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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수 있는 성평등 교육

이해주 인천명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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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학교 1층의 토마토 숲은 동료 선생님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었다. 토마토 화분을 만들기 위해 생애 처음 전동 드라이버를 사용해 보았다. 무거운 전동 드라이버에 비트를 척척 갈아 끼우고, 뚝딱뚝딱 완성해 낸 거대한 화분을 출퇴근 길에 볼 때마다 ‘내가 이걸 만들었다니!’라며 한껏 고양되었다. 그리고 화분을 보며 생각했다. ‘난 이제 뭐든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화분 만들기로 한껏 치솟은 나의 자신감의 이유는 화분의 크기가 거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전동 드라이버를 사용해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전동 드라이버를 사용함으로써 내 손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추가된 것이다. 즉, 나는 ‘자립을 위한 능력치’를 함양했다. 


  그런데 나는 왜 여태까지 전동 드라이버를 잡아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전동 드라이버를 만질 수 있었던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바로 아빠다. 어릴 때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만질 수 없었지만, 정말 그 이유가 다일까? 어린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성장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 안의 무의식은 아이들의 경험을 성별에 따라 제한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기사 이미지우리 안의 무의식은 아이들의 경험을 성별에 따라 제한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기사 이미지




우리 안의 무의식은 성별에 따라 행동을 제한한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수년간 미국 전역의 초등학교 교실 상황을 녹화하여 전문가들이 분석1한 결과, 스스로 평등을 지향한다고 자부하던 교사들도 학생의 성별에 따라 성공 경험을 제한하고 있었다. 즉, 차별할 의도가 없었던 교사들일지라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도움’과 ‘개입’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존재했다. 


  이 과정은 ‘쇼트 서킷(Short-Circuit)’이라 불린다. 성별에 따라 교사의 직접적인 행동이나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활동이 제한되는 것이다. 먼저 직접적인 행동의 예시를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활동(전동 드라이버 사용하기, 기계와 관련된 일 등)을 수행할 때, 교사들은 여학생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내기 전에 끼어들어 ‘도움’을 준다. 남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여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바느질, 청소하기, 정리하기 등을 할 때 쉽게 제지당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다. 


  피드백 또한 성별에 따라 다르게 주어졌는데, 연구에서 교사들은 남학생들에게 ‘자기 일을 스스로 완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자세한 피드백을 해주었다. 하지만 여학생들에게는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와 같은 말을 했다. 예를 들어, “비디오테이프를 어떻게 넣나요? 도와주세요.”라고 했을 때 여학생에게는 설명 없이 바로 비디오를 넣어주지만, 남학생들에게는 이것을 기계에 어떻게 넣고 재생시키는지를 알려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남학생들이 직접 해 보도록 기다려주고 성공했을 시 칭찬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부드러운 방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부드러운 방해’가 반복되면 어린이들은 도움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도전하려는 태도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인해 어린이들은 도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못 하는 일은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다.


  교사들은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무엇이 성별로 인해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일인지, 혹은 사회적 통념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성별에 따라 모습을 규정하고 있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만약 남학생 혼자 들 수 있는 무거운 물건이라면, 여학생 두 명이 들어볼 수 있다. 또, 바른 글씨나 바느질, 깨끗하게 치우고 유지하는 일은 성별과 상관이 없다. 연습하면 된다. 학생들이 어떤 일을 못 하는 이유는 대개 경험의 공백으로 익숙하지 않아서이고, 그 결과 자립을 위한 기술들마저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렇기에 교사들은 성별을 기준으로 기회나 경험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성취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방법을 바꿔볼 수 있다. 성별 고정관념을 답습하는 아이들의 행동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경계존중 교육이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상대를 존중해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나의 경계가 침범되는 상황들을 살펴보고, 이 상황을 성평등하게 바꾸어보는 것에 대해 모둠별로 토의했다.경계존중 교육이란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상대를 존중해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나의 경계가 침범되는 상황들을 살펴보고, 이 상황을 성평등하게 바꾸어보는 것에 대해 모둠별로 토의했다.



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여성 인물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과 역사 속 여성 인물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여성 인물이 존재하지만, 그들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과 역사 속 여성 인물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평등 교육을 위해 교실에서 꼭 지켜야 할 원칙

  나는 ‘쇼트 서킷’과 ‘부드러운 방해’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 반 학생들에게 이것만은 꼭 지켜주길 당부했다.


1.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신감 있게, 적극적으로 요청하기 

2. ‘내가 할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쩌지?’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 보기

3. 성공은 기쁘게, 실패해도 ‘해 보길 잘했어’ 라고 생각하기.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 속에서 배울 점 확실하게 챙기기



  많은 교사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이 기본적인 원칙들을 강조한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내가 만난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이 원칙을 습관화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사회적, 경험적 맥락을 생각해 본다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자기 자신을 더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중잣대를 학습했기 때문이다. 얌전하길 요구해서 행동을 참으면 ‘손이 많이 간다’라고 이야기하고, 막상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설친다’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 간극 속에서 성장하는 일은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제자는 졸업하며 이런 말을 했다. 

“학교 다니면서 제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많이 도전해본 적도 처음이에요. 도전해서 다 성공하거나 그런 건 아니긴 했지만 계속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태까지 그런 말은 학교 다니면서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해 봐야 아는 것 같아요. 좀 더 도전해보겠습니다.”


  성평등 교육은 보통 ‘성평등한 교육’과 ‘성평등 의식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교육활동에 성차별적 요소나 성불평등 요소가 포함되지 않은 상태를 말하며, 후자는 성평등한 사회재건에 필요한 의식과 가치관을 길러주기 위한 교육이다. 성평등 교육의 특징은 교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를 기본기로 가지고 있어야 성평등한 교육을 바탕으로 성평등 의식교육까지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먼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을 함양해나감과 동시에 ‘성평등한 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요소들을 점검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함께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우리 안의 무의식을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성평등한 교육 환경을 위해 함께 노력할 수 있다. 교사들의 이런 노력은 학생들에게 자립을 위한 기술과 역량들을 길러줄 수 있고, 이는 자신감 및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더욱 성평등한 미래를 선물할 수 있다. 성평등 교육은, 누구나 할 수 있다. 




1  DAVID & MYRA SADKER, <Still Failing at Fairness- How gender bias cheats girls and boys in school and what we can do about it>

2  ‘기계적인 중립’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또한, 친절함을 버리라는 말도 아니다. 생물학적 차이와 사회 구조적 맥락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UN은 성평등(Gender Equality)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적 맥락을 살펴 ‘성 형평성(Gender Equity)’을 발휘하는 것이 주요한 방법이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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