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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팬덤문화

청소년 팬덤문화

 

글│김서규 경기 유신고등학교 교사

 

  어른들은 팬덤(fandom)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것이다. 광신자라는 패내틱(fanatic) 혹은 팬(fan)이라는 영어단어에 영토를 뜻하는 돔(dom)이 합쳐져서, 아이돌 스타 같은 인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을 팬덤, 그런 흐름을 팬덤현상 혹은 팬덤문화라 한다. 코미디언 안어벙 씨가 잘 쓰는 말대로라면 적당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특정 스타에게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70년대 남진과 나훈아가 가요열풍을 일으킬 때 열성적인 팬 때문에 시작되다가 70∼80년대 조용필이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면서 본격화 되었고, 1990년대 서태지가 ‘난 알아요!’ 라는 노래를 불러서 ‘모차르트가 한국에 다시 태어난 것 같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올랐을 때 제대로 된 팬덤이 생겼다. 조용필의 오빠부대는 괴성(?)을 지르면서 손 플랜카드나 브로마이드를 흔드는 수준이었지만, 서태지의 팬들은 의상, 소품, 스타일, 정신적인 부분까지 따라하면서 스타의 생활양식을 자기 것으로 동일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형기획사와 아이돌 스타, 청소년들 간의 화학적 결합
  하기야 1990년대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세월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평을 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청소년들은 지독한 입시부담 때문에 역사상 가장 숨 가쁘고 출구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뉴키즈온더블록이라는 미국의 아이돌 팀이 내한공연을 왔을 때 단번에 16,000명의 청소년들이 몰렸고, 그 와중에 1명이 압사하고 수십 명이 부상 당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도 그 무렵, 그러니까 1992년이었다.
  그 후 연예기획사들이 속속 생기면서 조직적으로 세련되고 훈련된 아이돌 스타들이 청소년 앞에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에 HOT, 젝스키스, 신화, GOD가, 그리고 2000년 이후 빅뱅,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비스트(뷰티), 핑클, 소녀시대, SS501가, 최근에 나타난 엑소(EXO)가 바로 그들이다.

청소년 팬덤문화는 조직적이고 상업적이고 대중문화와 공연에 대한 기획노하우를 갖춘 대형기획사들과 7∼8년 동안 마치 입시공부를 하듯 필사적으로 기량을 갈고 닦는 한국 청소년 특유의 근성을 보여주는 아이돌 스타들과, 자신들의 바람과 외침과 오락을 담아낼 문화를 갈망하던 청소년들 간의 화학적 결합 때문이다.


  마치 영국에서 십대 비틀즈가 나타나서 예스터데이와 렛잇비를 부를 때, 영국 청소년들이 울고 흐느끼며 자기들의 노래요 분신이라고 받아들였듯, 어른들이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중심으로 팬덤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왜 그럴까?
  조직적이고 상업적이고 대중문화와 공연에 대한 기획노하우를 갖춘 대형기획사들과 7∼8년 동안 마치 입시공부를 하듯 필사적으로 기량을 갈고 닦는 한국 청소년 특유의 근성을 보여주는 아이돌 스타들과, 자신들의 바람과 외침과 오락을 담아낼 문화를 갈망하던 청소년들 간의 화학적 결합 때문이리라.

 

 

억눌린 감정의 합리적 표출 vs 맹목적인 아이돌 추종
  좋은 점도 있다. 팬덤에 출입하면서 청소년문화를 누릴 수 있고, 억눌린 감정을 합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아이돌 스타들의 글로벌한 활약에 눈을 세계로 돌릴 수 있고, 건강하고 열정적인 감정표현을 바탕으로 밝은 성격을 기르고, 놀 때 놀고 공부할 때 공부하는 시간활용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조용필의 팬클럽 ‘이터널리’는 자료관을 운영하면서 공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하지원의 ‘스마일 어게인’은 결식아동을 위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김장훈은 팬덤과 태안봉사활동을 여러 차례 갔고, 장동건의 ‘아도니스’는 봉사활동 단체로 활동 중이고, 신화의 팬들은 강남구에 조성된 ‘신화숲’을, 투에니원은 아프리카 남수단에 ‘2NE1숲’을 조성하는 등, 문화와 사회기여를 엮어내기도 한다.
  나쁜 점도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잘못을 무조건 옹호하고, 팬덤들 간 배타적인 응원도구나 복장을 하고 서로 트집을 잡아서 싸우고, 그러느라 자신이 할 일을 소홀히 하고 마치 광신집단에 매달리듯 자아를 잃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팬 미팅, 공연, 조공(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에게 팬덤들이 돈을 모아서 고가의 선물을 하는 것)이 나온다. 특히 인터넷과 교통 그리고 공연문화의 발달로 멀리서만 보던 스타들을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늘다보니 팬들이 스타들을 체험하고픈 욕구가 커져서 스토킹, 집착, 경호원과 기획사를 제치고 팬덤이 스타를 좌지우지하는 현상도 생겼다. 또는 거꾸로 기획사나 중요임원들이 권력을 가지고 팬들을 좌우하는 일도 발생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학교와 교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거의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아니, 잘 모르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태지를 동경하며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어 자기 자녀들에게 팬덤문화를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된 이상 팬덤현상이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위에서 말한 팬덤문화의 좋은 점은 권장하고, 나쁜 점은 억제하여야 하지 않을까? 컴퓨터가 처음 나오던 90년대에 게임중독도 문화인 줄 알고 방치하다가 자녀를 엇나가게 한 쓰디쓴 경험을 이번에도 되풀이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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