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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1 -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의 ‘원인’과 교훈:평화의 역동성을 키우자

글 _ 이동기 강원대학교 대학원 평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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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시간 협상해서 성과가 없어도 1분간 총을 쏘는 것보다는 낫다

  “100시간 동안이나 협상했는데 아무 성과가 없어도 그것이 1분간 총을 쏘는 것보다는 낫다.” 서독의 평화정치가이자 안보 전문가인 헬무트 슈미트 총리의 말이다. 명료한 평화 명구도 인류의 어리석음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지난 2월 24일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서로에게 총을 쏘고 있는 시간은 이미 100시간이 아니라 100일이 넘었다. 전쟁 양상은 혼미하고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 말은 양측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들이 계속 살해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5월 중순 현재 이미 양측에는 각기 수천 명의 군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4천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민간인 부상자들이 발생했다. 또 6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난민으로 삶의 근거지를 잃고 안전을 찾아 나섰다. 경제 손실은 아직 헤아리기 어렵고, 종전이나 휴전이 되더라도 우크라이나 사회와 주민의 상흔은 오래갈 것이다. 러시아도 전쟁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 심지어 전쟁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직접 개입으로 치닫는다면 그 결과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문명파괴’로 이어질 것이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는 것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과 난민, 산업과 기간 시설의 파괴와 폐허만이 아니라 무책임한 적대 감정과 폭력 공간을 창출할 것이다. 전쟁은 협상과 달라 1분이라도 그 자체의 고유한 역동성과 강력한 흡인력을 갖는다. 전쟁은 당사자 모두를 적대 감정의 소용돌이로 몰고 종전 후라도 화해를 어렵게 만든다. 한국전쟁은 3년이었지만 그 후 지금까지 한반도는 대결과 적대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남북한 사이의 화해와 협력의 시간을 다 합하면 한국전쟁의 기간보다 훨씬 길지만 전쟁과는 달리 어떤 역동성이나 지속성을 창출하지 못했다. 전쟁은 문명적 삶의 정상성의 고삐를 풀어 버렸기에 적대와 불화를 계속 고조시킨다. 100시간 협상해서 성과가 없는 상황은 사실 최소한 적대의 고조를 막고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만큼 협상은 성과가 없더라도 중하다.



‘전쟁 원인’으로 불리는 전쟁 정당화 주장들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러시아 측의 주장이었다. 1989-91년 국제 냉전이 종결된 후 서방의 군사동맹인 나토가 러시아를 향해 계속 동진해 러시아가 안보 위협을 느꼈기에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맞섰다는 주장이다. 나토 동진을 전쟁의 핵심 원인으로 간주하면 이 전쟁은 러시아와 미국의 대리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탈냉전기 미국의 군사적 패권 전략과 러시아의 탈소비에트 지역 통합 전략 사이의 충돌이 전쟁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탈냉전 후 세계질서를 일방적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러시아는 탈냉전 과정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기에 그것에 걸맞은 안보 이익을 관철하고자 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과 안보 갈등이 우크라이나에서 충돌했다고 여기는 분석이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이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주장한 구실들을 무심하게 전쟁의 원인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나토 동진이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곧장 우크라이나를 침략할 명분이 되지는 않는다. 나토 가입은 철저히 우크라이나인들의 주권과 자결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명백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고, 주권 침해다. 안보 이익은 조정과 타협의 문제지 전쟁 정당화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반면, 미국의 책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우선 미국과 러시아는 1990년대 내내 그리고 2001년 9.11 테러 후에도 경제와 외교 및 안보 영역에서도 협력 정치를 선보였다. 그때 분명 양자는 새로운 평화체제 형성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평화의 기회를 활용하지 않았고 평화 협력관계의 제도화를 포기하고 군사동맹의 확대에만 매달렸다. 군사동맹이 존재하는 한 동맹 바깥의 대결 내지 이질 세력은 항상 현실적 또는 잠정적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 ‘적’의 경계를 강화하는 군사동맹은 필연적으로 군사적 우위와 동맹 강화를 목표로 삼게 된다. 군사동맹을 통한 안보 강화는 실상 현실적 갈등 세력 내지 잠정적 적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지 평화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사실 나토 국가들은 이미 돈바스내전 당시 무기와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군대와 함께 군사훈련을 수행했다. 나토는 이미 분쟁 지역의 군사 긴장을 계속 고조시켰다. 게다가 미국은 작년 11월부터 전쟁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의 협상 요구를 무시했다. 유럽 국가들, 특히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전쟁 발발 전에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제안했지만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상황은 곧 인간의 이성과 조정 능력을 넘어 안보론에 빠졌다. 갈등이 제어되지 않은 무책임의 대결 정치로 귀결되었다.


  전쟁의 또 다른 원인으로 간주한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갈등이다. 현실의 대결과 적대는 항상 역사를 소환하는 법이다. 두 국가의 역사적 뿌리가 같음에서 양국의 깊은 문화적 연루와 긴밀한 인적 연결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양국 사이의 불화가 강조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병합한 사건이나 1930년대 농업 집단화의 결과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참화, 즉 ‘홀로도모르’가 새삼 주목받는다. 다수 우크라이나인들은 서구 지향과 반러시아 감정이 뚜렷하다. 반면, 우크라이나를 여전히 러시아의 일부로 보는 러시아인들은 70%에 달한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역사적 갈등과 정체성의 차이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지구는 항상 불바다일 것이다. 그것 또한 전쟁의 필연성이 아니라 전쟁 수행을 위한 국민 결집과 동원의 이데올로기임에 더 주목해야 한다.


  요컨대, 나토 동진과 안보 이익 주장 및 역사적 갈등에 기인한 이질적인 국가 정체성은 전쟁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양측 정치엘리트 모두에게 각기 전쟁 정당화의 도구다. 역사에는 항상 평화의 대안이 없지 않다. 전쟁은 안보 구조나 패권 대결의 필연적 귀결이 아니다. 과거에 불화가 있었다고 해서, 현재 자아상과 타자상이 다르다고 해서 곧장 전쟁이 일어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전쟁의 배경이나 이유가 아니라 결과이자 변명이다. 반대로 전쟁은 늘 그와 같은 요인을 내세운 정치 지도자들의 무책임한 선동과 긴장 고조를 제어하지 않는 행위의 파국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의 교훈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은 무력이 아닌 협상을 통해 국가 간 갈등 해결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세계 전역에서 안보 동맹 강화나 군사력 강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 득세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파국을 낳을지는 이미 20세기에 충분히 보았다. 글로벌 사회가 직면한 보편적 곤경과 위기에 맞서 국제 협력과 초국적 연결이 강화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각국은 인습적인 국가안보를 내세운 군비 강화에 매달리게 될 위험이 크다. 그것 또한 전쟁의 역동성이다. 그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이유나 근거가 있음에도 전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너무 손쉽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았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은 탈냉전이라는 일시적 성취에 취해 안보 동맹이나 공동의 경제 이익에만 주목하다 평화 질서의 근본적 재창출을 놓쳤다.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갈등과 위기가 자가 상승하도록 내버려 두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거나 인적·문화적 교류가 활발하더라도 순식간에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음을 이 전쟁이 잘 보여주었다. 갈등의 고조와 적대의 상승을 억제하는 온갖 제어 장치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발명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적대적 갈등이나 전쟁과는 달리 화해나 평화는 손쉽게 발생하지도 않고, 한번 개시되었다고 잘 지속되기도 어렵다. 그렇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평화의 원인과 요인, 평화의 조건과 과정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평화의 역동성을 창안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어떤 것도 곧장 전쟁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반면, 갈등 악화를 막고 긴장 고조를 제어하는 모든 노력은 다 평화의 원인이 된다.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라는 말은 바로 그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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