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비뚤어졌던 아이들도 선생님이, 또 어른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비단처럼 고운 심성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지요.”
박주정 광주대 교양학부 교수
30여 년 동안 학교 현장의 그늘진 곳, 위기 학생들의 안전한 학교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온 박주정 교수. 아이들과 삶을 공유하는 공동학습장을 만들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용연학교와 돈보스코학교 등을 설립했다.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동행’이었다고 믿고 있는 그를 10월 23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만났다.
“폐허가 삶터로 바뀌면, 아이들의 꿈도 기적처럼 다시 자라납니다. 거칠고 비뚤어졌던 아이들도 선생님이, 또 어른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비단처럼 고운 심성의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게 되지요. 가정의 보살핌 없이, 마음의 상처로 얼룩졌던 아이들이 친구들과 한 가족처럼 어울리며 공동학습장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제게 그걸 입증해 보여주었죠.”
교육계에 몸담아 온 32년간, 위기와 비탈에 선 아이들 곁에서 그들을 지켜온 광주대학교 교양학부 박주정 교수. 박 교수는 올해 2월, 광주 진남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중등학교 현장에서의 임무를 완수하고 명예퇴직했다. 교육자로 살아온 30여 년을 정리하면서 지난해 펴낸 책 <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에는 그가 걸어온 삶의 자취와 교육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교직 부임 2년 차였던 1993년 6월의 어느 날, 여덟 명의 아이들이 하룻밤만 자고 가겠다면서 불쑥 선생인 저의 집으로 찾아왔어요. 그런데 약속했던 그 하룻밤이 여름방학 전까지 연장되었고, 다음 학기에도 또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었죠. 또 다른 무리의 아이들이 마치 릴레이 하듯이 제집처럼 찾아와 눌러앉았고, 10평 남짓한 아파트에서는 11명의 대식구가 옹색함을 견디며 함께 살게 되었죠.”
교육자로 살아온 30여 년을 정리하며 펴낸 <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
박주정 교수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 강연하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한 건 ‘가르침’ 아닌 ‘동행’
1994년 박 교사와 아이들은 좀 더 넓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사했다. 4,000평 규모의 감나무농장과 빈 창고를 전세로 빌린 곳이었다. 그 농장에서 박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닭과 오리, 토끼를 키우며, 학습공동체 생활의 경이로움을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박주정 교사는 부모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과 일상을 공유하면서 함께 먹고, 웃고, 떠들고, 공부하는 선생님으로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제 첫 부임지가 실업계 고등학교였어요. 따뜻한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많았죠. 처음엔 아이들의 막무가내식 버티기에 불편한 내색을 보이던 아내도 시간이 지나면서는 통 크게, 가족처럼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때로는 친누나처럼, 또 엄마처럼, 아침마다 8개의 도시락을 싸 보내면서 그 아이들과 단란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고요.”
그렇게 학교에서나 일상에서나 일탈을 서슴지 않았던 아이들에게서는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을 가장 놀라게 한 건 쑥쑥 오른 성적이었다. 기말고사를 치른 결과, 학년 전체에서 1등부터 7등까지, 맨 앞자리를 이 아이들이 독차지한 것이다. 여느 시험 때처럼 한눈팔지 않고, 잠을 줄여가며 친구들과 열심히 준비한 결과였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이른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더라고요. 그 이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들이었어요. 아르바이트로 직접 학원비를 벌어가며 기사 자격증을 취득해 나가기 시작했어요. 아무런 목표나 꿈 없이, 오락실이나 드나드는 아이들이 아니었죠. 실업계고에 들어와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른 학교 친구들처럼 대학 진학이라는 꿈에 도전해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당시 자격증 전형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이 존재했거든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성장해 온’, 감나무농장 공동학습장에서의 동고동락은 그가 광주시교육청 장학사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10년 동안이나 계속 이어졌다. 그의 저서 <선생 박주정과 707명의 아이들>에 담긴 이 생생한 에피소드들은 현재 영화화가 결정되어 한창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박 교수는 귀띔했다.
‘부르미’ 등 위기 학생들을 구해준 프로그램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매년 전국에서 5만여 명에 달한다. 박 교수는 20여 년 전부터 이 이슈에 집중하며, 공립형 위탁대안학교 설립을 주도해왔다. 위(Wee)센터의 모델이 된, 중학생을 위한 단기 위탁교육시설 ‘금란교실’, 그리고 ‘용연학교’도 그의 주도하에 출범할 수 있었다.
“광주교육청으로 옮긴 후에는 줄곧 학교폭력 예방과 생활지도 담당 장학관으로 일했죠. 광주에서 해마다 중도에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이 2,000여 명에 이르러요. 먼저, 그 위기의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죠. 중학교 과정인 용연학교는 부적응 학생들의 비행과 폭력 예방을 위한 상담 활동, 그리고 인성과 특성화 교육에 역점을 둔 교육과정으로 설계됐지요. 후에 Wee스쿨이 벤치마킹한 모델이 되었고요.”
이 용연학교의 성공은, 곧 고교 과정인 ‘돈보스코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박 교수는 “용연학교는 전국 최초의 시도였던 만큼 뜻을 같이했던 광주지역 선생님 100여 분의 지원과 재정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그 기초와 토대가 마련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16년 전을 회고하기도 했다.
광주시교육청에서 민주인권생활지원 과장으로 일할 때, 그를 부르는 또 다른 호칭은 ‘부르미 1호’였다. 2015년 5월, 24시간 위기학생 신속대응팀 ‘2430 부르미 시스템’을 창설하면서다. 이 작명은 학교든, 어디든, 위기상황에서 전화 한 통이면 ‘24시간 언제든지 30분 안에 긴급 출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르미’는 일단 공문 없이, 근무시간 따지지 않고, 신속하게 대응해서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겠다는 목표로 출범했어요. 당시 ‘언제든 달려간다, 끝까지 책임진다, 모두가 함께한다.’라는 3대 핵심과제를 정하면서 단장 역할까지 제가 직접 맡았죠. 창설 이후 지난해까지, 한 해 평균 160회 이상 출동하면서 위기에 놓인 광주지역 아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구하고, 그 상황을 수습해 왔었지요.”
현재 그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이 활용 대상 지역을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 17개 시도로 확대하기 위한 ‘부르미재단’을 설립하는 것. 박 교수는 “학교폭력 예방 등을 위해 국민통합위원회에도 이 제도를 제안하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실현 가능한 방안들을 모색 중”이라는 설명이다.
‘부르미 1호’로 불렸던 박 교수가 교직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장, 교원, 학부모, 예비교사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오고 있다.
교직에서의 ‘갈등 해결 경험담’을 나누는 삶
박주정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0월 23일 오전,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이뤄졌다. 한국교원대 전임연구교수이기도 한 그가 마침 이날 오후 2시부터 진행되는 전국 초중등학교 교장 연수회에 직접 강연자로 나서기 때문이다. 올 2월 명예퇴직 이후 박 교수는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중이다. 특히 중점을 두고자 하는 대상은 학부모와 장차 학교 현장을 지켜갈 예비교사들이다.
“학업 중단 학생이 늘면서 안전을 위협받는 학생 수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담보하려면 학교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정을 지키고 있는 학부모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지요. 가정이 무너지면, 학생들의 안전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거든요. 앞으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강연도 심도 있게 연구하면서 기획해 볼까 고려 중입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내 자녀는 안전한가?’라는 주제로 ‘학교폭력과 인터넷 중독’ 등을 내용으로 하는 토크 콘서트를 개최, 광주지역 학부모들로부터 열띤 호응을 받은 바 있다. 박 교수는 특히 임용을 앞둔 예비교사 대상으로는 교직에서 겪었던 ‘학교 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의 실제 사례’들을 수집하여 수업을 설계 중이기도 하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해온 교육은 ‘가르침’이 아니라 ‘동행’이었다고 믿고 싶은 박주정 교수, 먼 훗날, 묘비에 새기고 싶은 문구도 일찌감치 정해 놓았단다. 박주정, 비탈에 선 아이들을 위해서 평생을 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