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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4,000만 자에 담긴 조선의 모든 것
글_ 강응천 역사저술가(도서출판 문사철 대표)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세계에서 가장 상세하면서도 포괄적인 역사 기록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유네스코의 설명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다. “태조 때부터 철종의 통치기에 이르는 470여 년간의 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를 포함하면 조선왕조는 순종까지 518년간 존립했다. 
고종과 순종의 실록은 어떻게 된 것일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승정원일기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 강점기였다. 1927년부터 1934년까지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와 오다 쇼고(小田省吾)라는 두 일본인 책임 아래 편찬되었다. 식민주의적 시각이 편집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된 1876년 
이후의 기록은 이전에 비해 매우 소략하다.
  두 실록에 이 같은 흠결이 있다면 구한말 역사 연구에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다른 기록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조선왕조실록’보다 더 상세하고 더 포괄적인 조선 시대의 역사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승정원일기’가 그것이다. ‘승정원일기’에는 국왕의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왕명의 출납과 관계된 모든 사실이 수집되고 기록되어 있다. 아쉽게도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과 이후의 일부 내용이 불에 타거나 사라졌지만, 다행히 고종과 순종 때의 기록은 온전히 남아 있다. 모두 해당 임금이 살아 있을 때 편찬된 생생한 1차 사료들이다. 
  ‘조선왕조실록’도 그 방대한 분량을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지만 ‘승정원일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조선 왕조 전 시기를 포괄한 ‘조선왕조실록’이 4,964만 6,667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조(재위 1623~1649) 이후의 기록만 남아 있는 ‘승정원일기’는 대략 2억 4,250만 자를 담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기록했기에 이렇게 천문학적인 규모의 사료가 만들어졌을까?
승정원에서 기록을 담당하던 관리는 정7품 주서였다. 주서는 왕을 따라다니며 그 언행을 일일이 기록해 사초(史草)로 남겼다. 또한 승정원을 통하는 모든 문서를 베껴서 정리해 두었다. 승정원은 왕에게 올라가거나 왕이 내려 보내는 모든 문서를 다루는 곳이므로 주서는 여간 바쁜 자리가 아니었다. 한자를 빨리 쓸 수 있는 초서체에도 통달해야 했다. 사초와 기록이 쌓이면 한 달에 한 번씩 한두 권의 책자로 묶는데, 이것이 바로 ‘승정원일기’이다. 

전체 22%만 한글로 번역… 남북 공동 번역 제안
  현종 때 승정원 주서를 지낸 이담명(李聃命, 1646~1701)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이담명은 1672년(현종 13) 6월 18일부터 1675년(숙종 1) 5월 8일까지 약 3년간 사초를 작성했다. 이렇게 승정원에서 작성한 사초는 실록의 1차 자료로 춘추관에서 작성하는 사초와 구분해 ‘승정원사초’라 한다. 사초는 실록을 만들고 나면 물에 깨끗이 씻어 기록을 지우는데, 이를 세초(洗草)라 한다. 승정원사초도 ‘승정원일기’를 만들고 나면 세초를 한다. 그런데 이담명은 어찌 된 일인지 자신이 쓴 승정원사초를 개인적으로 보관하다가 후손에 물려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승정원사초가 어떤 내용을 얼마나 자세하게 기록한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담명 한 명이 3년 동안 기록한 사초만 해도 161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현종실록』과 『현종개수실록』을 다 합쳐도 ‘이담명승정원사초’의 1/3에 불과하다. 승정원사초의 일부 내용만 ‘승정원일기’에 수록되고, 다시 ‘승정원일기’의 일부 내용만 ‘조선왕조실록’에 실린다. 남아 있는 2억 4,250만 자의 ‘승정원일기’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는 2018년 현재 전체의 22%만 한글로 번역되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승정원일기’의 완역을 앞당기고 남북 문화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북한에 공동 번역을 제안했다. ‘조선왕조실록’보다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승정원일기’가 남북 공동으로 완역되면 역사 연구뿐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에도 신기원이 열릴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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