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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1급 자녀를 키우는 이인옥 학부모의 기고글 입학식날, 슬금슬금 피하던 아이들 “라율아~ 넌 그냥 좀 느린 친구야”

 


  저는 경기도 군포시에 소재한 둔전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고 있는 여학생의 학부모입니다. 아이의 이름은 이라율이고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생후 6개월 때 대학병원에서 판정받아 현재 지적장애1급으로 통합학급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2  018년 12월 31일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는 이 시간 지난날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감사한 사람들 가운데 제 아이의 스승이자 평생 못 잊을 저의 은사님이 되실 세 선생님. 통합학급 담임선생님 조지연 선생님과 특수학급(한울림반)의 담임이신 최영아 선생님. 그리고 제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활동 보조선생님(활동보조인) 변형숙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지적장애1급 딸, 일반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교권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오늘 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옛 말이 무색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픈 아이를 낳고 초등학교에 보낼 즈음에 안양관내 특수학교에 신청했으나 떨어졌고 일반학교 특수통합학급을 알아보던 중 둔전초등학교를 만난 건 어찌 보면 저와 제 아이에게 무척이나 큰 행운이었습니다. 지적장애 1급이었던 제 아이는 뇌종양으로 발달지연이 된 상태라 12개월 언어와 행동이 돌쟁이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똑 부러지게 자기이름을 말하고 쫑알쫑알 학교에 있었던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자식이라면 그 어떤 걱정이 있을까요. 그저 학교에서 실수 안하고 아이들과 별 탈 없이 잘 지내며 수업시간 40분 동안 이탈하지 않고 급식 잘 먹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거 하나만으로도 저는 만족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걱정이 하늘에 닿았는지,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을 너무나도 제대로 만났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추억은 너무 생생합니다. 입학 첫날 당시 1학년 5반 담임선생님은 조지연 선생님이었습니다.
  엄마아빠 손을 잡고 1학년 교실로 들어가자 조지연 선생님께서 라율이에게 눈과 키를 맞춰주시며 “어머 우리 라율이 왔구나! 어서와.” 하셨습니다. 사실 입학 전에 특수학급 아이들 엄마와 통합학급, 특수학급 담임선생님들과의 미팅이 있었고 아이의 상태와 어떤 수업이 이루어지는가를 OT처럼 접하게 되어 어느 분이 제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될지 모르나 그런 OT를 진행함에 학교에 감사함을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구면인 선생님께서 너무도 반가이 맞아주심에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선생님께서 맨 앞에 앉으라고 의자를 빼주고 옆에 앉은 친구에게 라율이를 소개하며 조금 아픈 친구이니 우리 다 같이 친해지도록 하자며 옆자리 친구에게 겁내지 말라는 듯 다독이심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라율이가 아기처럼 말을 하자 친구는 그 자리가 무척 불편해보였고 이윽고 라율이와 멀리 떨어지고 싶다는 듯 책상과 의자를 조금씩 옮겼습니다. 이 날을 잊을 수 없는 건 우리 라율이를 슬금슬금 피하던 그 아이가 1학년을 마칠 때는 라율이를 예뻐해 주는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 아이들이 라율이를 그냥 좀 느린 거북이 같은 친구처럼 대했으며 그렇게 편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주신 분이 바로 조지연 선생님이셨습니다.
  “라율이가 너희들에게 배우는 것도 있지만 너희들도 라율이를 통해 배울게 있단다. 그러니 라율이를 친구로 존중해주길 바란다. 라율이가 내는 소리는 산속에서 들리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 길에서 달리는 자동차 소리처럼 별거 아닌 일상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그런 소리를 낸다고 쳐다보거나 이상하다는 듯 볼 이유가 없다. 라율이는 금방 멈출테니까.”
 라율이의 활보선생님께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라율이를 친구들이 늘 이렇게 대하도록 말씀해 주신다고요.

 

선생님·친구 도움으로 완벽했던 학교생활
  그래서 저는 우리 라율이가 참으로 축복받은 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너무도 완벽한 초등학교 1학년을 보냈고 1학년 친구 엄마들조차 라율이에게 인사해주고 친구들이 일기장에 라율이 이야기를 쓰기도하고 생일파티도 함께 하며 이처럼 초등학교의 시작을 평안하게 이끌어주신 조지연 선생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라율이를 낯설어 하지 않는 고마운 친구들과 선생님을 잘 만나 2,3학년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학년 1반 지금의 담임선생님으로 다시 한 번 조지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1학년 학교 개별상담 때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신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순수하고 호기심에도 라율이를 이뻐할 수 있으나 3학년 이후부터는 아이들이 학업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사춘기가 오는 아이들도 있어서 마냥 라율이를 예뻐하는 아이들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상처받지 말라.”고요.
제게 미리 상처받을 아픔에 의연해지라는 조언을 주었는데 한 해 한 해가 지나서 4학년이 되었을 때 조지연 선생님께서 라율이를 맡아 주심에 정말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우려했던 아이들의 냉대는 걱정과는 달리 전혀 없었고 오히려 라율이가 아픈 것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라율이가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한번이라도 불러주길 바라는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학교생활 4년만에 처음으로 친구들 다섯명이 집으로 놀러 오기도 했습니다.
  이는, 조지연 선생님께서 장애학생을 어떻게 대하는지, 상생의 지혜를 배우고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방법을 몸소 보여주고  올바른 인성을 가진 친구들로 자라게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들의 섬세한 지도로 장애편견 벗어나
  이와 더불어 특수학급에서 라율이에게 자립심을 심어주며 일상생활지도와 라율이의 수준에 맞는 국어 수학 지도, 장애 아동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외부체험학습, 특수학급으로의 친구초대로 장애학우에 대한 인식개선이 적재적소 활용되는 과정을 보며 매우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특수학급 담임선생님이셨던 최영아 선생님께서는 장애중증도 면에서 가장 심한 라율이를 보다 나은 상황으로 이끌어 주려 혼자 신발신기부터 혼자 가방매기, 혼자서 지시 사물 가져오기, 혼자서 연필을 잡고 그려보기 등등 일반학급에서 세세하게 지도받을 수 없는 부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주 작은 성과물조차도 집으로 보내주었고 궁금해 하는 수업 과정 또한 사진으로 정리해서 보내주고 수업계획과 체험학습 계획 모두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단계별로 진행하는 걸 보며 특수학급선생님의 프로다운 면모와 올곧은 의식으로 결코 우리의 아이들이 모자라서 약자라서 차별받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그 누구보다 애써주었습니다.
최영아 선생님과는 2년을 함께 하며 라율이와의 추억도 많습니다. 누구보다 라율이의 감정을 빨리 읽고 라율이의 속마음까지도 꿰뚫어 보고는 의견을 주는 훌륭한 선생님입니다.
  제가 특수학급에서 최영아 선생님을 만난 것 또한 너무도 큰 행운이었고 최영아 선생님과 조지연 선생님께서 라율이에 대한 수업계획이 서로 잘 맞으셨기에 4학년 한해가 성공적이었고 친구들 엄마사이에서도 라율이에 대한 걱정이나 불만은커녕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  지막으로 제 아이가 지적장애1급으로 신변처리(화장실 후처리)와 식사가 불가능합니다. 그런 라율이에게 변형숙 활동 보조 선생님 기꺼이 라율이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단 한 번의 지각없이 학교 갈 시간에 맞춰 저희 집 문을 두드립니다. 1교시부터 방과 후 장애인복지관에서의 각종 치료수업까지 다 받고 집으로의 귀가까지 이제껏 단 한 번의 사건사고 없이 우리 라율이를 잘 케어해주었습니다.
  사실 이런 활동보조 시스템이 없다면 라율이처럼 중증장애인들이 특수학교를 못 갔을 때의 참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변형숙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우리 라율이는 수업 중에 바르게 착석하는 걸 배우기 힘들었을 겁니다. 급식은커녕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물 한모금도 마실 수 없었을 것이고 급하게 마려운 대변이나 소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 모든 감정과 표현을 읽어내며 단 한 번도 수업시간에 어떤 실수나 사건으로 인해 얼굴 붉힐 일 없게 해주신 분이 변형숙 선생님이십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키워낸 11년의 세월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 라율이는 참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11살을 보냈고 이제 12살을 향해 자랍니다. 선생님들 한분 한분을 떠올리면 왜 이리 뜨거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마도 저를 사람답게 살게 해주신 분들이기에 그러지 않을까요.
  어떤 유전자적 결함도 없다는 우리 부부의 검사결과에도 라율이는 생후6개월 때 돌연변이로 TSC(결절성경화증) 환자가 되었고 그 병의 특징으로 뇌와 안구, 신장, 심장 척추 등에 종양이 생겨 정기적으로 검사를 해야 하고 결절로 인한 뇌전증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6~7알의 알약을 챙겨먹는 아이의 질병을 받아들이기까지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2년 동안 죽은 심장을 움켜쥐고 라율이를 키웠습니다. 장애진단을 받고 나서 장애인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기까지도 꼬박
2년이 더 걸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지적장애1급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어려서부터 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라율이 같은 장애인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회에서 완전히 버림받는 사람이 되고 집 밖으로 나 올 수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될 것 입니다.
  저는 우리 라율이를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운명에 서있고 혼자서 그것을 다 감당하라고 했다면 제 삶에 비극의 그림자는 언제나 저를 위협해 왔을 것입니다. 그래도 자식이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함께 수업 받고 뛰노는 걸 보는 만큼 그 아픔을 이겨내는 좋은 명약은 없다고 봅니다. 선생님들의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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