따라서 교재로 가르쳐도 소릿값을 혼동한다면, 입모양을 사용하면 좋다. 입모양으로 ‘아’와 ‘어’의 소릿값을 구분하게 되면 글자와 입모양을 매칭하는 다양한 놀이를 통해 글자를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놀이를 통해 반복해도 교사가 한글을 가르치는 동안 학생이 지속적으로 혼동하는 글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학생이 완전학습할 때까지 짧게라도 계속 연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와 ‘우’를 계속 혼동하는 학생의 경우 모음을 모두 배우고 자음을 지도하더라도, 자음을 지도하면서 한 회기의 5분 정도는 ‘오’, ‘우’를 다시 연습하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히 알 때까지 조금씩이라도 지도하면, 완전학습할 수 있다. 

학생이 배운 내용을 완전학습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학생이 배운 내용을 완전학습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릿값 이해를 위한 입모양카드소릿값 이해를 위한 입모양카드


학습계약으로 23분 공부하면 풍선 1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학습계약으로 23분 공부하면 풍선 1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한글을 지도할 때 모음, 자음을 세분화하여 지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한글을 지도할 때 모음, 자음을 세분화하여 지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03 주의력이 부족한 학생을 위해 학습 계약을 정한다. 

  많은 느린 학습자들이 주의력에 어려움을 동반하고 있다. 주의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정해진 학습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의집중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습 시간이 짧다. 그래서 주의집중 시간을 학생의 수준에 맞게 점차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최대 집중 시간이 20분 정도라면, 학습 시간을 23분 정도로 조금씩 늘려가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학습한 뒤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한다. 이때 교사가 “23분 공부하면, 풍선 1개를 줄게요.”라고 말로만 전달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23분 공부하면 풍선 1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학생과 함께 학습 계약을 맺는 것이다.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학습 시간을 정하고 타이머로 23분을 맞춘 뒤, 학습 시간을 지키면 학생이 원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사례를 통해 교사도 배운다

많은 느린 학습자, 난독증, 경도지적장애 학생들에게 읽기지도를 하면서 찬찬히 체계적으로 학생들의 특성에 맞게 지도하면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올해 부산광역시교육청 기초학력지원센터에서 느린 학습자 및 난독증 학생을 지도하는 연수과정 슈퍼바이저로 참여했다. 여기에서 지적장애, 경계선 지능 수준의 학생들도 약 40회기 지도를 통해 한글을 해득하고, 단어 읽기에서 놀라운 성장이 있었다.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작가 존 그리샴이나 금융가 찰스 슈왑, 유전학자 조지 처치도 난독증 등으로 학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사례도 많다. 이런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점은 느린 학습자도 느리지만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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