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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에 빠진 철구

학교상담 전문가가 전하는 우리 아이 심리

글_ 김서규 경기대 교육상담학과 겸임교수(전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교사) 



  아이들이 음란물을 접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음란물 중독은 학업을 저해하는 수준을 떠나서, 성에 대해 비뚤어진 생각을 갖게 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가정에서 부모님들도 이런 문제를 적절히 대처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음란물에 중독된 아이들은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문제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 철구는 공부도 망쳤고 친구도 없다. 하는 일이라고는 교실 뒷자리에 앉아서 늘 잠을 자는 것뿐이다. 초등학교 때 별명은 ‘바지에 똥 싼 아이’였는데, 중학교 때는 ‘나무늘보’였고, 고등학교 때는 ‘뚱돼지’가 되었다. 깨어있으면 무기력하고, 엎드리면 종일 자서 선생님들이 ‘쟤 좀 깨워라!’ 하면 아이들은 입을 모아 ‘깨워도 안 일어나요!’ 하고 소리친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철구를 깨우자 벌떡 일어나서 ‘비켜라, 내가 나간다!’ 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 엉뚱한 반응에 아이들은 난리가 났고, 철구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 때문에 상담실로 보내졌다.



진단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철구야, 교실에서 왜 그런 고함을 질렀니? 뭔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들리던데.” 철구가 부끄러워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나쁜 놈을 물리치고 사람을 구하는 꿈을 꿨어요. 선생님, <쏘우>라는 영화 보셨어요? 주인공이 악당들에게 잡혀서 묶여 있는데, 톱니가 가슴 위로 내려오는 거요. 그 비슷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봤지. 히어로 영화던데.” “맞아요. 전 히어로가 되는 상상을 많이 해요. 부끄럽지만 길을 걸어가면서도 상상할 때도 있어요.” 철구는 예쁜 여자를 구하는 것으로 끝나는 공상을 말해주었다.

  상담 선생님이 또 물었다. “이런 스토리는 어디서 얻니?” “게임에서 본 장면으로 상상을 해요.” “게임은 얼마나 하니?” 철구가 히이 하고 웃었다. “저녁 6시부터 아침 5시나 6시까지요.” “거의 12시간 하는구나. 게임만 하니? 야동도 보니?” “야동을 더 많이 봐요.” 아차! 이건 게임중독이 아니고 야동중독이다.

  상담 선생님이 철구의 생활을 재구성해보니, 매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컴퓨터로 전투게임을 하고, 10시부터 6시까지 야동을 보고 여러 번의 자위를 하면서 몸을 혹사한 후 1교시 수업 직전에 간신히 등교한다. 그러니 모든 게 망가졌을 수밖에.


지도
  언제부터 이런 중독이 시작됐을까? 상담 선생님은 먼저 철구가 4학년 때 바지에 똥을 싸서 놀림당한 후 아무리 잘하려 해도 여전히 놀림감이 되었던 사건으로부터 출발했다. 중학생이 되어도 아이들은 인정해주지 않았고, 계속 만만한 아이 취급을 했다. 이때부터 철구는 마음의 문을 닫고 게임과 야동의 세계로 들어갔다. 상담 선생님은 안타까워서 혀를 찼다. “철구야,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거니? 나하고 탈출 방법을 찾아보자.” 이 말에 철구는 마음을 열었다.

  상담 선생님은 철구의 마음에 눌어붙은 야한 공상에 플래시를 비추기 시작했다.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없앨 수도 있지 않은가. 철구는 창피를 무릅쓰고 자신의 성적환상(sexual fantasy)과 낮의 절반 이상에까지 침범한 백일몽(daydream)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건 초능력과 위대해지고픈 욕망과 빗장 풀린 성욕이 어우러진 ‘쾌락 영웅 이야기’였다. 탈출의 두 번째 단계는 이런 기괴한 판타지에서 영웅이 되고픈 욕망은 남겨두고, 유치한 부분은 성숙하게, 징그러운 부분은 재미있게 고쳐서 꽤 괜찮은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다. 탈출의 마지막 단계는 영웅이 되고픈 욕망을 좋은 사람이 되고픈 노력으로 슬쩍 바꿔서, 중독에서 현실로 나오도록 돕는 것이었다. 

    
  상담 선생님과 철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위대한 영웅적 행동은 예쁜 여자를 구하는 멋진 남자 역할도 아니고, 수많은 적을 물리치는 무술가도 아니고, ‘새벽공기를 가르고 아침 일찍 학교에 나타나 골대에 멋있게 슈팅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영웅적인가! 그리고 저녁엔 어머니가 일하는 가게에서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마치 실력을 숨기고 소박한 삶을 사는 영웅의 모습처럼.

  아침부터 부지런히 운동하고, 주변을 돕는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지 않는 법은 없다. 철구가 스마트폰을 폴더 폰으로 바꾸고, 컴퓨터를 거실에 내놓은 것도 그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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