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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바다 동쪽 땅 끝에 서서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다

글_ 양지선 기자, 사진_ 김경수 포토그래퍼

접안지에서 바라본 독도

  서울에서 묵호항까지 차로 3시간, 다시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 배로 3시간. 편도로 6시간의 여정을 거쳐야 닿는 울릉도는 쉽게 마음먹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 끝에 마주하게 되는 천혜의 비경을 바라보면 그 기다림은 마치 선물을 받기 전의 설렘처럼 다가온다.

  따사로운 햇볕과 선선한 바람 덕분에 여행하기 딱 좋은 봄날, 울릉도로 떠난다.

  육지에서 울릉도로 떠나는 항구는 강릉, 묵호, 포항, 후포 총 4곳이다. 그중 묵호항에서 울릉도로 떠나는 배는 보통 하루 두 번. 성수기나 주말이 아니어서 한산한 여정이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묵호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니 알록달록한 옷을 차려입은 관광객과 부대로 복귀하는 해군들로 가득 차 의외로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남은 자리 하나 없이 매진이니 평일에도 예매는 필수다.

  배에 오르기 전 멀미약도 먹으며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봄날의 동해는 거친 파도 없이 순순히 울릉도 사동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본래 울릉도의 문호 역할을 하는 곳은 도동항과 저동항이지만 관광객과 화물량이 늘어나면서 사동항도 새로운 관문으로서 울릉도 여행의 출발지가 됐다. 사동항에 내려 섬을 시계 방향으로 돌며 일주하는 코스로 울릉도와의 첫 만남을 시작한다.

일주도로 따라 울릉도 북서쪽 끝 태하로

  지난해 12월 28일, 총 44.55㎞에 이르는 울릉도 일주도로가 55년 만에 완공됐다. 오랜 시간 막혀있던 저동에서 천부 사이 4.75km 구간이 지난 3월 말 개통돼 울릉도 여행이 훨씬 편리해졌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눈에 보이는 풍경 곳곳이 관광지다. 통구미 마을을 수호하는 거북바위, 신라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 전설이 담긴 사자바위를 지나 차로 20여 분 달리면 어느새 울릉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태하에 도착한다. 유채꽃이 아름답게 핀 태하마을에는 산과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관광 모노레일과 우리나라 10대 비경이라 꼽히는 대풍감 해안절벽, 울릉도 개척역사를 담은 수토역사전시관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태하해안산책로도 빠질 수 없다. 해안산책로에 이르기 위해 올라야 하는 경관 교량은 지난해 4월 신축됐다. 계단 없이 지그재그 형태의 슬로프로 만들어져 노약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한눈에 보이는 탁 트인 전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산책로를 따라가며 만나는 매바위와 한때 물개가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진 가재굴은 살아있는 지질학 교과서나 마찬가지다. 바람과 파도가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냈을 작품일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울릉도 내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

  태하에서 다시 차를 타고 30여 분 달려 울릉도 북면에 위치한 나리분지로 향한다. 제법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해발 500m에 위치한 울릉도 내 유일한 평지가 펼쳐진다. 외륜산이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나리분지는 노랗고 푸른 밭이 펼쳐져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남쪽 뒤편으로 보이는 울릉도 최고봉 성인봉에는 여전히 하얀 눈이 녹지 않아 이색적이다. 옛날 선조들의 터전이기도 했던 나리분지에는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바로 너와 투막집과 억새 투막집이다. 울릉도의 재래 집은 일자형으로 방들이 이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너와 지붕에 얹힌 수많은 돌과 집 주위에 둘린 우데기를 통해 바람과 비, 폭설로부터 집을 지키려 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울릉도 나리분지


걸어서 탐방하는 섬 속의 섬, 관음도

  산길을 다시 내려가 해안도로를 따라 차로 30분간 이동하면 울릉도의 북동쪽에 있는 관음도에 다다른다. 독도, 죽도에 이어 울릉도의 부속 섬 중 세 번째로 큰 관음도는 원시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난 2012년에는 울릉도와 연결되는 보행교가 놓여 걸어서 탐방할 수 있게 됐다. 파란색 다리를 건너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갈매기 떼가 환영 인사를 보내오는데, 신기하게도 관음도에서 들어서면 이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오르고 섬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탐방로를 따라 관음도의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곧이어 깎아지른 현무암 절벽 위 조용한 억새 숲이 펼쳐지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햇빛을 받은 노란 억새에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새파란 하늘과 그보다 조금 더 짙은 퍼런 물결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눈이 즐겁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동쪽으로는 죽도, 서쪽으로는 삼선암도 볼 수 있다.

관음도


도동에서 만나는 독도박물관과 행남해안산책로

  관음도에서 나와 울릉도의 중심지 도동으로 향하는 길을 달릴 때 일주도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전에는 차로
1시간여 걸렸지만, 새롭게 뚫린 도로를 통해 15분 만에 도착하기 때문. 도동은 울릉도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답게 볼거리 역시 풍부하다. 독도박물관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역사적 자료와 유물을 모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독도뿐 아니라 울릉도 주민들의 옛 생활상을 담은 독립영화와 울릉도의 근현대사를 볼 수 있는 대한뉴스 등 영상들도 재미있는 요소다.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독도 전망대는 함께 구경하기 좋은 코스다.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을 향해 삐쭉 솟은 산봉우리들과 그 속을 채운 갖가지의 초록색, 그 아래 울릉도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도동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운이 좋으면 독도도 보인다고 하는데, 직접 가서 보겠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저 너머의 독도를 상상해본다.

  도동에서 저동 촛대바위까지 이어지는 행남해안산책로도 울릉도에 방문했다면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꼽힌다. 총 2.6km의 산책로를 따라 만나는 천연 동굴과 골짜기를 연결하는 교량 사이로 펼쳐지는 에메랄드빛 바다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걷는 걸음걸음마다 카메라를 들게 되지만 눈으로 봤을 때의 감동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탄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끝나버린 산책로를 발견하게 된다.

독도박물관

행남해안산책로

동해 끝 우리 땅, 독도를 밟다

  울릉도에 온 이상 독도를 방문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독도는 편도로 1시간 30여 분이 걸린다. 입도하려는 바로 전날에도 파도가 높아 배가 아예 뜨지 못했다고 하니, 독도는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구나 싶다. 현지 주민의 말을 빌리면 ‘조상님이 덕을 많이 쌓아야’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라고. 다행히 날씨도 맑고 파도도 잔잔해 독도 접안이 가능했다. 조상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독도에 첫발을 내디딘다. 여객선터미널에서 판매하던 태극기를 그냥 지나쳤던 것이 조금 후회되지만, 마음속으로나마 태극기를 힘차게 휘날려본다.

  독도에 방문한 관광객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단 30분. 그것도 접안지에서만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지만, 역사 왜곡과 영토 분쟁의 현장에 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개무량하다. 특히 독도를 지키고 있는 경비대의 늠름한 모습을 보면 독도가 엄연히 우리 땅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독도가 본래 돌섬에서 유래됐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동도와 서도라 하는 두 개의 커다란 바위섬과 중간의 작은 바위들로 이뤄진 이곳은 460만 년 전 해저 용암이 분출돼 식으면서 만들어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절경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약속된 30분이 지나 승선을 알리는 배의 경적이 들린다. 우리나라 동해 끝에 외롭게 서 있는 독도가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모습을 눈에 담은 채 다시 뭍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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