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행복한 교육

어린이날에 깃든 역사의 교훈

글_ 강응천 도서출판 문사철 대표(역사저술가)


기사 이미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중세 유럽에는 어른과 구별되는 어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자기가 태어난 신분이나 가문에 따라 어른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도 따로 없었다. 남녀 간의 성에 관한 이야기, 잔혹한 이야기, 거짓 술수를 쓰는 이야기 같은 민담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노출되었다.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농촌의 대가족이 도시의 핵가족으로 바뀌자 어린이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보호하고 잘 키워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독’을 제거한 민담이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졌다. 17세기 말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가 정리해 펴낸 민담집은 교훈적인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 어린이용 이야기의 고전으로 읽히는 『그림동화』도 거친 민담을 다듬은 것으로, 본래 제목은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였다.

  이야기와 함께 그림도 달라졌다. 18세기 미국 화가 찰스 윌슨 필의 〈캐드왈라더 가족 초상〉이 대표적이다. 이런 종류의 그림에서는 흔히 어린이가 우아하게 차려입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놀고 책을 읽고 밥을 먹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린이가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그때까지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그림은 실제 가정의 변화, 즉 ‘스위트홈의 탄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어린이들은 식사 예절, 말하는 예절, 행동하는 예절까지 몸에 익히며 올곧게 자랄 것이 기대된다. 중세에는 귀족들의 저택에서나 가능했던 이런 모습을 평범한 시민 가정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의 탄생

  한국에서도 어린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근대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였다. 당연히 서양보다 늦었지만 변화의 속도는 더 빨랐다. 어린이를 위해 특별한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생각은 서양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1923년 5월 1일 세계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어린이날’은 그렇게 탄생했다.

  1923년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4년째 되는 해였다. 3·1운동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세계는 우리 민족의 열망을 외면했다. 게다가 일제는 문화정치라는 사탕발림으로 우리 민족을 회유했고, 이광수 같은 민족 지도자들이 거기에 넘어가고 있었다. 자칫 독립이 멀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그때 뜻있는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화 작가인 마해송, 윤극영과 방정환, 김기전 등의 사회운동가들이 그들이었다. 1921년 5월 1일 천도교와 관계를 맺고 있던 방정환과 김기전은 민족의 미래인 어린이들에게 주목해 천도교소년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1923년 5월 1일은 천도교뿐 아니라 전국 차원의 어린이날 행사가 열린 날이다.

  그날 오후 3시 무렵 어린이 1,000여 명과 소년운동 관계자가 천도교당에 모여 다음과 같은 요구를 담은 소년운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하라”, “만 14세 이하 어린이에게는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시키지 말라”, “어린이가 조용하게 배우고 즐겁게 놀도록 다양한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보장하라” 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전단 12만 장을 서울 시내에 뿌렸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일제의 간섭으로 금지된 어린이날 행진

  기념식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옥양목에 붉은 글씨로 ‘어린이날’이라고 쓴 띠를 가슴에 두르고 행진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붉은 글씨가 매우 불온할 뿐 아니라 5월 1일이 국제노동절과 겹친다는 까닭으로 이를 금지했다. 한국인의 어린이운동이 민족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에게는 눈엣가시였다. 게다가 국제노동절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을 세계적으로 기념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5월 1일이던 어린이날은 1946년 5월의 첫 일요일이 5일이었던 것을 계기로 5월 5일로 변경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사에서 근대가 일제의 침략에 대한 저항과 함께 열린 것처럼 어린이날도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어린이는 1년 365일 보호받고 양육되어야 하는 법인데 그중 하루만 특별히 어린이날로 기념하는 것은 생색내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이날에 깃든 역사적 의미는 한국인이 늘 가슴에 새겨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의 소중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민족의 독립과 번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주는 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