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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위해 인간적인 5·18을 이야기해요”

『5월 18일, 맑음』 저자, 임광호 광주 첨단고등학교 교사

삶과 교육
글_ 한주희 기자

임광호 교사는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청소년 도서를 출간했다.

“5·18 민주화 운동은 잔인했지만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현직 교사가 청소년을 위한 5·18 민주화 운동을 책으로 펴냈다. 『5월 18일, 맑음』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동안 펼쳐진 항쟁, 그리고 그날의 죽음을 기억하며 더 맑은 세상을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4명의 교사가
공동 집필하며 어려운 한자말이나 개념들을 입말체로 쉽게 풀어 쓴 점이 돋보인다. 책임 저자인 임광호 광주 첨단고 역사
교사는 “역사 왜곡, 폄훼, 비방 등에 휘둘리지 않고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됐다.”라고 말한다.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은 5·18을 폭력적인 장면으로만 기억하더군요.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바로 그 모습이지요.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는지, 어떤 삶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지를 보여줬어요. 5·18의 아름답고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하면서, 아이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길 바라지요.”

  유난히도 맑았던 5월 18일의 아침. 그날의 항쟁이 긴 역사 속에서 결국은 승리했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도 ‘5월 18일, 맑음’으로 정했다고 했다.

 교사와 첨단고 사회참여 동아리 아이들이 학교 앞 교통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5·18 이야기

  목숨을 걸고 반독재 투쟁을 벌인 이들은 역사 속 위인들이 아니었다. 주먹밥을 빚어 시민군을 도운 동네 주민들, 다친 이들을 위해 헌혈을 하다 총에 맞은 여고생, 차량 행렬로 시민을 보호한 택시·버스 기사 등등.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했는지를 저자는 하나하나 사료를 찾아가며 객관적으로 서술하고자 했다.

  “기획안 구성부터 탈고까지 1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대표적인 몇몇 사람의 위인전이 아니라 광주 시민 모두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니 사료가 방대했지요. 수백 권에 이르는 참고문헌과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고증하는 과정에서 원고 수정만 13번을 거쳤어요.”

  특히,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민주주의, 언론, 국가폭력 등 우리가 살펴봐야 할 민주적 가치와 개념들을 두루 살피고 있다. 파리 코뮌, 피카소의 「게르니카」같은 세계사 속 사건을 통해 5·18의 보편적인 의미도 되짚어본다.

  “5·18 각종 수사·재판 기록, 사진과 필름 등의 기록물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걸 아시나요? 이미 39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아직도 누가 발포를 명령했는지를 비롯해 명확한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고, 암매장 등 당시 행방불명 된 많은 이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망언이 계속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5·18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지요. 그동안 5·18을 기록한 책과 영화 등도 다양했지만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청소년들이 접근하기는 어려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은 5·18이 왜 일어났고, 우리나라 민주화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등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서술하려고 노력했지요.”

동료 교사 4명이 함께 집필한 도서 『5월 18일, 맑음』

공교육으로 들어 온 오월의 정신

  총 4,634명이 피해를 보고 155명이 사망한 그해의 5월 18일. 임 교사는 광주 시내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총알을 막아준다는 솜이불 속에 숨어 두려움에 떨었던 열흘의 기억은 그에게도 여전히 선명하다. 구 전남도청 앞 금남로를 지나며 본 불에 탄 흔적들, 매캐한 최루탄 냄새, 총을 든 군인들. 임 교사는 “친구의 친구가 금남로에서 목숨을 잃었다. 상무관 바닥에 관들이 쭉 놓여 있었는데, 예민했던 청소년기의 5·18은 그렇게 기억에 새겨져 있다.”라고 했다.

  전남대 사학과로 진학한 그는 교사가 되어 5·18기념재단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그동안 5·18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 정신을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다음 세대에게 계승하는 일에 청소년 교육위원으로 참여한 것. 그는 2000년부터 5·18 민주화 운동 관련 다양한 교육교재를 연구 개발·보급하고, 교육프로그램을 기획 자문하는 한편, 다양한 청소년 문화행사로 저변을 넓혀갔다.

  “공교육 안에서 5·18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육용 리플릿 ‘5·18 민중항쟁’을 제작한 첫해에는 전국 300개 이상 희망 학교에 5만부가 배포되며 큰 호응을 얻었지요. 이듬해에는 수업용 CD ‘5·18 민중항쟁’을 개발해 보급하고, 오월 이야기를 담은 역사교과 수업안, 교육용 동영상 ‘선생님과 함께하는 오월이야기’ 등을 제작·보급하면서 5·18에 대한 전국 교사들의 관심이 높아졌어요. 청소년이 기획·참여하는 ‘5·18 레드페스타’는 청소년 평화축제로 시작해 2004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지요.”

  2008년에는 5·18 공교육화의 중요한 목표로서 중고등학생용 인정교과서 『5·18 민주화 운동』을 집필했다. 그 결과, 광주광역시교육청과 전라남도교육청은 5·18 장학자료와 지침을 현장에 전달하는 등 5·18 공교육화 기반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학생 참여로 조성한 교내 공간에서 활짝 웃고 있는 임 교사와 첨단고 사회참여 동아리 학생들

5·18을 넘어 민주시민교육으로

  5·18은 교실 문턱을 넘으면서 시민교육과정으로 더 크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할 보편적 가치와 사회상,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 역할과 시민성을 5·18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5·18 민주화 운동은 이제 민주시민교육으로 전환돼야 한다.”라는 그는 2001년엔 ‘사회참여형 봉사활동’ 모델을 개발, 8개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지역협력교’ 체제를 만들어 전국적인 성공사례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네트워크를 맺은 시민단체 활동가들로부터 주제에 따른 교육을 받고, 연간 다양한 사회참여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아이들이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어른들은 우선 걱정부터 합니다. 그러나 사회참여는 아이들의 사회에 대한 ‘민감성’을 키우지요. 주변의 문제들을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로 공감하고 개선하거나 해결해가기 위해 노력하며 한 사람의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는 지식을 넘어 아이들의 다양한 사회참여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해요.”
2002년부터는 18년째 재미환경운동가 ‘대니 서’의 이름을 붙인 청소년 사회참여 프로그램 ‘청소년의 사회적 성찰과 소통을 위한 대니 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단에서 실천해 오고 있다. 유해 환경 감시와 모니터단 활동은 물론, 청소년 인권보호 활동,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 등 아이들이 우리 사회 문제들을 개선하고 해결하는 활동이 중심이다.

  2007년 자연과학고 학생들과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권 찾아주기 활동을 전개했다.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해 특성화고 학생으로서 더 깊이 공감했기 때문. 법무부와 통계청, 출입국사무소 등을 통해 실태조사를 한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 아동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도 벌였다. 학생들은 활동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이듬해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지역사무소가 개최한 ‘2008 인권 영상제’에 출품해서 청소년부 장려상을 받았고, 이에 화답하듯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는 광주지역 다문화 가정 인권 상황과 자녀들의 교육권 실태조사에 나서게 됐다. 임 교사는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노동자가 될 자신의 아픔과 사회적 시선에 당당해졌다.”라고 말한다.

교문 앞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조사에 나선 임 교사와 첨단고 아이들

사회참여 활동으로 성장하는 아이들

  올해는 첨단고 사회참여 동아리 아이들과 학교 앞 교통문제 해결에 나섰다. 내달 초 실태조사와 현장 점검이 마무리되면,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찾아 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시민단체 활동 못지않게 그 과정이 길고 험하지만 아이들의 관심과 열정은 어느 때보다 뜨겁단다.

  “교사가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지요(웃음). 그 과정은 힘들지라도 아이들은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교사도 NGO 활동에 참여하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사회참여를 주제로 임 교사가 집필한 저서 『아름다운 참여』

  그는 2004년부터 (사)동북아평화연대와 함께 재중동포 민족교육지원사업에 참여해 교사들과 중국 동북3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한민족역사를 답사해오고 있으며, 조선족 학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사 연수와 민족문화교실을 지원했다. 연해주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관’ 건립 성금을 냈고, 중앙아시아에서 역 이주한 고려인 후손들을 위해 긴급 거주 지원 사업으로는 집 한 채(한화 300만 원)를 기증했다. 비엣남(베트남 현지 발음) 민간인학살도 그의 큰 관심사다. “5·18이 자국민에 대한 국가폭력이라면 비엣남전은 외국인에 대한 국가폭력”이라는 그는 불편한 진실도 바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5·18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광주의 역사 교사로서 비엣남과 함께 할 수 있는 또 다른 활동을 모색 중에 있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 취득과 비엣남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란다.

  그의 삶 속에서 1980년 오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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