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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상황 속 아이들의 성장 돕는 ‘교육복지의 힘!’

글_ 박경현 한양대학교교육문제연구소 중앙교육복지연구지원센터 현장컨설팅위원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은 예측하지 못한, 원치 않게 처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모든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재능으로 이웃에 빛을 발하며 함께 내일로 걸어가도록 하는 교육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부모의 이혼과 떠돌이 생활, “나는 왜 태어났나요?”

  # 진수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했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돈도 못 벌면서 어쩌다 술을 마시면 폭력적인 아빠와 예쁜 엄마가 헤어지기로 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엄마와 사는 것이 당연한 결정이었다. 엄마는 밤낮으로 열심히 돈을 벌었다. 4개월쯤 되어 한 아저씨가 같이 살기 시작했고 엄마는 재혼했다. 진수는 다시 아빠에게 맡겨졌다. 엄마가 없는 집은 예전 같지 않았다. 집안 사정을 훤히 아는 동네 사람들과 다시 인사하기도 싫었다. 아빠는 진수를 투명인간 보듯 했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부터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고모가 데리러 와서 옷가지를 싸며 크면 말해준다고 했지만 이미 아빠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걸 들었다. 고모 딸인 사촌 동생은 진수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한집에 살면서 더 불편해졌고 학교에서 만나면 서로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촌 동생과 크게 다퉜다. 핸드폰 충전기를 잃어버려 사촌의 것을 잠시 빌려 쓰려고 했을 뿐인데 자기 책상을 뒤졌다며 다른 것도 가져가지 않았냐고 화를 냈다. 그 후 진수는 경기도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옮겨졌다. 억울하고 화가 났다. 낯선 도시, 낯선 공기, 낯선 소음, 낯선 하늘. 중학생이 된 진수는 집에 들어설 때 할머니의 표정이 싫었다. 공부? 꿈?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엄마 아빠를 만나 따져 묻고 싶다. 그런데 전학 온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과 ‘특별한 외식’ 프로그램을 하고 나서 조금씩 무언가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 세상에나! 어른이, 선생님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두서없는 내 얘기를 그렇게 열심히 들어주시다니!


전교생이 다 아는 나는 우리 반 ‘꼴찌’

  # 몸집이 자그마한 수아는 웃음이 귀여운 아이다. 꽃과 동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사귀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친구들은 수아를 멀리한다.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도 수아를 보면 흩어지기 일쑤다. 내가 뭘 잘못했나? 수아의 아빠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동남아 여자와 결혼을 했고 수아를 낳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수아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몇 년 전 다시 새엄마가 왔다. 그리고 인형 같은 남동생이 태어났다. 늙은 아빠를 대신해 새엄마는 열심히 돈을 벌었고 수아는 방과 후에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거들었다. 어릴 때부터도 한국말이 어눌했지만 갈수록 말과 글 때문에 수업시간에 참여하고 따라가기가 어렵다. 반에서 수아가 공부를 제일 못한다는 건 전교생이 다 안다. 선생님에게 얘기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을 바라볼 때 짓던 선생님의 난감하고 불쌍해하는 표정을 생각하면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나는 왜 친구들과 다르게 태어났을까? 학교에 안 가면 안 되나? 그런데 교육복지사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와서 엄마 아빠를 만나면서 생활이 달라졌다. 수아가 가고 싶은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고 동생은 돌봐주는 곳에 맡기게 된 것이다. 다음 토요일에는 엄마랑 단둘이 여행도 간다고 한다!


대를 잇는 빈곤의 늪에서 꿈을 키우는 ‘소라’

  # 김 선생님은 학교를 나서며 소라네 집으로 향한다. 발걸음이 무겁다. 소라네는 대를 이은 오랜 빈곤의 늪에서 온 식구가 앓고 있다. 소라의 외할아버지는 기계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사고로 앓다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도 빌딩청소와 식당 주방일, 전단지 돌리기 등 안 해본 일 없이 평생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키 낮은 집들이 빼곡한 길 좁은 산동네에서 사는 동안 소라의 엄마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소라를 낳았다. 소라네 집에는 책이나 신문, 잡지는 물론, 그 흔한 종이나 잘 나오는 볼펜도 찾아보기 힘들다. 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텔레비전 소리뿐이다.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다 마는 햇빛은 좀처럼 집 밖으로 나서지 않는 소라 엄마의 얼굴을 잠깐 밝혀주다 떠난다. 소라는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얼마 전엔 난타동아리 발표회에서 한껏 끼를 뽐냈다. 그렇지만 엄마는 학교에서 실패한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교사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소라의 교육에도 관심이 없다. 전화에도 응대가 없고 현관문을 두드린 지 며칠 만에 열어준 소라 엄마의 눈빛에는 분노와 슬픔, 좌절, 수치심, 역겨움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오늘도 문을 열어줄지 모르겠다. 새로 시작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프로그램에 소라의 참여를 부탁하면서 작은 희망의 불씨를 밝히고 싶다.


취약 가정의 아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난한 집 아이들은 길지 않은 삶 동안,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들의 결핍과 없었으면 좋았을 것들의 과잉 속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 아니, 가난한 집 아이들은 학교에서 성공하기 힘들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낮은 성취는 이후 성인기의 취업과 소득, 결혼, 건강, 수명 등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통계자료나 연구보고서를 인용하기도 피곤하다. 이제 금수저나 흙수저 같은 말은 너무 흔해서 시시해 보일 정도이다.

  부모의 교양이나 문화, 사회경제적 자산은 양육 태도, 교육적 관여, 사교육 등을 통해 자녀의 성격 형성과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친다. 취약한 가정의 아이들이 다양한 결핍이나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개발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대한민국 헌법이나 교육기본법뿐 아니라 국제법이라 할 수 있는 UN아동권리협약이 규정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교육 불평등 해소 첫걸음!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교육 불평등과 관련된 자료가 공공연하게 조사, 수집되고 이러한 고민이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기억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고 바로 이듬해인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의 관리지원을 받는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이는 곧 교육의 불평등과 교육 병리적 현상의 증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민정부가 이어지면서 불평등과 사회복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룰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무언가 하려고 나섰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기 교육부는 교육격차의 해소 및 평등의 보장을 추구하며 교육복지정책으로 ‘국민 기초교육수준 보장’, ‘교육 부적응 및 불평등 해소’, ‘복지 친화적 교육환경개선’ 등의 3개 영역을 추진하면서 지역사회교육복지네트워크를 통해 학생에게 전인적 개입과 지원을 제공하도록 하는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당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지 15년여를 지내면서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이 사업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교육복지의 개념 또한 계속 진화되고 있다.

  교육복지가 교육에서의 복지 이념 실현, 복지적 실천을 통한 교육목표 달성이라고 할 때 교육복지는 목적과 과정 모두에서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나란히 놓인 컵 중 몇 곳에 물이 적다고 그곳만 골라 물을 더 채워 넣으면 될 거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교육적이지도, 복지적이지도 않다. 가난한 가정 학생들을 따로 불러 모아 그들에게만 특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교육 불평등이 얼마나 해소되겠는가.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겪어야 할 수치심과 낙인감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학생이 학교에서 무언가 성취하려면 친구들과 함께 더 많이 경험하고 친구, 교사로부터 인정받는 등 학교공동체 속에서 존중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은 이제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가 가진 장애나 만성질환, 가정의 빈곤이나 사회 정서적 소외 등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이유로 인해, 또는 자라나면서 한두 번쯤 겪을 수 있는 위기 상황에서도 교육과정에서 소외되지 않고 수업 시간뿐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 전반에서 유의미한 교육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학습, 정서·심리, 문화·체험, 보건·복지 등 전인적 관점에서 통합적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가정이나 마을에서도 안전하고 교육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학교의 문을 열고 가정, 마을과 함께 소통하고 협력한다.


위기상황 속에서도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는 삶

  진수와 수아, 소라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잘 살펴야 한다. 아이들은 비슷한 고민과 기대를 품고 살지만 가난하다고 다 똑같은 건 아니다. 그래서 잘 가르치고 제대로 도우려면 더 오래, 자세히, 한 명 한 명 사랑의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은 진수와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외식, 교육복지사의 수아를 위한 재능 계발 후원, 소라 엄마를 위한 지역사회 자원 연계를 가능하게 해준다. 교육복지는 운이 나빠 가난한 집에 태어난 아이들을 돕는 공짜 프로그램, 자선사업이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원치 않게 처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모든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밝고 당당하게 자신의 재능으로 이웃에 빛을 발하며 함께 내일로 걸어가도록 하는 교육의 또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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