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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같은 선생님 vs 만만한 선생님

글_ 허승환 서울강일초등학교 교사



Q. 저희 반은 동학년 다른 반에 비해서 많이 시끄러운 편입니다. 걸핏하면 수업 중에 잡담을 늘어놓고 이리저리 돌아다닙니다. 주의라도 주면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지기 일쑤입니다. 점점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만만한 선생님이 된 것은 아닌가 괴롭습니다.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속 마리아 수녀는 제가 되고 싶은 교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 중에 ‘I will be firm but kind’, 정말 친절하지만 단호한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만난 첫 해는 정말 지옥 같았습니다. “3월에 웃으면 안 된다.” “3월에는 이를 보이지 말아라.” 선배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친구같은 교사가 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고마워하기보다 당연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치사해요.”라며 저를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버릇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참다참다 결국 폭발한 제 모습에 아이들은 하나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아이들도 행복하길 원하고 저도 행복하길 원했는데 우리들의 교실은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그해 12월, 너희들 멋대로 살아보라며 3일 동안 교실을 비웠습니다. 결국 학부모님의 신고로 교실로 돌아온 제겐 차가운 감정뿐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후 시간이 흐르며 ‘3월에 웃으면 안 된다.’는 조언이 결코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며 무조건 아이들 말을 들어주는 친절한 교사가 되지 말라는 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정은 친절하되 행동은 단호하게


  40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전 세계 교사들이 가장 많이 산 책이라고 알려진 해리 왕의 ‘The First days of school’에는 교사들이 4번의 단계를 거쳐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수천 명의 교사들을 컨설팅하며 해리 왕은 모든 교사들이 발령 나 도착하는 첫 번째 단계를 바로 ‘환상’(Fantasy) 단계라고 했습니다. 이 단계의 많은 초임 교사들은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는 것이 성공하는 교사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준, 평가, 또는 학생의 성취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활동으로 학생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절하게만 대하다가 결국 아이들이 만만하게 대하게 되며 ‘친구 같은 노예’로 전락하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으며 2단계인 생존(Survival) 단계, 생계형 교사의 단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 아이들은 친절하게 대하면 만만해지고, 엄격하게 대하면 저희를 무서워하는 걸까요? 그 비밀은 바로 친절함과 단호함은 따로 따로 일어나지 않고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친절함’은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공감’입니다. ‘단호함’은 무섭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지게 하는 것,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학급경영의 대 원칙은 ‘감정은 친절하되 행동은 단호해야’ 합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학생을 존중하면서 감정은 수용하며 공감해 주면서 행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아이를 어른과 대등하게 보지 않기에 아이를 야단치거나 모욕적인 말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교사가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관심 끌기)이 목적이라면, 교사가 야단을 칠 때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로 교사가 자신을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심하게 야단을 쳐도 문제행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야단치는 데도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야단치니까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또 야단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야단맞으며 자란 아이는 야단맞는 게 무서워 소극적인 아이로 변하고,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지만 생각하게 되는 그릇이 작은 아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아이가 우유를 엎질렀다면, 이미 아이는 충분히 놀랐을 것입니다. “괜찮아. 선생님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있단다.” 친절하게 감정을 받아주지만, 감정만 받아주면 안 됩니다. 종종 많은 교사들은 이럴 때 대신 닦아주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행동은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원하는 바를 말할 때는 “~하면 좋겠어.”라고 아이가 거절할 여지를 남겨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는 존중받는 느낌을 가집니다. 이왕이면 존중하는 질문으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겠니?” 아이가 “휴지로 닦아야 돼요.”라고 스스로 행동을 선택하면, “지금 네가 말한 대로 해보겠니?”라고 말해주면 충분합니다. 아이는 ‘실수’를 통해 그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커다란 배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수업은 원칙대로 늘 진지하고 단호하게


  일본의 수업 명인인 노나카 노부유키 교사는 ‘친절함’과 ‘단호함’을 시간으로 구분해 설명합니다. 아침자습 시간은 친절함의 시간일까요? 단호함의 시간일까요? ‘친절함’의 시간입니다. 농담 따먹기를 해도 좋습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청소 시간, 방과 후 모두 ‘친절함’의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노나카 노부유키 교사가 ‘단호함’의 시간이라고 한 시간은 언제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수업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절대 휘둘리지 않을 ‘단호함’의 시간입니다.

  “선생님, 옆 반 체육해요. 우리도 피구해요.”

  “선생님, 옆 반 컵라면 파티해요. 우리도 컵라면 파티 해요.”


   종종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 싶은 교사는 기꺼이 아이들의 의견을 수용합니다. 하지만 이때 영웅이 되는 것은 교사가 아니라 이런 의견을 낸 아이입니다. 3, 4월 고마워하다가 5, 6월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하고, 2학기가 되면 안 해주면 도리어 화를 내는 게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의 태도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며 길러준 것이 아닐까요?

  많은 선배들이 ‘3월에 웃으면 안 된다.’라고 한 이야기의 진심은 사실은 ‘웃으며 친절한 교사로만 가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함께 정한 원칙대로, 수업은 늘 진지하게 주도권을 선생님이 가지고 가자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학생들은 안정적인 교실을 원합니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친절함 외에 무엇보다 아이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호함은 책임지게 하는 것’, ‘원칙을 지키는 것’,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책임지도록 가르쳐 줘야 합니다. 학급 구성원 모두가 정한 약속을 지키고 자기 행동에 책임지는 태도가 내면화될 때에 2학기 교실은 더욱 행복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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