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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쌤과 산골 학교 아이들의 좌충우돌 한 해 살이

위로 받은 기억


글_ 탁동철 강원 조산초등학교 교사 



아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1년
나도 아이들 덕분에 행복했다.
많이 배웠고, 많이 위로받았다.


  일주일 뒤에는 졸업. 마지막으로 시 한 편 읽자. 아이들을 반반으로 나누고, 중간을 막으로 가렸다. 막 이쪽 편 아이들에게 임길택의 시 <저녁 한때>를 내밀었다. 아이들이 시의 소재들을 소리 내어 표현하기 시작했다. 막 저쪽 편 아이들은 귀 기울여 듣는다.

   “사각사각사각….”

  “톡톡톡톡톡….”

  “화르르륵화르르륵.”

  저쪽 편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디일까?”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국밥집이요.”

  “바다요.”

  “화장실.”

  정답을 말하는 대신 나는 시를 천천히 읽었다. 이번 시간에 아이들과 같이 읽을 시다.


저녁 한때

뒤뜰 어둠 속에 / 나뭇짐을 부려 놓고 / 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는 무 한쪽을 예쁘게 깎아 내셨다. //

말할 힘조차 없는지 / 무쪽을 받아든 채 / 아궁이 앞에 털썩 주저앉으시는데

환히 드러난 아버지 이마에 / 흘러난 진땀 마르지 않고 있었다. //

어두워진 산길에서 / 후들거리는 발끝걸음으로 / 어둠길 가늠하셨겠지. //

불 타는 소리 / 물 끓는 소리 / 다시 이어지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

그 모든 소리들 한데 어울려 /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돌아가며 한 연씩 읽고, 눈 감고 한 줄씩 읽었다. 의자 하나를 앞에 놓고 아이들한테 물었다.

  “아버지 해 볼 사람?”

  윤서가 앞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고, 다른 아이들이 질문을 시작했다.

  “나무 벨 때 힘들었나요?”

  윤서가 대답했다.

  “땀 많이 흘렀어. 젖 먹던 힘까지 냈어.”

  “왜 나무를 해요? 연탄 때면 되잖아요.”

  “산골이라 연탄이 없어.”

  “왜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해요? 전기밥솥으로 하면 되는데?”

  “과학 기술이 발전이 안 돼서 전기밥솥이 없어.”

  “옷은 왜 떨어진 거 입어요?”

  “돈 있으면 우리 애들 먹을 거 사야지. 옷은 아무거나 입으면 되고.”

  “왜 아들은 일 안 시키고 아빠 혼자 일해요?”

  “애들이 아직 어려서. 응애 응애 기어 다녀. 막내가 한 살인데.”

  “집에 식구들은?”

  “아내가 있고 아들 셋에 딸 하나.”

  “왜 밤까지 나무를 했나요?”

  “…….”

  질문을 주고받는 동안 시의 분위기, 배경, 인물의 얼굴이 아이들 마음속에 하나하나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각자 이 시 속에 나오는 무언가가 되어 보세요.”

  주인공 역할을 맡은 윤서가 무대 한 귀퉁이, 산에서 끙차끙차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이 시에 나오는 무엇들, 나무, 도마, 아궁이, 솥, 별, 개, 새가 되어 각자의 자리에 가서 멈췄다. 별이 된 아이는 의자 위에 높게 올라가서 휴대폰으로 불빛을 냈고, 개는 뒤뜰 마당에 엎드려 왕왕 짖었고, 부엌 아궁이가 된 아이는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올렸다 내렸다 하며 화르르륵 불을 태웠다.

  끙차끙차 나무를 베던 아버지가 후유, 땀을 한 번 닦고 베어낸 나무를 지게에 올리고 일어섰다. 나뭇짐 지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길을 별이 된 아이가 핸드폰 불빛으로 비추어 주었다. 숙인 채 걸어오던 아버지가 뒤뜰에 털썩 나뭇짐을 내려놓았다. 3초 뒤에 강아지가 짖기 시작했다.

  “왕왕왕. 왜 이렇게 늦었어. 힘들었지? 얼른 들어가서 쉬어.”

  부엌으로 들어선 아버지가 도마 앞에 멈춰 섰다.

  “톡톡톡톡톡. 수고했어. 이거, 무 먹어.”

  아버지가 솥을 건드렸다.

  “보글보글 뽁뽁뽁 이젠 좀 쉬어. 내가 맛있는 음식 해줄게.”

  아버지가 부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모든 사물이 한꺼번에 소리내기 시작했다.

  “활활활활.”

  “반짝반짝.”

  “호으으으.”

  “톡톡톡톡.”

  사물들은 소리를 내며 아버지를 감싸듯 천천히 다가와 멈췄다. 멈춘 상태에서 각자 위로가 되는 대사를 되풀이했다.

  “힘들었지. 고마워.”

  “고생했어. 이제 쉬어. 쉬어.”

  “6년 동안 고생했어.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라는 말은 왜 나오는지. 이제 며칠 뒤면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는 아이들한테는 위로의 말인가 보다. 다 같이 얼음, 하고 사진을 찰칵 찍었다. 그리고 모여 앉아 시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수업을 마쳤다.

  “위로의 힘은 매우 강력해요.”

  “매일 힘든 몸 이끌고 일하지만 가족들의 위로가 있어서 견디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행복할 것 같아요. 아무리 힘들어도 어머니가 무 깎아서 주고, 솥에서 물 끓는 소리가 위로하고, 아궁이에서 불타는 소리가 위로하니까.”

  “우리 아빠도 맨날 힘들게 일하는데 전 아빠가 오실 때 휴대폰만 한 거 같아요.”

  “6년 지내면서 저도 친구들한테 선생님들한테 많은 위로를 받은 것 같아요.”

  아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1년 나도 아이들 덕분에 행복했다. 많이 배웠고, 많이 위로받았다.



필자는 1968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같은 마을에서 살며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전교생이 39명인 조산초등학교 산골 아이들과 산과 바다를 누비며 작지만 확실한 교육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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