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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것도 쾌사(快事)라!

글 _ 이주해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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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잘 안 들리나 듣기 싫은 세상 소리로부터 멀어져 좋고, 

눈이 나빠졌으나 이제 그 핑계로 골치 아픈 공부를 게을리할 수 있어 좋다.기사 이미지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려 우탁, 『백발가』)

  지름길로 찾아온 노년. 늙는다는 것은 생의 한 단계라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 단계만큼 힘겹게 넘어가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고개’ 아니던가. 넘고 나면 필경 보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풍요로운 노년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늘 ‘노후대책’을 이야기한다. ‘대책’ 운운하다 보니 챙겨야 할 것이 여간 많지 않은데, 크게 정리해 보면 건강과 돈으로 귀결된다. 맞는 이야기이다. 건강해야 질 높은 노년을 보낼 수 있고, 돈이 있어야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을 다 챙겼다 해도 늙어가면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 그건 아마도 ‘잃어가는 것’에 대한 서글픔 때문일 것이다. “부귀는 본디 내 가지지 못했으니 그것이 나를 찾아오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청춘은 본디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인데 왜 그것마저 사라지고 없는가?” 청나라 사람 김성탄(金聖嘆)이 내뱉은 장탄식이다. 본래 내 것이었던 청춘이 날 버리고 떠나가 버린 허전함. 하나가 떠나가면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하는데, 건강으로도 돈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묘책이 과연 있을까? 만약 있다면, 젊은 시절에 가지지 못했던 ‘지혜’와 ‘성숙’이 아닐까. 지혜롭고 성숙한 노년은 나를 편안히 하고, 남을 힘들게 만들지 않는다. 내 스스로 삶을 버거워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혜롭고 성숙한 노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혜롭고 성숙한 노년을 위한 준비

  첫째는 “끊임없는 배우기”이다. 춘추전국시대 사람인 사광(師曠)은 “젊어서 공부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고, 늙어서 공부하는 것은 밤에 촛불을 켜놓은 것과 같다. 젊어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야 없겠지만, 늙은 후에 공부해도 늦지 않다. 촛불을 밝히면 어둠은 사라지니, 계속 비춘다면 밝음을 이어갈 수 있다. 해와 초가 다르기는 하나 밝기는 마찬가지이며, 밝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맛은 더욱 진실되다.”라고 하였다. 배우는 즐거움을 익히 아는 나이이기에, 노년의 배움은 삶을 더욱 즐겁게 해줄 것이다. 


  둘째는 “항상 조심하기”이다. 젊어서 실수는 만회할 시간이 있지만, 늙어서의 실수는 만회할 시간이 적다. 그러므로 내 삶을 온전히 향유하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 “군자는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여색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에는 혈기가 왕성하니 싸움을 경계해야 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쇠잔했으니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논어・계씨』) 늙어서 경계해야 할 것 중 가장 큰 것으로 공자는 ‘욕심’을 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노인이 되어도 혈기가 왕성한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앞에서 이야기한 것을 포함하여 모두 경계하는 편이 낫다. 


셋째는 “잔소리 줄이고 인정해 주기”이다. 사람에게는 “인정 욕구”가 있어서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공치사”도 그 인정 욕구 중 하나이다. 이 인정 투쟁의 험난한 장(場)에서 남의 인정 욕구를 무시하고 나의 인정 욕구만을 강조한다면 부딪히고 또 부딪힐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하였으니, 이 말을 거꾸로 해보면 내가 받고 싶은 것은 남에게 먼저 해주라는 말이 된다. 내가 인정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인정하는 것은 순리이다. 특히 어른 대접을 받기 위해 후배들에게 곧잘 훈계를 하게 되는데, 후배에게 그 말이 들어갈 리 만무하다. 더구나 이만큼 살면서 알게 된 진리 중의 하나가 사람은 남의 말로 인해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는 사실 아니던가. 잔소리를 줄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선 사람 윤기(尹愭)는 이렇게 말했다. “고인들이 자손을 훈계한 글을 자손들이 지키는 것만 보고, 말을 안 했다면 몰라도 했다면 어떻게 내 말을 안 들으랴 여겼다. 그래서 수시로 경계의 뜻을 실어 스스로 깨닫게 하면서, 때론 비유를 들어 감동시키고 때론 절절한 말로써 격동시키며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랐다. 아, 어찌 알았으랴! 지금 세상이 옛날과 사뭇 다르고 풍습이 점차 변하여, 훈계를 펼칠 도리도 없고 따를 사람도 없어서 그저 시끄러운 잔소리에 불과할 줄을.”(『정고, 가금, 권학, 유계 등을 뒤에 쓰다(書庭誥家禁勸學遺戒等文後)』)



풍요로운 노년을 이끄는 역발상

  이렇듯 삶의 지혜를 하나씩 터득하고 실천해가다 보면 어느새 풍요로운 노년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은 <늙는 것도 쾌사(老人一快事)>라는 시를 여섯 수나 지어서 늙음이 가져다주는 뜻밖의 선물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대머리가 되었으나 본디 군더더기인 머리칼을 버리고 나니 시원하여 좋고, 이가 빠져버렸으나 이제 치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좋고, 귀가 잘 안 들리나 듣기 싫은 세상 소리로부터 멀어져 좋고, 눈이 나빠졌으나 이제 그 핑계로 골치 아픈 공부를 게을리할 수 있어 좋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유쾌한 역발상인가! 젊어서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소중히 사색해보는 시간을 종종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는 말이 『맹자』에 나온다. 물은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후에 흘러넘쳐 다음 단계로 간다는 뜻이다. 본디 점진적인 배움을 말하려 한 것이지만, 달리 해석해보면 산다는 것도 이러하다. 구덩이를 다 채웠으면, 그 구덩이를 다음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떠나야 한다. 이 또한 순리이다. 순리대로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 삶의 진리 속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 우리가 노년에 진정으로 배워야 할 지혜가 아닌가 싶다.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승상 노릇을 하며 세상의 부귀영화를 다 맛본 뒤 최후에 요참(腰斬)에 처해지고 만 비운의 천재 이사(李斯)는 자신의 부귀가 정점이던 때에 “말에서 내려오는 법을 모르겠다.”라며 길게 탄식하였다. 읽는 이의 입에서도 탄식이 나온다. 제때 말에서 내려왔더라면 그의 최후는 달라졌을 터이거늘. 누구에게나 말에서 내려와야 할 때는 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고서 흔연히 내려올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노년에 기쁘게 수행해야 할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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