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또 한 번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이런 추세에 따라 약 46만 명인 현재 대학 입학자원은 2040년 26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초저출산에서 비롯된 인구 구조의 변화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곳은 지방대학이다. 이미 2013년 대비 2023년 지방대학 입학생 수는 약 8만 명 감소, 신입생 미충원율은 3.2%p 증가(2.8%→6.0%)로 지방대학의 학생 충원은 악화 일로를 달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방대학의 존폐가 곧 지역소멸과 국가경쟁력 저하의 위기로 직결되는 점이다. 저출생과 수도권 집중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지역에서 대학이 폐교되면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기업이 떠나고 상권이 죽게 된다. 경제, 문화 등 지역사회 전반에서 활력이 저하되고 또다시 인구가 유출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구가 집중되는 수도권은 과밀로 인해 정주 여건이 나빠지고 출산과 양육이 어려운 도시가 된다. 이는 지난해 서울(0.55명)이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지역과 지방대학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데, 그 해법 중 하나가 바로 ‘좋은 대학으로 좋은 지역을 만드는 전략’이다. 우리나라보다 저출산의 타격을 먼저 경험한 일본에서는 벳푸시 리츠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학(APU)의 사례로 그 효과성을 입증한 바 있다. 2000년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 벳푸에 ‘대학 구성원 절반이 외국인으로 구성된 국제대학’의 기치를 내건 APU가 설립됐고, 개교 20여 년 만에 APU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재학생의 절반인 3천여 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였다. 청년 인구가 증가하면서 벳푸시는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젊은 국제도시로 변모하였다. 멀리 유럽의 스웨덴에서는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침체하던 항구도시 말뫼에 1998년 IT·스타트업 중심의 말뫼대학교가 설립되면서, 1990년 22만 명까지 줄었던 인구가 30만 명에 육박하며 ‘말뫼의 기적’을 이뤄낸 바 있다.
유례없는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지역과 대학은 동반 성장하기 위한 운명 공동체로서 협력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교육부는 지역과 대학이 ‘지역인재양성-취·창업-정주’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현하고, 지자체가 방대한 지역 현안의 해결을 위해 지역대학의 역량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역 중심’으로 대학지원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 핵심 전략의 두 축이 바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이다 <[그림 1] 참조.>.
[그림 1] “지역인재양성-취·창업-정주 지역발전 생태계 구축"
대학이 살리는 지역: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지난 2023년 2월, 대통령 주재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를 통해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이하 ‘RISE’)’의 도입이 발표되었다. RISE란 기존 중앙정부 중심의 하향식 대학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대학이 중심이 되어 지역의 특색과 발전전략, 대학의 강점 등을 고려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른 지원이 이루어지는 체계를 말한다. 2023년 7개 시도의 시범지역 선정을 필두로, 2024년 전 지역의 기반 조성을 거쳐 2025년부터 전국 17개 시도에서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대학은 지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핵심 중추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대학지원 수단은 지자체보다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2020년 기준 고등교육 예산 중 중앙정부 지원액은 14.8조 원에 달하나 지자체 지원액은 0.7조 원에 불과했다. 또 그동안의 대학재정지원사업들이 중앙부처가 일괄적으로 대학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대학은 다양한 자체 혁신을 시도하거나 지자체·지역사회 수요에 부응하기보다 각 사업에서 요구하는 역할 수행에 집중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와 함께 지자체는 대학을 단순 지원 대상으로 인식하고 소극적 지원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RISE 체계에서 교육부는 대학재정지원 권한을 지자체로 위임하고,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가 지역발전전략과 연계하여 지역대학 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된다. 교육부는 지역 수요 반영과 지자체 협력이 중요한 RIS(지역혁신), LINC3.0(산학협력), HiVE(전문직업교육), LiFE(평생교육) 등 기존사업을 통합하고, 지자체 주도 대학지원의 마중물이 될 2조 10억 원의 재원을 2025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25년 8월)하였다. 이와 동시에 RISE 체계를 활용해 지역 단위에서 다양한 정책적 시너지 효과를 도모할 수 있도록 산업부, 과기부, 중기부, 고용부 등 부처 간 연계·협업도 지속 확대하고 있다. 한편, 전국 17개 시도는 대학지원 전담부서 설치, 성과관리를 담당할 지역RISE센터 지정을 완료하였고, ‘시도별 RISE 5개년 계획’의 완성 작업에 몰두하며 RISE의 전국 시행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RISE 생태계에서는 각 지역의 특색과 강점을 살린 다양한 과제들이 추진될 것이다. 대학은 지역혁신의 허브로 거듭나 지역산업과 수요에 부응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지역은 대학이 배출하는 인재와 대학의 각종 인프라를 토대로 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2] 참조>.
[그림 2] 시도별 RISE 5개년 계획 대표과제(예시)
지역이 키우는 대학: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
RISE 생태계 속에서 지역과 대학의 혁신을 선도할 경쟁력 있는 지역대학 모델을 육성하는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도 2023년부터 추진되고 있다. ‘글로컬(Glocal)대학’이란 ‘담대한 혁신으로 지역(Local)의 산업·사회 연계 특화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Global)을 갖추고 혁신을 선도하는 대학’을 의미한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 내외부의 벽을 허물고 글로컬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학과 지역이 자유롭게 기획한 혁신 제안 중 30개 내외를 선별하여, 5년간 약 1,000억 원의 재정투자와 함께 규제특례 등을 집중 지원하고 그 성과를 확산하고자 추진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현재 대학의 평판이 아니라 과감하게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현 계획을 갖춘 대학에 정부가 투자(Public Venture Capital)하는 것이다. 대학과 지역이 자율적으로 혁신 비전과 이를 실현할 과제를 제안(Bottom-up)하고 정부는 그중 가장 혁신적이고 파급력이 높은 제안을 채택하여 지원한다. 또 다른 전략은 과감한 혁신 이행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적극적으로 혁파하는 것이다. 글로컬대학은 「지방대육성법」상 행·재정적 우대를 받을 수 있는 ‘특성화지방대학’으로 지정되고, 동법의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을 통해 한시적(4+2년)으로 규제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을 토대로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는 추진 첫해부터 고등교육 생태계 전반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프로젝트를 계기로 대학 사회 전반에 과감한 혁신 경쟁이 촉발되고, 다양한 대학혁신 전략들이 공유·확산하면서 질적으로 고도화된 대학혁신 모델 제안으로 이어졌다. 또 정부 방침이나 기존 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한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 대학들은 혁신 전략으로써 대학 간 통·연합, 대폭적인 학사구조 개편 및 정원 조정, 새로운 대학 역할모델 개발 등 그간 시도하기 어려웠던 과감한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현재(’24년 10월)까지 총 20개의 혁신모델을 글로컬대학으로 지정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23년 지정된 강원대-강릉원주대가 제안한 ‘캠퍼스 간 균형발전에 기초한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새로운 국립대학 통합 모델(1도 1국립대학)’은 타 권역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포항공대는 글로컬대학 지원금을 마중물로 학교법인, 지자체로부터 1.2조 원의 추가 투자를 확보하였고, 벤처·스타트업 지원을 통해 대학 교육에 재투자하는 지속 가능한 사립대학 재정 혁신모델을 실현하고 있다. ’24년에는 대학 간 연합 신청 유형이 도입되면서 대구보건대-광주보건대-대전보건대가 초광역 연합하여 보건의료산업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표준 모델로 거듭날 계획을 제시하여 글로컬대학으로 지정되었다. 이외에도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한 대학 특성화, 출연연 등과 연계를 통한 연구력 제고, 국제교류 활성화 등 다양한 혁신모델이 실현되고 있다.
“밀물은 모든 배를 뜨게 한다”는 말이 있다. 혁신 선도 집단으로서 글로컬대학의 도전 경험과 혁신 역량은 그 대학만의 성과로 머물지 않고, RISE 생태계에서 모든 대학과 지역이 활용할 혁신 자원으로 공유될 것이다. 글로컬대학의 성공과 지역-대학의 동반성장을 위해 교육부도 적극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그림 3] 2023~2024 선정된 글로컬대학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