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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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민국’은 어디서 왔는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국호 탄생 비화

글_ 강응천 도서출판 문사철 대표(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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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766년 4월 1일 기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생각하건대 내가 40년을 왕위에 임하여 … 한마음을 이미 민국(民國)에 바쳤다.”
  여기서 ‘민국’은 ‘민’과 ‘국’을 따로 떼어 ‘백성과 나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기록들에는 민국이라는 말이 지속해서 등장한다. 이를 두고 왕조 체제 내에서 나라의 주인이 ‘민(民)’이라는 의식이 진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자생적으로 근대적인 국민국가 의식이 싹터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1897년에 제정된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는 국호가 1919년 임시정부 수립 때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바뀐 것은 이 같은 내재적 발전 과정의 귀결이라고 보는 것도 가능하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국호 ‘대한민국’
 일반적으로 임시정부의 국호에 민국이라는 국체 칭호를 붙인 것은 1911년 신해혁명의 결과 탄생한 중화민국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 4월 10일 밤 10시 국내와 만주, 시베리아, 미국, 일본 등지에서 활동하던 스물아홉 명의 독립운동가가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 있는 현순(玄栒)의 집에 모였다. 역사는 이것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1회 회의로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는 당연히 국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논의도 있었다. 신석우(申錫雨)가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동의했고 이영근(李渶根)이 재청했다. 그러자 여운형(呂運亨)이 반대하고 나섰다. “대한은 이미 우리가 쓰고 있던 국호로서 그 대한 때에 우리는 망했다. 일본에게 합병되어버린 망한 나라 대한의 국호를 우리가 지금 그대로 부른다는 것은 감정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을 쓰자는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했다. “일본에게 빼앗긴 국호이니 일본으로부터 다시 찾아 독립했다는 의의를 살려야 하고 또 중국이 혁명 후에 새롭고 혁신적인 뜻으로 ‘민국’을 쓰고 있으니 이를 따라 대한민국이라 하는 것이 좋다.”1)
  여기 등장하는 중국의 민국은 1912년 쑨원이 중국 최초의 공화국으로 창건한 ‘중화민국(中華民國)’을 가리킨다. 앞서 살펴본 영조의 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동양의 전통 유교 왕조에서도 민국이라는 말은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쑨원이 창건한 민국은 영어 republic(리퍼블릭)의 번역어였다. republic은 본래 ‘공공의 일’을 뜻하는 라틴어 res publica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 로마에서 귀족과 시민이 왕을 쫓아내고 원로원과 민회를 통해 국가를 운영해 나간 정치 체제를 가리킨다. 근대 유럽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 절대왕정을 폐기하자 republic은 전제 군주국인 왕국에 대비해 시민이 통치하는 근대적 정치 체제를 뜻하게 되었다. republic은 유럽을 넘어 중화민국, 대한민국 등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갔다.

3.1운동 정신을 잇는 ‘민주공화국’
  republic을 번역한 말로는 민국 말고도 ‘공화국(共和國)’이 있었다. ‘공화(共和)’는 본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주(周)의 폭군 여왕(厲王)이 쫓겨나고 소공과 주공이라는 두 재상이 왕 없이 통치하던 시기를 가리킨다. republic을 공화로 처음 번역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공산당은 국호를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이라고 선포하면서 이를 ‘새로운 중화민국’이라고 선전했다. 중화민국과 차별화하기 위해 뜻은 다르지 않지만 민국 대신 공화국을 사용한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republic의 두 가지 번역어를 반복 사용하면서 귀족 같은 특권층의 공화국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화국임을 강조한 셈이다.
  조선 왕조에서도 민국이라는 말을 썼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국호에 사용하고 있는 민국과 온전히 같은 뜻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뀌는 과정은 일제의 침략을 물리치는 독립운동과 국민이 주인 되는 새 나라를 세우는 혁명운동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한 흐름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든 사건이 3.1운동이었다. 특권층이나 지식인에 국한되지 않는 동포 전체가 들고일어나 자신들의 나라를 요구하며 만세를 불렀기 때문이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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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呂運弘, 「夢陽 呂運亨」(서울: 靑厦閣, 1967),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