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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DMZ와 나란히 걷다


글_ 강지영 명예기자(수필가),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종이를 반으로 접는다. 사선으로 양 귀를 맞추고 거기서 다시 한번 더 접는다. 삼각형의 날개를 펴두고 아랫부분을 잡는다. 그렇게 완성된 하얀 비행기로 여름 하늘을 수놓아 본다. 종이비행기는 얼마 가지 못해 바닥에 떨어진다. 줍고 날리기를 반복하며 이 비행기가 갈 수 없는 먼 땅을 그려본다. 이글거리는 8월의 태양은 북쪽을 가리키고 있다. 여장을 챙긴다. 절정에 이른 여름, 평화와 방어가 한뜻으로 분류되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 나라에서 가 볼 수 있는 북에 가장 가까운 땅으로 간다.





백마고지 전적지, 여정의 시작


  남한 끝 어딘가에 철조망으로 덮여 있는 지역이 있다. 인적 드문 이 공간을 기준으로 남쪽은 한국이, 북쪽은 북한이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따라 DMZ는 병력과 군사시설을 둘 수 없는 곳으로 지정되었다. 육상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2km에 달하는 구역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임진강 하구에서 고성군 명호리까지 총 248km에 이르는 지역을 DMZ로 분류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경계지대인 만큼 DMZ는 첨예한 군사적 갈등과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육십여 년에 이르도록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 자연의 보고이기도 하다. 평화유지와 안보를 이유로 민간에 개방된 적이 없었던 이곳이 2018년, 남북 정상 간 합의와 부속 합의 등을 계기로 ‘평화의 길’이 되어 열리게 되었다. 이에 감시초소 철거, 유해 발굴 등의 작업이 한창인 고성, 철원, 파주의 세 지역에서는 북한 땅을 볼 수 있는 ‘DMZ 평화의 길’을 열어둔 채 여객 맞이에 한창이다.

  백마고지 전적지에서 출발해 백마고지 전망대, 공작새 능선 전망대, 통문을 거쳐 비상주 GP에 이르는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철원으로 간다. 집결지는 백마고지 전적지다. 이곳은 백마고지 전투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만든 곳이다. 1952년 10월, 해발 395m에 불과한 고지 점령을 위한 열흘간의 사투가 있었고 말을 닮은 이 땅은 24회나 주인이 바뀌는 참상을 겪은 후에야 남한 땅이 될 수 있었다.

  백마고지 전투를 그려놓은 기념관에 이르러 세상에서 가장 서글프고 아린 조형물을 마주한다. 벽 한쪽을 채운 거대한 부조(浮彫)를 전장의 탄피로 만들었다니. 탄피가 앗아갔을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억장이 무너져 내릴 듯 가슴이 아려온다. 먹먹함을 머금은 채 기도하는 손을 형상해 놓은 백마고지 전적비를 지나온다. 발길은 자유의 종에 이르러 있다. 종소리는 울리지 않고 멀리 백마고지는 눈물 어린 애상한 눈으로 길손을 내려다보고 있다.


[기도하는 손을 형상해 놓은 백마고지 전적비]



DMZ를 따라 걷는 길


  진입 금지 차단 줄을 걷고 병사들을 뒤따라 DMZ로 들어선다. 논길을 관통해 저쪽에서 넘어다보기만 했던 ‘통일아, 평화야, 철원아’ 조형물을 지나온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상주할 수 없는 농지, 전차방지 방벽이 서글프게 늘어서 있는 땅, 아물지 않은 상처에 아직 새살이 돋아나지 않은 곳. 해설사의 설명이 더해질 때마다 가슴이 갑갑해지고 손가락이 저려오는 것은 이 땅에 대한 내 무관심 때문이리라. 휴대전화를 내려두고 남방한계선을 따라 길동무들과 함께 걷는다. 눈이 따가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 길손을 감싸 안는다. 어디서도 만난 적 없는 말간 녹음이 손끝으로, 발끝으로 번져온다. 투명한 혈액이 나를 쓸고 간 듯 훼손되지 않은 맑음이 온몸을 관통한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거늘, 인간의 역사가 철조망이라는 비극의 상징물로 시간과 대지를 갈라놓았다는 생각 때문일까. 청정 무공해의 멋들어진 자연 풍광이 서글프게만 느껴진다.

  참조팝나무, 백일홍, 노루오줌 등 색색의 꽃들이 피고 진 만큼 세월은 흘러 있다. 날이 더운지도 모른 채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묵묵히 걷는다. 그것이 지금 이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인 듯,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듯 길벗들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 길을 간다. 등이 촉촉해져 오고 이마에 맺힌 땀이 목을 타고 흐를 즈음, 공작새 능선 조망대에 도착한다. 땅 모양을 빗대어 이름 붙였다는 공작새 능선과 화살머리고지에 대한 설명을 귀동냥하며 포토라인에 선다. 풍경만 찍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포토라인 앞에 서서 양손을 모아본다. 자연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일 수 없는 뼈아픈 역사는 이 땅에 사는 모두가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DMZ를 가슴에 담는다.


[안내해설사의 설명에 따라 DMZ 투어가 이뤄진다.]


[공작새 능선 조망대에서 바라보는 DMZ]


비상주 GP에서 북한을 바라보다

  통문을 지나오는 길, 유해발굴단을 본다. 국군 전사자 200여 구와 유엔군 전사자 300여 구의 유해가 묻혀있다는 화살머리고지. 발굴단이 온 마음을 다해 전사자들을 찾아주기를 염원하며 줄줄이 이어지는 차를 뒤로하고 비상주 GP로 향한다. 굽은 길을 달려 도착한 곳, 총알로 벌집이 된 철모와 수통을 만난다. 그 군모를 쓰고 수통을 지녔을 군인의 모습이 눈앞을 지나간다. 울음을 삼키듯 나도 모르게 눈을 내리감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 나라 역사에 지나치게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분단의 현실을 외면하고 살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나를 지나간다.

  일행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초소를 지키고 선 무장 헌병과 펄럭이는 한국 국기와 유엔기가 눈에 들어온다. 철망으로 가로막힌 감시초소 위의 하늘은 더없이 드넓다.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을 잊지 못해 한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는 프랑스 군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한이 보이는 철망으로 향한다. 저 너머에 북한이 있다. 철조망만 아니라면, 해설사의 설명이 없다면 숲이 우거진 땅에 불과했을 땅의 이름, 북한을 무감각하게 읊조려본다. 눈앞에 두고도 왜 저곳에 가볼 수 없냐며 울먹이는 참전 군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전쟁 세대가 아닌 나는 그 그리움이 어떠한지, 통일을 염원하는 절박함이 무엇인지 그들만큼 절절하게 알지는 못한다. 60년이 넘게 부유하는 땅으로 남겨진 이곳에 발을 디뎌보며 실감한 유일한 한 가지는, 전쟁의 흔적이 뼈아픈 시림으로 이 땅 곳곳에 깃들어 있고 그 아픔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철조망에 찔린 듯 따끔거리는 가슴을 문지르며 비상주 GP를 벗어난다. 내 키보다 훨씬 더 자라있는 싱그러운 풀잎처럼 이 땅의 상처에도 새살이 돋을 날을 그리며 DMZ와의 짧고도 긴 동행을 가슴에 머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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