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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병아리를 부화한 삼남매


글  김정희 광주학운중·학운초 학부모



  코로나19로 등교를 하지 못한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3학년 삼남매의 하루가 부산하고 바쁘다. 우리 부부가 모두 출근하면 삼남매가 남아서 원격 수업을 하고, 같이 라면도 끓여 먹고, 손잡고 뒷동산 산책을 가기도 간다. 게다가 집에 있는 동안 직접 병아리를 부화해서 온 집안이 시끄럽지만 즐겁다. 늘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이들이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병아리를 부화해서 키우는 부모의 마음을 배운 것이다.

  시작은 큰댁 시골에서 가져온 유정란이었다. 5년 전쯤 맏이 시현이가 병아리를 부화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주문했던 종이상자와 온도조절 장치를 조립하여 만든 부화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부화기에 계란 4개를 앉히고 삼남매는 날마다 들여다보며 손꼽아 3주를 기다렸지만, 병아리는 부화하지 않았다. 삼남매의 실망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부화를 주도하며 동생들을 설득한 팀장 시현이의 실망이 특히 컸다.

  그러나 시현이는 동생들 앞에서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시현이를 팀장으로 2차 병아리 부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병아리를 부화하기 위해서는 38도 가량의 온도를 유지하고, 하루 세 번 계란 굴려주기가 핵심이란 걸 다시 공부했다. 부화 기간 3주(21일)간 온도를 계속 유지해주고, 병아리가 알을 깨기 위해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계란 굴리기는 19일이 지나면 멈춰야 한다는 것도 새로 배웠다. 유기농 매장에서 유정란 10개를 사서 다시 앉혔다. 삼남매는 각기 자기 계란에 이름을 짓고 껍데기에 적었다. 띠리, 롤리, 아롱이….

  아침잠이 없는 시현이는 아침, 하연이는 오후, 시윤이는 밤에 각각 계란 굴리기 당번을 했다. 막내 하연이가 깜빡하거나 시윤이가 일찍 잠들면 여지없이 시현이의 지청구를 들어야 했고, 동생들은 새 생명을 보기 위해 달게 받아들였다.

  가족과 주말 하룻밤 여행을 갔던 날이 바로 부화 예정일이었다. 설렘과 긴장감으로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집안은 온통 삐약이 소리로 가득했다. 2마리였다. 한 녀석은 간밤에, 한 녀석은 아직 깃털이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1~2시간 전에 까고 나온 것으로 보였다. 생명의 탄생은 기적이었다. 아이들은 뛰며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우리 부부도 같이 야단법석의 날이었다. 그런데 가장 기다렸던 하연이의 롤리가 태어나지 않아 하연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밤에 잠자리에서 하연이는 “병아리, 병아리” 하면서 잠꼬대를 했다. 엄마 아빠가 보기에도 하연이가 짠했다. 그런데 다음날 출근하고 나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롤리가 금이 가기 시작했어. 알에서 삐약삐약 소리가 나!”


  하연이의 탄성이 터졌다. 낙담하던 하연이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퇴근해서 돌아온 나는 아직도 알에서 깨 나오지 못한 롤리를 위해 하연이가 젓가락으로 톡톡 두드려주며 줄탁동시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0시간 가까이 콕콕거리며 늦게 깨어난 롤리는 다른 놈보다 힘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각각 이름 지어준 병아리들이 차례로 깨어나 정말 다행이었다.

  전날 나온 두 녀석은 당찬 목소리와 발걸음으로 아이들을 신나게 했으나, 롤리는 아직 털도 마르지 않아 온 가족을 신경 쓰이게 했다. 부화기 상자에는 온도조절 및 식수 용도로 접시에 물을 떠 놓는데, 온 가족이 잠든 새벽에 아내의목소리가 황급히 들렸다. 아뿔싸, 롤리가 죽었다. 그 작은 접시 물에 병아리가 빠져 죽은 것이다. 아직 털이 덜 마르고 힘이 없던 녀석이 목이 말라 접시에 가서 목을 축이다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부리를 접시에 박고 익사해 버린 것이다.

  슬프고 안쓰러웠지만, 실망할 하연이를 생각하니 더욱 망연자실하였다. 밤새 우리 부부는 잠을 못 자고 뒤척였는데 세상에,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 부화되지 않아 포기하고 방치했던 달걀에서 3마리의 병아리가 더 깨어난 것이었다. 그 3~4시간 사이에 기적처럼 저희들끼리 혼자 알을 깨고 나온 것이다.

  먼저 간 롤리가 짠하고 미안했지만, 우리 부부는 롤리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두 녀석이 새로 태어났다고 했더니 하연이는 그렇게 믿었다. 물론 시현이와 시윤이는 달걀이 하나 없어졌다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빠가 실수로 깨뜨렸다고 하니 또한 믿어 주었다.

  지금은 3남매가 매일 병아리들에 푹 빠져서 공부하기가 바쁘게 병아리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돌보고 있다. 큰 닭으로 키우겠다는 아이들의 포부가 대단하다. 친구 없이 집에서만 지내야 하는 4달 동안 아이들은 새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생명의 기적을 보았고, 돌보고 책임지는 공부를 한 것이다.


[ 삼남매가 키워낸 병아리 ]

   
[ 병아리 부화 프로젝트를 성공한 첫째 시현이, 둘째 시윤이, 막내 하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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