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교육이 희망이 되는 세상을 위해 : ‘앎과 삶’

교육이 희망이 되는 세상을 위해 : ‘앎과 삶’

글_ 김  민 순천향대학교 교수

 

다수를 위한 교육복지, 국가의 핵심 정책
교육과 사회를 하나의 정책 선상에서 보기
교육복지 네트워크 통해 ‘교육과 삶’ 연결

 

 

  ‘앎과 삶.’
  대학에 발을 디딘 후, 첫 강의시간 주제였다. 이제 막 교문에 들어선 대학 신입생들에게 지성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무를 당부하는 교수님의 뜻이 담긴 주제였다. 아는 만큼 실천하라는 의미와 함께, 삶 자체가 교육이란 중층의 의미가 있었다. 이후 이 주제는 내내 우리 대학생활의 화두(話頭)였다. 역설적이게도 삶과 학교 그리고 교육이론의 부조화 때문이었다. 그건 당시나 지금이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주제였다. 더욱이 당시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확증하는 방법 중 하나가 교육이란 임마누엘 칸트(I. Kant)의 주장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요원한 명제로 생각되던 때였다. 학교중심의 ‘학교교육 일원론적 가치’가 이 땅을 지배하던 당시, 학교는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가르치는데 실패한 곳으로 여겨졌고, 무기력한 다수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팽개치듯 사회로 튕겨져 나오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이 땅에는 교실붕괴, 학교붕괴란 담론이 부유했다. 가까운 일본에선 이지메와 부등교(不登校) 현상이 도쿄슈레를 만들어내던 때였다. 우리사회에선 학업중도탈락이란 용어가 어느새 학업중단이란 용어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학교 밖 청소년이란 가치중립적 용어로 바뀌게 되었다. 그만큼 학교에서 밀어내는 학생들보다 학교를 스스로 그만두고 나오는 아이들이 많아진 까닭이었다. 학교교육의 효용성에 대한 그간의 신화가 점차 퇴색되고 학교 밖 배움터와의 협업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 학업을 그만둔 것은 아니기에.
  2000년대 들어와 섬처럼 고립되다시피 했던 학교가 사회와의 협력을 적극 꾀하기 시작했다.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사업, 오늘날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이하 교육복지사업)의 모델이 등장하고, 교육복지란 용어가 대두되면서였다. (그전에도 전혀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이 사업을 통해 비로소 학교는 다음세대의 교육을 위해 사회와 연대하고 협력하는 경험과, 그런 경험의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물론 교사와 학교차원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IMF를 거치며 우리사회의 빈부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소득의 불균형은 교육 출발점의 불평등을 악화시키던 때였다. 그래서 저항은 커다랗고 떳떳한 명분 앞에 초라하기만 한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의 저소득층 소수가 아닌 다수
  그러나 교육복지사업은, 교육을 통해 우리 삶 자체를 일깨우고 인간다운 삶을 세우는 교육의 원형으로까지는 회복시키지 못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교육복지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철학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교육복지사업 역시 저소득 지원 대책 중 교육부문의 하나로만 취급됐기 때문이다.
  전자 즉 국가적 차원의 철학이라 함은, 집권한 정부 이념과는 무관하게 교육복지에 대한 범정부적, 국가적 철학을 확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부족한 이에게 더 많은 것을 주자”는 긍정적 차별(positive discrimination)과 공화주의를 교육복지의 이념으로 삼는 프랑스가 30여 년의 기간 동안 정부의 성격·이념과는 별개로 교육복지지원을 꾸준히 이끌어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후자 즉 교육복지는 소수의 저소득층,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부문의 정책이란 관점도 문제다. 사실 오늘날의 저소득층은 알고 보면 소수가 아니라 다수다. 규모로만 봐도 그렇다. 소득5분위별 가구당 가계수지 최근 통계(2018년 3분기 기준)를 살펴보면 1분위~3분위 가구분포가 60%(59.99%)에 육박한다. 소득을 잘게 쪼개 10분위로 나누어 한국장학재단 국가장학금 지원대상인 8분위까지 살펴보면 80%정도다.
  소수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교육복지정책이라면, 국가의 핵심정책으로써 응당 정책에 내재하는 철학을 일찌감치 천명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복지에 대한 범정부적 국가철학을 마땅히 무엇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교육복지사업의 비전과 목표는 있지만 교육복지에 대한 국가철학을 사회적으로 인준 받고자 하는 노력도, 과정도 생략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과제는 이번 정부 안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기사 이미지

 

교육과 사회를 하나의 정책 선상에서 바라보자
  2010년대를 가로질러 2020년대를 앞둔 요즘, 마을공동체 혹은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드높아졌다. 학교교육에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을 단순히 연계하는 차원이 아닌, 마을과 함께 교육을 고민하는 수준으로 달라졌다. ‘학교 안 마을학교’, ‘학교 밖 마을학교’란 언급이 대통령 정책 공약집에 있을 정도다. 그런데 마을학교든, 마을교육공동체든 여기에는 마을과 학교, 혹은 마을 내 다양한 자원들 간에 서로 긴밀한 연계와 협력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연계와 협력을 우리는 네트워크라 부른다.
  사실 네트워크는 교육과 삶을 가로지르는 핵심 개념이다. 서로가 다른 듯 독립되어 있던 교육과 우리 삶을 연결하고, 나아가 양자 간 협력을 통해 대안적 수단으로 만든 것이 바로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는 교육의 개념을 확장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교육을 ‘교육적 돌봄’의 개념으로까지 보다 실천적이고 광범위하게 확장한 것이다. 이 이면에는 교육 불평등이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취약한 사회·문화적인 환경과 연관되어 있고, 따라서 개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요인에 의해 충분한 교육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교육적 약자는 결국 사회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이는 교육문제가 곧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인식과 함께 교육과 삶, 다시 말하자면 교육과 사회를 하나의 정책 선상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제 적지 않은 기간 숙성해온 교육복지가 네트워크를 통해 교육과 우리네 삶을 연결하려고 하고 있다. “마을이 학교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란 여러 구호가 난무하지만, 여전히 산적한 여러 과제가 놓여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겁주는 것은 교육을 학교란 틀, 학교란 졸업장으로만 보려는 제한된 시선이다. 앎과 삶. 그런 앎과 삶을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