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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교실, 꼭 만들고 싶어요


글_ 강철오 밀성여자중학교 교감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사로서 잠들지 않는 교실은 저의 꿈이자 목표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 냉혹합니다. 수업 10분쯤 되면 엎드린 학생들이 생겨 그때마다 아이들을 깨우며 돌아다닙니다. 그럴 때마다 수업은 지연되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가는 상황입니다. 교사로서 무관심하기에는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선생님처럼 중학교 국어교사였습니다. 고등학교 10년, 중학교 20년을 근무하는 동안 저의 고민도 줄곧 어떻게 하면 수업 시간에 자는 아이가 없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교직 생활 25년 차에 접어들 무렵, 저의 고민은 거의 정점에 달했습니다.


수업, 우리 모두의 고민
  이전까지 저의 학교생활은 나름 재미가 있었습니다. 신임교사 시절부터 갈고닦은 나만의 학급 방식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아이들도 학부모도 저를 꽤나 괜찮은 교사로 평가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10여 년 전 남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교실에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배움의 목적과 의미를 잃고 수업을 거절하는 아이들이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저는 점점 아이들과 분리되어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은 교직생활을 온전히 버텨낼 수 있을까? 적당한 시점에 명퇴를 신청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번민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뎌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선생님들 얼굴엔 한결같이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더군요.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교 가는 게 즐겁니?”라고 물었을 때, 환하게 웃는 아이를 찾아볼 수 없더군요.


‘공부’와 ‘배움’의 차이
  고민이 깊어갈 즈음, 죽어 있는 교실수업을 되살릴 희망의 빛을 만났습니다. 바로 ‘배움의공동체’였습니다. 무엇보다, ‘한 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되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 질 높은 배움을 보장한다’라는 기본 철학이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배움의공동체 철학을 주창한 사토마나부 교수는 ‘공부’와 ‘배움’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그는 지금까지의 공부가 교과서·칠판·노트에 의한 좌학(座學)이었다면서, 오직 교사의 설명을 듣고 칠판과 교과서를 읽고 이해·기억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규정합니다. 공부가 만남과 대화가 없이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에 의해 학생이 지식과 기능을 축적해 나가는 예금 개념이라면, ‘배움’은 사물·타자·일·자기 자신과 만나 대화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중·고등학교 교실이 침묵을 넘어 공동묘지로 변해버린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공부’가 학교를 지배해 온 거죠. 침묵 속에서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앉아만 있는 교실, 각자 자신의 공부에만 빠져 있는 교실, 이게 바로 오늘날 ‘공부’하는 학교의 모습이지요. 입은 닫고, 눈은 교과서를 보고, 정리된 지식을 머릿속에 욱여넣는 수업.


‘가르침’ 중심에서 ‘배움’ 중심으로
  한때 수업이라면 남 못지않게 잘한다고 자부했던 지난날 제 수업을 뒤돌아보면 순전히 교사 중심 수업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해서 열심히 가르치면 아이들은 저절로 잘 배울 거라 믿었던 겁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만큼 아이들은 열심히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기에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아이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배움의공동체를 접하고 그런 생각이 깨졌습니다. 교사가 열심히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잘 배우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교사 수준이 아이들 수준’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교사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아이들이 잘 배우지 못하는 수업은 ‘꽝’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배움에서 멀어지는 것은 교육과정에서 수동적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이 간단한 걸 모르고 한 시간 내내 게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는 수업에 스스로 도취해왔던 것입니다.


차츰 안정을 찾아간 수업
  물론, 배움의공동체 철학을 기반으로 수업을 바꾸자마자 아이들이 완전히 달라지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업은 여전히 생각대로 풀리지 않더군요. 모여 앉아서 잡담을 주고받거나 딴짓을 일삼는 아이들이 많았지요. 사소한 말다툼으로 모둠활동이 깨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초점 없는 눈으로 멍을 때리고 있거나, 영혼을 떠나보낸 채 비몽사몽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보는 것보단 백배 나았습니다. 마냥 떠들고 노는 것 같아도 마칠 때쯤이면 그래도 한두 문제 정도는 풀어본 흔적을 남기더군요. 다행히,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각종 연수를 쫓아다니고, 다른 분들의 수업을 보고 배우는 동안 제 수업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교사의 행복은 수업에서
  선생님께 들려드린 제 수업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30여 년 교사생활에서 제가 깨우친 진리는 ‘수업이 즐겁지 않은 교사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사는 수업으로 웃고, 수업으로 우는 존재입니다. 내 맘 알아주지 않는 아이들 탓해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주변 선생님들과 수업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수업을 어떻게 바꿔갈까에 대해 함께 배우는 교사로 성장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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