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이달의 기사 전체보기

아트디렉터 갤러리 마노 정하미 대표 -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일, 아트디렉터의 필수 덕목이죠”

글 _ 편집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한국 미술시장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약 5,329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연간 규모는 9,157억 원. 올해 9월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세계적 규모의 미술 박람회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동시에 열리면서 올해 시장 규모는 1조 원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결과가 있기까지 각종 미술 전시회를 기획·총괄하는 담당 아트디렉터들이 흘린 땀과 열정이 함께 한다.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을 맞는 갤러리 마노의 정하미 대표를 만나 아트디렉터의 세계에 대해 들어보았다. 


기사 이미지

  “내가 보는 아름다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2018년에 상영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에 나오는 명대사다.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필사적으로 그림에 매달리던 빈센트 반 고흐. 그에게, 그림을 그려야 하는 연유를 묻자 들려준 대답이다. 갤러리 혹은 미술관에서 작가들과 벗 삼아 일해야 하는 아트디렉터에게도 누군가 묻는다면? 아마도 고흐의 대사처럼 이 같은 답변을 들려주지 않을까? ‘미술관의 아트디렉터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요? 작가가 창조해낸 멋진 세상을,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지요!’라고. 


  지난 9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 전시회 ‘키아프 서울(Kiaf SEOUL, 이하 키아프)’이 열렸다. 국내는 물론 세계의 미술애호가, 수집가들의 시선이 서울로 향했던 기간이다. 서울 강남구 소재 ‘갤러리 마노’도 해마다 이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 2003년 종로구 가회동에 문을 연 갤러리 마노는 정하미 대표가 직접 기획 및 총괄을 맡으며 연중 6∼7차례의 전시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마노(Mano)는 ‘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올 하반기에도 이곳 마노에서는 회화를 중심으로 섬유예술 영역의 새로운 작품 전시를 준비 중이다. 다음은 갤러리 마노 정하미 대표와의 일문일답.


먼저, 대표님의 아트디렉터로서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키아프가 끝나고 후속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품에 액자를 끼우고, 운송도 해야 하고요. 판매된 작품 중에서도 호수가 큰 대형작품은 제가 직접 구매

고객의 댁까지 찾아가서 설치를 돕곤 하지요. 작품을 거는 최적의 위치, 천장과의 간격 등 미술품을 설치할 때도 전문가로서의 섬세함이 필요하지요.


전시기획을 하실 때, 작가 선정은 어떻게 하세요?

  갤러리를 연 후 작가들과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어언 15년 정도 시간이 소요된 거 같아요. 소규모 갤러리인 마노로서는 ‘지속가능성 있는’ 작가와 일하는 걸 우선으로 합니다. 개관하면서 초기에는 실력 있는 신인 작가들과 주로 작업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유로 붓을 놓는 작가들도 존재했어요. 붓을 놓아야 하는 작가는 물론이고, 저로서도 아쉬움이 컸지요.

  저는 함께 작업할 작가를 정할 때, 데생 잘하는 작가를 선호합니다.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작가가 데생력이 좋거든요. 또 작가에게는 표현하고자 하는 작품의 주제도 중요해요.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저는 인성이 좋은 작가와 일하는 걸 좋아해요.



최근에는 나무와 숲을 주제로 작업한 김성국 작가와 함께하셨어요.

  전시회를 기획해야 하는 아트디렉터로서는 ‘작가 찾아 삼만리’라는 화두를 늘 과제처럼 품고 살아가죠(웃음). 그 일이 저로서는 또 재밌기도 하고요. 최근의 신예작가 중에서는 김성국 작가가 특히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죠. 김성국 작가는 이번 초대전 ‘The Trees’에서 나무와 나무가 관계를 맺으며 이루는 숲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다양한 관계 맺음’을 표현했지요. 김성국 작가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실력 있는 작가예요. 몇 해 전, 우여곡절을 겪으며 개인전을 저희와 함께 연 뒤, 다음 날 바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거든요. 영국에서 열심히 공부한 후 졸업 전시에서 현지 미술품 애호가들이 고가에 작품을 구매했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고 해요. 유학 떠나면서 공부하고 돌아오면, 마노에서 개인전을 꼭 다시 열겠다는 약속을 지켰죠. 


초기의 <백남준 드로잉전>도 화제가 되었어요.

  개인적으로 백남준 선생님 작품을 좋아하고, 소품으로 설치작품을 소장한 팬이기도 해요. 제가 소장했던 작품 등을 포함하여 협업으로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당시 꽤 주목을 받았어요. 개관 초기라 홍보가 덜 됐는데도, 좋은 전시를 기획했다면서 평단과 미디어로부터 주목을 받았죠. TV 방송에서도 소개가 됐고요. 


일반 대중, 특히 학생들은 현대미술 감상에 어려움을 느끼곤 해요.

  미술감상에도 공부가 필요해요. 거저 얻어지는 건 없죠. 참여작가에 대한 탐색, 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언지 알고 나면, 그림 감상이 훨씬 재밌어져요. 도록을 꼼꼼히 챙겨 읽는 것도 중요하고요. 아트페어 등에서 대개는 전시장 입구에 작품해설 공간이 있잖아요. 그 해설만 충실하게 읽어도 감상에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중요한 정보들을 그냥 지나치면서 흘려보내는 관람객이 의외로 많아요. 저는 그래서 어른들이 갤러리나 전시회를 찾을 때는 여럿이 가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혼자 조용히 다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무리 지어 다니다 보면 관람에 방해가 되거든요.

  그리고 편안한 관람을 위해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편안한 옷차림, 운동화 같은 편한 신발 착용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리나라도 이제는 미술관 등에서의 관람예절과 문화가 조금은 바뀔 때가 되었어요. 


내년이면 개관 20주년인데요. 갤러리 마노의 초기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처음 갤러리 문을 열고 2년여 동안은 고객들도 미술품 보는 눈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꾸준히 강좌를 열기도 했어요. 저 역시 마노를 열기 전부터 20년 가까이 그림 보러 미술관을 찾는 게 일상이었고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얻은 성과는 미술품 수집에 오롯이 재투자하곤 했어요. 가회동에 있을 때 갤러리의 첫 손님도 제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어요. 재미교포 부부셨는데 가회동에 살던 추억 때문에 우연히 갤러리에 들렀다가 100호짜리 두 점을 그 자리에서 구매하셨어요. 초기에는 연중 한 작품도 판매하지 못하던 전시회도 있었으니, 저로서는 참으로 감사했던 고객으로 각인되어 있죠.


작가들이 좀 더 나은 조건과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는 정하미 대표 작가들이 좀 더 나은 조건과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고 싶다는 정하미 대표


올해 남은 전시 일정과 대표님의 앞으로의 계획은요.

  마노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제 개인적인 목표는 더욱 명료해졌어요. 막 첫걸음을 떼는 신진 작가들을 계속해서 발굴하면서 마노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좀 더 관심을 두자고요. 전속작가는 아니지만, 마노와 함께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이후에는 좀 더 나은 조건과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할 계획이에요. 키아프와 화랑미술제 등 마노와 10년 동안 함께 한 최비오 작가의 경우 베니스비엔날레 초대전에도 참여하게 됐고, 대형 갤러리로부터 프러포즈도 받았죠. 함께 한 아트디렉터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는 일입니다.


  오는 10월 12일부터 29일까지는 섬유예술가인 차영순 작가의 회고전을 기획하고 있어요. 차영순 작가는 2004년에 첫 개인전을 이곳 마노에서 열었어요. 이번 기획전에서는 대학교수로서 활동하던 시절의 작품은 배제하고, 유학생 시절의 순수했던 초기 작품들로만 선보일 예정입니다. 또 11월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서양화가 이은주 작가의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끝으로 미래의 아트디렉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조언은요.

  우리나라 전체 미술시장 규모는 해마다 확대되고 있어요. 요즘에는 MZ세대도 투자 개념으로 미술품 수집에 관심이 많고요. 마노와 같은 소규모 갤러리부터 대형갤러리, 미술관, 박물관 등 아트디렉터의 수요도 더불어 늘어날 전망입니다. 또 아트디렉터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는 꼭 자신만의 스타일, 영역을 만들어가라고 권하고 싶어요. 여기에 덧붙이자면, 전시를 기획하고, 총괄하는 사람인 만큼 다양한 경험, 현재의 미술 경향을 꿰뚫는 안목, 프로젝트 팀원을 통솔하고 아우를 수 있는 소통능력은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지요. 


===============

TIP BOX | 미술 전시기획 아트디렉터가 되려면...

  갤러리에서 전시기획을 담당하는 아트디렉터가 되고 싶다면 미술 영역 전공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영어와 불어 등 언어학 전공자들의 진입도 늘어나고 있다. 영미권과 프랑스 등 해외 작가, 갤러리들과의 협업이 늘어나면서다. 대형 미술관과 박물관 학예실 등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의 경우 해외 유학경험자, 혹은 석·박사급 이상 필수적인 자격요건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열람하신 정보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