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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한계’철학과 함께 살아가기

글_ 김석수 경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인간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에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존재보다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또한 동시에 괴로움을 가장 많이 겪는 존재이다. 인간은 마음 활동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넘기도 하지만 바로 이 마음 때문에 더 많은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기에 인간은 단순히 육체적 통(痛)만 겪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의 고(苦)도 겪는 존재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자신의 ‘통’의 문제는 많이 해결해왔지만 ‘고’에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겪는 ‘통’보다는 타인으로부터 겪는 ‘고’에 더 많이 시달리고 있다. 이는 사람들 마음이 서로 타자를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타자를 내 마음대로 인식하고 지배하려는 마음은 반드시 ‘고’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타자는 규정하고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이 이런 욕망으로 향해 있을 때 필히 타자에게 아픔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인간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에 기초


타자 역시 나에게 그런 마음으로 다가온다면 나 또한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고’를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 상대에 대한 일방적 규정 불가능성, 소유 불가능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식 한계에 대한 자각은 서로의 ‘고’를 해소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사회가 무한경쟁을 통해 무한욕망을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이상, 서로에게 ‘고’를 안겨주는 삶은 피할 수가 없다. 지식노동이 자본과 권력 획득에 밀착된 사회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 포기사회, 우울사회, 자살사회로 이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인식 한계, 이에 기초한 지배 한계, 소유 한계를 자각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일찍이 칸트는 이 점을 잘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사유의 절대화’나 ‘감각의 절대화’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해칠 수밖에 없음에 주목하였다. 인간은 자신이 사유하거나 감각한 내용만으로 타자를 일방적으로 규정하면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자본과 권력에 유착된 기존의 형이상학적 사유나 과학기술적 탐구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에 의하면 학문적 지식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감성의 직관 활동과 지성의 사유 활동이 제대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지성의 사유 활동, 즉 개념화 작업에 내용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이 작업이 낳을 월권에 제동을 거는 감성의 활동을 중시하였다. 그는 감각이 없는 사유는 공허함을, 또한 사유가 없는 감각은 맹목적임을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인간 감각의 한계에 주목하여 무한해지려는 인간 ‘사유’에 제동을 걸고 ‘인식’에 한계를 설정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인간 인식 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개념 구성과 관련하여 이 개념이 근원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음을 주장하고자 ‘한계개념’(Grenzbegriff)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용어는 인간이 사유를 통해 잡아 쥐려는(greifen) 데 한계(Grenz)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개념의 한계는 인간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에 기초하고 있다. 더욱이나 그는 단순한 물건이나 사물이 아닌 인간의 ‘마음’과 관련하여 이 마음은 잡아 쥘 수 없다고 보며, 따라서 개념화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그에게 이 마음은 인간이 서로 잡아 쥘 수 없는 ‘한계개념’에 해당한다.

 

 

 

 

이성 비판으로 깨우친 인간의 참된 존엄함


칸트는 이와 같은 기본 인식에 기초하여 사람들 사이의 인격적 소통을 서로 잡아 쥐어 인식하려는 개념적 소통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개념적 소통보다 도덕적 소통이 더 우위에 있다는 입장에서 자연과학을 넘어서는 윤리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지배와 소유로 향하는 지능적 사유보다 타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도덕적 사유가 더 우위에 있어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칸트는 사유를 수행하는 인간 이성 능력에 대한 엄정한 비판을 통해 일방적 인식과 소유로 전환할 수 없는 타자의 인격성을 누구보다 강조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인간 인식에 대한 그의 한계 설정은 인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로 설정하려는 목표로 향해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그가 57세 때 작업한 『순수이성비판』(1781)이다. 이 고전은 부당하게 인간의 삶을 지배한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자, 동시에 인간의 삶을 도구화하는 당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작업을 통해서 전통과 근대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종합하고자 하였으며, 아울러 인간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인간의 참된 존엄성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과학기술-자본-권력’의 결합이 우위를 점하여 가치판단이 사실판단에 밀려나는 오늘의 반인문적 사회, 이 속에 자라나고 있는 우울과 자살의 사회를 극복해야 하는 우리에게 그의 이 책은 여전히 중요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이 주장하듯 현대인이 과학기술의 절대화를 통해 무한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또다시 자기파멸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한계에 대한 자각을 상실한 인간은 언젠가 자기파멸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나르시시즘의 경향을 보이는 오늘의 문화에도 여전히 경종을 울리고 있다.