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허경호 대구 동촌중학교 교사

장애 딛고 음악으로 소통 ‘대일밴드’로 희망을 노래하다


글_ 김혜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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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촌중학교 허경호 교사, 그는 일찌감치 음악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소통을 준비하고, 또 꿈꾸었다. 밴드부를 결성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고, 무대 위 공연에서는 직접 학생들과 함께 기타리스트로도 활약한다. 친구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감싸주자고 노래하는 아이들의 음악 밴드, 이름하여 ‘대일밴드’다.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대구 동촌중학교(교장 김선희) 본관 3층 공용교실에서 밴드연주와 함께 힘찬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열흘 남짓 앞둔 3학년 학생들의 졸업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다. 공연 날짜가 임박하면서 일주일에 3일, 오후 7시까지 학교에 남아 맹연습 중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직접 지었다는 밴드 이름은 ‘대일밴드’. 음악을 통해 친구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감싸주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대일밴드’는 영어교과목을 담당하는 허경호 교사(40)가 지도를 맡고 있다. 이전까지는 기간제 교사였다가 3년 전 정교사 발령을 받으면서 동촌중에 부임한 허 교사는 시각장애인이다. 공용교실 바로 옆, 영어전용실에서는 허 교사의 눈이 대신 되어주는 안내견 ‘해냄’이가 늘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밴드 결성은 허 교사의 기타 연주실력이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계기가 됐다. 그의 영어 수업시간, 허 교사는 직접 가사를 붙인 ‘인칭대명사 송’ 등을 기타연주와 함께 들려주며 학생들의 흥미와 수업효율을 높이곤 한다. 그렇다 보니 종종 점심시간이면 “선생님, 노래 한 곡만 들려주세요!”라며 그를 찾아와 노래신청을 하는 학생들도 생겨나곤 했다. ‘아이들과 함께 밴드를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그의 오랜 꿈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후 동촌중학교에서 기타 잘 치는 친구, 드럼 좀 두드릴 줄 아는 친구 등등. 밴드 결성 소식이 학교에 퍼지면서 숨겨놓은 재능을 발휘할 학생들이 하나둘씩 허 교사를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교사와 음악 활동, 두 개의 꿈을 이루다!

  “학창시절 저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었죠. 첫 번째는 교사가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 꿈은 바로 음악으로 무대에 한 번 서보는 것이었어요. 저의 청년 시절의 꿈들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이룰 수 있었던 2019년은 저로서는 무척이나 의미 있고, 행복한 한 해였어요.”

  아이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없으니, 음악으로 그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면서 소리로 소통하자, 그런 생각을 늘 품어왔다는 허경호 교사.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기타와 드럼을 배우면서 그 꿈이 실현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었다. 그런데 2006년부터 기간제 교사로 일한 학교에서는 그 꿈들을 한동안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특수학교이다 보니 시각장애 외에도 복합장애를 겪는 학생들이 많았던 까닭에서였다. 그러다가 허 교사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바로 2019년 9월, 동촌중학교에 김선희 교장이 새로 부임하면서다.

  “부임하자마자 혹시라도 근무하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허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됐죠. 이제까지 장애를 극복해 오신 이야기들을 학생들과 어떻게 교감하면서 나눌 수 있을까? 그런 주제의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었고요. 그 자리에서 저 또한 허 선생님께서 간직해 오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단박에 눈치챌 수가 있었지요.”

  김선희 교장은 바로 넉 달여 전, ‘대일밴드’ 탄생에 얽힌 일화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중학교 남자아이들의 경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게 마련인데, 음악을 매개로 자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면서 교내에서의 밴드 활동은 학교 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곤 한다.”면서 김 교장은 그 순기능에 대해 전했다.


  밴드 창단 당시의 악기와 장비들은 모두 허 교사가 사용하던 것이거나, 사재로 산 개인물품들로 채워졌다. 그 뒤 젬베와 드럼, 새로운 음향장치 등 몇몇 악기와 장비들이 학교의 지원으로 추가될 수 있었다. 김 교장은 “2020년에는 밴드부원들이 꿈을 키워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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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교사가 지도하는 밴드 ‘대일밴드’. 허 교사의 기타 연주실력이 학생들 사이에 서 입소문이 난 것이 밴드 결성의 계기가 됐다. ]


‘대일밴드 OB팀’이라는 즐거운 상상

  대일밴드’의 첫 공연은 지난해 10월 11일, 학교축제 ‘동호제’에서 이뤄졌다. <여행을 떠나요>, <산다는 건>, <나는 나비> 등 선생님과 전교생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일밴드’는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8명의 밴드부원 중 3학년 3명은 예고에 진학을 앞두고 있다. 특히 드럼을 연주한 손성민 학생은 일찌감치 대학 진로를 예술대학으로 결정, 세상을 아름다운 소리로 물들이는 드러머를 꿈꾸고 있다. 성민 학생은 “첫 공연을 하면서 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고, 친구들로부터 멋졌다는 말을 들을 땐 정말 좋았다.”라면서 첫 공연 때의 감동 어린 소감을 들려줬다. 베이스기타를  연주한 신민석 학생은 “중학교 시절의 잊지 못할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다.”라고도 했다. 또 메인보컬을 담당한 박선영 학생(2학년)은 “<산다는 건>을 부를 때 고음 부분에서 소리가 갈라지면서 음이탈을 하는 바람에 개인적으로는 흑역사(?)를 갖게 되었다.”라면서 당황스러웠던 당시를 귀띔했다. 선영 학생은 “이번 선배들의 졸업 공연에서는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잘 부를 것”이라면서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 복장을 한 교장선생님의 든든한 지원 아래 밴드부원들은 길거리 버스킹에도 참여했다. 또 앞으로 지역사회에서 음악을 통한 위로가 필요한 무대가 있으면 찾아가 공연한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번에 드럼, 기타, 키보드 등의 학생들이 모두 졸업을 합니다. 제가 1년만 더 밴드에 남아주면 안 되겠냐고 농담을 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이에요. 현재는 1∼2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2기로 활동할 멤버들을 모집하고, 오디션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어렵사리 탄생한 밴드부이니만큼 허 교사의 꿈은 ‘대일밴드’의 명맥을 오랫동안 잇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 그 자신도 중학생 시절부터 헤비메탈과 록,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을 사 모으고, 그들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위로를  받곤 했었다는 허경호 교사. 음악 활동과 관련한 그의 꿈은 현재 먼 미래로까지 나래를 펴는 중이다. 이곳 동촌중을 떠나더라도 이 사랑스러운 졸업생들과 함께 연주하는 꿈을 이어가고 싶은 것이다. 이를테면 ‘대일밴드 OB팀’의 신나는 공연장면을 상상해 보는 즐거움 같은 것. 요즈음 허경호 교사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의 즐거운 상상 중 한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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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학교축제 ‘동호제’에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선보인 ‘대일밴드’ ]


소리를 매개로 나누는 제자들과의 소통

  “밴드부를 지도하면서 저로서도 장애를 이겨내고 학생들과 함께 공연까지 해냈다는 만족감과 자신감을 얻은 건 무엇보다 큰 수확입니다. 교사의 본업인 수업 외적으로도 아이들과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매개로 더 큰 감동을 나눌 수 있었다는 성취감도 컸고요.”

  태어나면서 시신경이 손상되어 5살 때부터 완전히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는 허경호 교사. 이후 35년 동안 겪어온 장애는 아직도 그로서는 완벽하게 적응이 된 건 아니라고 들려준다. 다만 스스로 겪어왔고, 앞으로도 감내해야 할 장애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이제껏 해온 활동들을 중단없이 계속해 나갈 계획이란다.

  “세상에는 장애로 불편을 겪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 존재합니다. 현재 이 시간에도 온갖 유형의 중도장애를 입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요. 그러한 장애인들이 제가 걸어가는 이 길을 지켜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육계에서도 장애인 교사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서둘러 개선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고요.”

  장애인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희망이 있는 프로젝트들을 계속 꿈꾸고 있다는 허경호 교사. 교직 사회에서도 장애인 교사들이 업무수행에 지장만 초래하지 않는다면, 차별 없이 자연스러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린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